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현지보고] 무협영화 <칠검> 베이징 현지 시사기

서극, 다시 강호의 칼바람 속으로

올해로 중국영화는 탄생 100주년을 맞이했다. 지금 중국 영화계는 영화박물관 건립, 영화 100년사 다큐멘터리 방영, 영화음악 100주년 기념 뮤지컬 상영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치르며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데 이러한 자축연 속에서 올해 제작되는 중국영화들은 그 완성도를 떠나 의미를 부여받는 것이 사실이다. 연간 300편(디지털영화 포함한 영화심사국 심의통과 작품 수) 이상 제작되는 중국영화 중 올 초부터 유독 세편의 영화가 이곳 매체의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는데, 첸카이거의 <무극>, 서극의 <칠검>, 당계례, 성룡의 <신화>가 그 주인공들이다. 공교롭게도 모두 한국 배우들이 참여하고 있는 세편의 국제적 프로젝트들 중 지난 7월18일, 서극의 <칠검>이 첫 번째로 그 전모를 드러냈다.

무협의 발원지로 대륙으로 돌아온 서극

80년대에서 90년대 중반, 홍콩영화가 극장가를 지배하던 시절, 웬만한 홍콩 화제작에서 서극의 이름을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홍콩 뉴웨이브라는 새로운 문파를 탄생시키며 강호에 등장한 적잖은 유학파 방송국 출신의 감독들 중에서 이 베트남 출신의, 전혀 고수의 외모를 지니지 않은 감독의 무공은 한 조류를 형성하기에 충분했다. 비록 철저한 상업영화의 테두리 안이기는 했지만 홍콩 뉴웨이브 감독들 중에서 항상 새로운 무기와 필살기로 무장한 그의 존재는 무림의 맹주로 군림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시간은 흘러 20여년이 지나 고수들이 난무하던 강호는 잊혀져가고 할리우드라는 새로운 무림에 도전장을 내밀며 홍콩을 떠나던 감독들 속에서 다시 홍콩으로 돌아와 자신의 영화의 리메이크작으로 참담한 실패를 경험한 서극은 다시 자신의 정신적 고향 무협으로, 무협세계의 발원지인 대륙으로 돌아온 것이다.

지난 7월20일 베이징 서외곽에 위치한 싱메이진위엔영화관에서 열린 기자시사는 베이징 지역 매체를 위해 마련된 자리였다. 이틀 전 창샤에서 열린 장이모의 <영웅>과 <연인>의 개봉 전 행사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월드 프리미어 행사에 비하면 다소 소박한 분위기였다. 시사회에 앞서 기자회견이 예정된 호텔 로비에서 마주친 서극의 모습은 밝아 보였다. 이미 여러 차례 80, 90년대 홍콩영화에서 배우로서 얼굴을 내비친 50대 중반의 서극은 머리와 턱수염만 희끗해졌을 뿐 그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만에 보는 그의 모습에 반가움을 표시하는 한국 매체들에게 서극은 왕년의 한국 팬들을 기억하는지 일일이 악수로 답례하였다. 오전 9시부터 진행된 기자시사는 비록 대부분의 영화 속 대사가 중국어로 이루어지긴 했지만 영화의 주요 인물인 견자단과 김소연이 극중 고려인으로 분해 한국어 대사를 하고, 여러 소수 민족들의 방언도 적잖게 사용되는 탓에 중국인 또한 자막없이는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많았다. 이러한 극중 설정과 중국, 홍콩, 대만, 한국 등 다양한 국적의 배우 기용에 대해 서극은 “강호라는 세계가 바로 이렇게 다양한 민족과 언어가 공존하는 세계”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만청 시대, 일곱 검사들의 무림 전기

만청 시대, 친왕 두오거두오는 중원 무림에 만연한 반청세력에 대항하기 위해 ‘금무령’을 선포하고 잔인한 살인마 풍화연성(쑨홍레이)을 파견하여 각지에서 법령을 어기고 무기를 제조하거나 사용하는 무림 인사들을 처단하기 시작한다. 풍화연성의 무자비한 만행은 비밀 반청조직인 천지회의 근거지인 무장마을에까지 이르고 의협심 강한 부청주(유가량)는 무장마을의 두 젊은이 무원영(양채니)과 한지방(루이)을 데리고 천산에 입산해 구원을 요청한다. 이곳에서 그들은 검 주조의 달인 회명을 만나게 되고 초소남(견자단), 양운총(여명) 등 회명의 네 제자들과 함께 7자루의 보검을 얻고 하산한다. ‘칠검하천산’이라는 1600년간의 무림 전기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일곱 검사들의 하산 뒤 풍화연성 무리와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액션으로 영화는 숨가쁘게 흘러간다.

영화가 시작되고 피튀기는 살육전 뒤 펼쳐지는 눈덮인 천산의 절경은 영화의 압권을 이루는 한 장면이다. <칠검>의 원작소설인 양우생의 <칠검하천산>이라는 제목에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듯이 천산은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요소인 ‘칠검’이 탄생하는 영산(靈山)이기도 하다. <반지의 제왕>의 특수효과를 맡았던 웨타스튜디오의 솜씨는 이곳에서 집중되어 보여진다. 해발 3000m 이상의 만년설로 뒤덮인 천산은 중국 신강성 우르무치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으로 제작진을 가장 고생시켰던 막바지 촬영장소. 천산에서의 촬영뿐 아니라 제이마설산과 칠검산장으로 쓰인 낮 평균기온 40도가 넘고, 지면 온도는 80도에 육박하는 천휘산장에서의 촬영 등 5개월여에 걸친 대륙 로케는 그동안 세트와 특수효과에 의존한 무협물에 익숙한 서극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평소 존경하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사무라이영화에 깃든 사실감을 이번 <칠검>에서도 실현해보고 싶었다는 서극은 미술에도 상당한 공을 들였다. 구로사와 아키라 영화 중 마을 속 주민의 꼬질꼬질한 손마디가 인상적이었다는 서극은 극중 등장하는 마을의 세트를 실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미술감독에게 요구하였고, 지난해 4월부터 4개월여에 걸쳐 진행된 준비과정에서도 의상, 소품, 세트 제작 등 미술의 비중이 가장 크게 차지하고 있다. 의상 및 무기 컨셉을 직접 그려 보이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미술에 개입했던 서극의 공은 영화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미술감독은 <와호장룡>으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에디웡이 맡았다. 개성만점의 7자루의 보검은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현란한 검술 액션장면에서 인물이 잠시 사라지고 검만이 눈에 띄는 희한한 순간도 있다. 이 주객이 전도된 상황은 서극 감독의 의도였는지 <칠검>에서 <동방불패>의 임청하나 <황비홍>의 이연걸 같은 카리스마를 지닌 배우는 눈에 띄지 않는다. 풍화연성을 연기한 중앙희극학원 출신의 대륙배우 쑨홍레이가 그나마 매력을 발산하지만 그를 보필할 참모는 부재하고 7명의 검사에게 홀로 대항하는 모습이 버거워 보인다.

동방의 <스타워즈>가 될 수 있을까

촬영현장의 서극 감독

2시간30분의 긴 러닝타임이 별로 지루하지 않게 느껴졌다면 쉴새없이 이어지는 액션장면 때문일 것이다. 무협에서 쿵후, 홍콩 누아르, 심지어 경극까지 두루 섭렵한 서극은 액션장면 연출만큼은 일가견이 있는 감독이다. 이번 <칠검>에서도 ‘역시 서극!’이랄 만한 액션신이 몇 차례 등장한다. 여기에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 무술감독을 맡은 유가량이다. 그동안 정소동, 원화평 등 홍콩의 정상급 무술감독들과 작업해온 서극의 이번 선택은 의미심장하다. 특수효과도, 와이어도 없이 이렇게 훌륭한 액션장면을 연출한 것은 역시 유가량이라는 노대가의 공이 컸을 것이다.

사실 그동안 서극의 작품을 계속해서 지켜본 관객이 <칠검>을 접한다면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이른바 ‘혼란 삼부작’이라 일컫는 초기 세 작품, 무협물을 가장한 미스터리스릴러 <접변>, 하드고어 컬트 코미디 <지옥무문>, 사회고발성 금지영화 <제일유형위험>에서 시작된 반골적 이력은 <촉산>과 <천녀유혼> 시리즈로 홍콩영화 시각효과의 신기원을 이룩하고, <귀마지다성>, <최가박당> 시리즈 등 신예성 영화사의 코미디영화로 잠시 외도는 하였지만 <영웅본색> 시리즈, <황비홍> 시리즈까지 이어지며 항상 새로운 홍콩영화를 선보였던 서극이었다. 그런 서극을 생각하면 이번 <칠검>은 너무 ‘구식’이다.

사실 그가 김용의 전 세대로서 김용의 캐릭터 워주의 무협소설과 비교할 때 역사성과 문학성을 중시하는 양우생의 무협소설을 원작으로 삼았을 때, 황비홍의 직계 제자인 아버지를 따라 영화계에 입문한 뒤 장철 감독의 무술감독을 역임하며 쇼브러더스 황금기를 이끈 ‘정통쿵후’의 대가 유가량을 무술감독으로 택했을 때, 중국 대륙에서 올 로케로 무협영화를 찍는다고 발표했을 때, 이미 답은 나온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산전수전 다 겪은 무협영화의 대가가 종국에 얻은 깨달음이란 바로 이런 것일까. 대륙 무협드라마의 대가이고 서극의 친구이자 스승인 장지종 감독과 무협소설에 대한 수다를 떨다 탄생한 <칠검>은 본래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서극은 영화화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결국 6편의 연작영화를 구상하기에 이른다. 제대로 심화시키지 못한 수많은 인물들과 지나치게 단순한 내러티브의 단점을 속편에서 과연 해결할 수 있을까? <칠검>이 시리즈가 되고, 동방의 <스타워즈>가 될지는 관객의 호응도에 달려 있을 것이다. <칠검>은 중국에서는 7월29일, 한국에서는 9월로 개봉이 잡혀 있다.

“많은 무협영화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스타일”

서극 감독 인터뷰

영화시사가 끝나고 영화관 근처 세기금원호텔 회의실에서 진행된 기자회견은 서극 감독과 주요 출연배우들이 참석한 가운데 이뤘졌다. 주요 스탭으로는 유일하게 음악감독 가와이 겐지만이 참석했다. 오시이 마모루와 오랜 기간 작업했던 가와이 겐지가 수줍게 말문을 연 기자회견은 서극 감독의 무협장르에 대한 애정고백과 배우들의 하나같은 서극 감독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답변으로 채워졌다.

-몇년 동안 영화를 안 찍었는데, 오랜만에 메가폰을 잡은 심정은 어떤가.

=실제적으로 영화계를 떠난 적은 없다. 최근 몇년간은 애니메이션 제작을 위한 준비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리안, 장이모, 첸카이거 등이 최근 무협영화를 찍었다. 홍콩 무협영화의 대부로서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보나.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내가 무협영화를 찍었던 것은 우연이었다. 당시 홍콩 방송사에 액션팀에 속해 있었는데 참여한 작품들이 대부분 무협물이었다. 지금까지 무협영화를 찍은 사람은 수없이 많았다. 다른 감독들이 어떻게 무협영화를 찍었는지 비교해보는 것도 장르영화에서는 참고가 될 것이다. 내가 만약 <와호장룡>을 찍는다면 리안처럼 찍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스타일이다. 감독마다 무협에 대해 다른 이해를 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영화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검’이다. ‘검’이란 무기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나.

=‘검’은 병기의 왕이다. 내가 볼 때 ‘검’은 중국 문화의 풍격, 마음가짐, 수양, 내용 등 많은 것을 대표한다.

-이번 영화가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와는 어떤 관계가 있나.

=구로사와 아키라는 내가 매우 존경하는 감독 중 한명이고, 내 작품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번 <칠검>은 7이라는 숫자의 공통점 이외에는 인물도 사건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국 배우 김소연을 기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사실 그동안 한국영화를 좋게 봐왔고, 한국 영화계 사람들과 한번 작업을 같이 하고 싶었다. 이번에 기회에 되어 김소연과 만났고, 같이 작업한 것에 만족한다. 김소연은 하나를 요구하면 열을 표현해내는 배우다.

관련영화

관련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