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SF소설과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로봇은 인간과의 관계에 따라 그 캐릭터가 결정됐다. 그들은 인간의 권위에 대항하여 인류를 위협하는 나쁜 로봇이거나(<메트로폴리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아이, 로봇> 등), 인간을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인간적인, 착한 로봇이었다(<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바이센테니얼 맨> <A.I.> 등). 그들은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일깨우기 위해 존재했다. 그러므로 결혼을 하고, 배달받은 아이를 조립하고, 때에 맞춰 아이의 부품을 바꿔주면서 키우고, 오래 되면 병드는 등 인간의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동일하게 경험하는 로봇만의 세계가 있다는 <로봇>의 가정은 왠지 낯설다.
<로봇>의 세계는 빈부격차, 비인간적인 이윤추구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요소까지 그대로 닮았다. 검소하고 자애로운 부모 밑에서 자란 로드니(이완 맥그리거)의 꿈은 모든 로봇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빅웰드(멜 브룩스)처럼 훌륭한 발명가가 되는 것. 그러나 이를 위해 고향마을을 떠나 로봇시티로 향한 로드니가 맞닥뜨리는 것은 악덕 경영자 라챗(그렉 키니어)이다. 빅웰드의 기업을 장악하려는 라챗은 “무엇으로 만들어졌건 여러분은 빛나는 존재”라는 빅웰드의 경영방침을 거부하고, 개별 로봇들의 업그레이드를 강제한다. 기존 부품의 공급을 중단하는 것뿐 아니라, 고장난 채로 돌아다니는 로봇을 폐기처분하는 등 극악한 방법까지 서슴지 않는 식이다. 부품 하나가 없어 존폐의 위기에 처한 다른 로봇을 수리해주던 로드니는 자신의 꿈을 이루고, 로봇세계를 구하기 위한 투쟁에 나선다.
누가 이 로봇들을 처음 만들었는지, 평생 같은 일만 반복하며 사회의 부품처럼 살아가는 그들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기원도 목적도 알 수 없지만 이 사회는 인간의 그것처럼 유기적이고, 용도에 따라 저마다 다른 외향을 지닌 로봇의 개성은 인간을 능가한다. 장편애니메이션 데뷔작인 <아이스 에이지>(2002) 이전부터 <로봇>을 구상했다는 크리스 웻지 감독은 말한다. “인간과 로봇에 관해서 고민하면서 몇년을 보냈다. ‘무엇이 인간다운 것이고, 무엇이 로봇다운 것인가’ 같은 아이작 아시모프가 던졌을 법한 질문들은, 훌륭하지만 재밌진 않았다. 우리는 총체적인 오락(grand entertainment)을 원했다.” 오랜 고민 끝에 그는 <로봇>에 인간을 등장시키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와 함께 로봇을 둘러싼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강박관념과 SF장르까지 벗어던졌고, <로봇>은 동물을 의인화한 숱한 애니메이션과 유사한 노선을 걷는다.
인간도 언어를 가지지 못했던 빙하시대를 배경으로 색다른 의인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아이스 에이지>는, 디즈니식의 따뜻하기만 한 성장극과 드림웍스의 재기발랄한 패러디로 이루어진 신랄한 풍자극 사이에서 소신있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마냥 순진하지만은 않았던 애정어린 그 시선은 <로봇>에서 한결 진화한 듯하다. 나치의 유대인 말살정책을 연상시키는 라챗의 음모, 역경 속에 용기와 동료애의 미덕을 배워가는 소시민 영웅 로드니 등은 지극히 익숙하다. 그러나 이 친근한 설정을 통해 <로봇>은, 무조건 최신형 모델에 집착하는 현대인들에게 근검과 절약, 필요에 기반한 소비, 중고품의 미덕을 말한다. 이것은 단지 <토이 스토리> 등에서 강조했던 인간의 기억 속에 잊혀지는 사물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인간사회의 복제판 같은 로봇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은 끊임없는 업그레이드를 강요당하는 인류의 미래 자체에 대한 근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3D애니메이션 <로봇>은 볼거리의 즐거움도 잊지 않는다. 수천개의 부품이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경이로운 광경으로 시선을 끌었던 모 자동차 광고에서 영감을 얻은 듯 보이는 연쇄적이고 역동적인 장면들이 인상적인 이 영화는, 미국에서 일반 극장과 아이맥스 영화관에서 동시에 개봉됐다. 이는 놀이기구에 올라탄 듯한 생생한 이미지를 내세웠던 <폴라 익스프레스>와 같은 전략. 그러나 <로봇>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시각적 즐거움은 <폴라 익스프레스>를 능가한다. 로봇시티의 대중교통, 크로스타운 특급은 시골뜨기 로드니의 혼만 빼놓는 게 아니다. 하늘 높이 던져졌다가, 아슬아슬하게 구멍을 통과하면서, 정확한 타이밍으로 목적지에 도착하는 이 교통수단은, 관객으로 하여금 레일을 벗어난 특급열차에 탑승한 듯한 흥미진진함을 느끼게 한다. 커다란 집에 틀어박힌 빅웰드의 어마어마한 도미노 게임 역시 놓칠 수 없는 장관이다.
섹시하고 상냥한 캐피(할리 베리), 팔다리는 물론 머리까지 수시로 분리되는 등 폐기 직전의 고물로봇 팬더(로빈 윌리엄스), 씩씩한 말괄량이 파이퍼(아만다 바인즈) 등 조연들의 캐릭터는 호화로운 목소리 캐스팅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탄탄하다. <싱잉 인 더 레인> <라이크 어 버진> <베이비 원모어 타임> 등을 배경음악으로 등장시키는 대중문화의 인용도 제법 어울린다. 할리우드의 장편애니메이션이 갖춰야 할 오락거리를 빼놓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로봇>의 인용이 돋보이는 지점은, 현란한 비주얼이나 즉각적인 재미에 짓눌리지 않은 왕성한 흡인력이다. <메트로폴리스> <오즈의 마법사> <삼총사> <로빈후드>, 나아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들까지 끌어들인 그 ‘이야기’는 소박하지만 단순하지 않고, 사려 깊지만 깊이를 강요하지 않는다. 평범해지는 것도 때로 용기가 필요한 요즘, 드문 매력이다.
로봇은 어떻게 디자인되었는가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외모의 로봇들
“<로봇>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 회화적인(pictorial) 아름다움이다.”(로저 에버트) 세심하게 조화를 이룬 저마다 다른 로봇들의 색깔과 디자인은, 확실히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만든다. 그러나 그간의 애니메니션들이 동물의 외향을 의인화하거나 인간의 표정을 차용할 수 있는 주인공을 내세웠음을 떠올릴 때, 인간과 동떨어져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로봇의 외향을 창조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로봇이라는 소재에서 연상할 수 있는 금속성, 날카로움은 여기 없다. “로봇들은 미래적이지 않다. 그들의 외모는 각자의 성격(기능)을 반영하고, 자동차나 식기세척기처럼 우리의 일상세계에서 볼 수 있는 사물을 닮았다.”(크리스 웻지) 지난 세기 중반에나 있었을 법한 낡고 푸근한 가전제품의 외향을 지닌 친근한 로봇을 디자인하고, 로봇세계의 비주얼을 만든 프로덕션디자이너 윌리엄 조이스는 유명한 동화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무려 10년 전부터 로봇을 함께 고민했던 웻지와 조이스는 재활용을 선호하는 검소한 로봇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고물상과 집안 구석구석에 위치한 일상적인 물건들을 놓고 진지한 연구를 거듭했다. 우리의 주인공 로드니의 외모는 감독의 아버지가 지닌 오래된 모터보트와 폴크스바겐 자동차에서 시작됐다. “그의 외모는 사실 불균형적이다. 우리가 생각한 것은 범퍼는 완전 새것이면서 외관의 페인트는 아직 그에 맞춰서 칠하지 못한 그런 자동차였다.”(윌리엄 조이스) 그리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 공작부인을 연상시키는 볼썽사나운 외모를 지닌 라챗의 어머니 가스캣은 고기 써는 기계 외 오래된 타자기에서 힌트를 얻었다. 여기저기 고장이 끊이지 않는 낡은 로봇 팬더는 그에 비해 대단히 쉬운 편이었다고. “그는 용도가 다한 로봇이라는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녹이 슬거나 찌그러진 방식, 페인트가 (오랜 세월 때문에) 스며드는 형태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보냈다.”(윌리엄 조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