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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의 신작 <컨테이너의 남자>(가제) 준비 중인 박광수 감독
사진 오계옥이영진 2005-07-22

“바꿔야지. 감성도… 컴퓨터 게임도 해보고 그랬다”

박광수 감독은 기자들에게 악명 높다. 대부분의 질문을 단답으로 끊어내서다. 확인을 해줄 뿐 설명은 좀처럼 해주지 않는다. 언제였던가. 인터뷰에 떠밀려 나섰다가 술만 진탕 마시고 돌아와 구시렁대던 H 선배가 있었다. 부산까지 내려갔다 전화를 걸어 봉변이라도 당한 듯한 음성으로 어떻게 기사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고 칭얼대던 K 후배가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엔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조금은 있었던 게 사실이다. 장편영화 연출은 <이재수의 난>(1999)이 마지막. 또 2003년까지 준비했던 <방아쇠>가 중단됐다. 6년 만에 신작 <컨테이너의 남자>(가제) 촬영을 앞두고 박 감독은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둔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지만 착각이었다. 침묵을 곱씹으며 다음 질문 고르느라 애먹었던 이는 결국 “질문이 다 떨어졌는데요”라고 말끝을 흐리며 항복 선언을 했고, 그는 “그럼 처음부터 다시 할까요? 인사부터”라고 면박을 줬다. 알쏭달쏭 수수께끼와 스무고개가 3시간 가까이 이어지고 그가 짧게 뱉어낸 이야기들을 거칠게 이어붙이는 동안 떠오른 생각 하나. 이번에 그가 말을 아낀 건 두달 뒤면 촬영현장에서 쏟아야 할 기를 조금이라도 뺏기기 싫어서는 아닐까. 묻고 싶어졌으나 그는 이미 곁에 없었다.

-몇년 전에 관절 수술을 받았다던데. 이제 몸은 괜찮나.

=과로만 안 하면 된다.

-촬영을 앞두고 체력도 비축해야 할 텐데.

=밤에 2시간씩 수영을 하고 있다. 2달 정도 했다. 속초가 고향이라 바다에서 수영을 배웠고 그래서 머리를 들고 헤엄친다. 수영장 갔는데 이상하게들 바라봐서 교정받았다.

-전에도 촬영 앞두고 수영을 했나.

=맥없이 풀장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 안 했다. 우리가 물에 들어갈 때는 해초나 조개를 따기 위해서였거든. (웃음) 중학교 때 서울로 전학간 친구들이 이상한 스틱 들고 고향 와서 설악산 간다고 뻐긴 적이 있었다.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지만, 열매 따는 것도 아니고 뱀을 잡는 것도 아닌데 왜 산에 가나 싶었다.

-시나리오 작업은 다 끝났나.

=마무리됐다. 지난해 4월인가, 5월인가 연출 제의받고 나서 헌팅하고 구상하고 그러다가 7월1일부터 썼다. 1년쯤 걸린 거지.

-촬영장소는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나중에 물색해도 되는 것 아닌가.

=시나리오를 쓰고 나서 헌팅할 경우 적절한 공간을 못 찾을 수도 있지 않나. (웃음) 내 경우에 헌팅 먼저 하고 시나리오 들어간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왜 그렇게 하나.

=메인 공간을 잡지 못하면 이야기가 잘 안 풀린다. 이번엔 청도에서 찍을 분량이 조금 있고 상암경기장이 조금 있고, 나머진 모두 부산이다.

-주촬영지를 부산으로 택한 이유가 있나.

=주인공이 사는 공간이 영화의 열쇠다. 돌아다니다 부산에서 버려진 땅을 발견했는데 저거다 싶었다. 주변은 탁 트여 있고 경관이 굉장히 아름다운데 그 안에 쓰레기 더미가 버려져 있는 곳이 있더라. 사유지여서 논의 중인데, 그곳이 어디인지는 밝힐 순 없다.

-컨테이너에 사는 한 남자가 딸을 만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라고 들었다.

=종대라는 인물인데. 양아치라고 하긴 좀 그렇고. 하류인생이라고 해야 하나. 짐승처럼 사는 남자다.

-딸을 만나면서 어떤 사건들이 벌어지나.

=딸이 축구를 좋아하는 소녀다. 아빠랑 월드컵 경기 보러 가는 것이 소원인. 그런 딸을 만나서 결국 소통한다는 줄거리다. 선영이라는 30대 여자도 등장하는데, 월드컵을 계기로 조화로운 패밀리가 만들어지는 거지. 가족에게 버림받은 이들이 새로운 가족을 이루는.

-컨테이너를 종대의 공간으로 설정한 이유가 있나.

=갑갑한 컨테이너 공간이 종대의 삶을 보여줄 수 있다고 봤다. 종대는 스스로 소외시키는 인물이다. 컨테이너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다가 딸을 만나서 마음의 문을 여는. 아름다운 풍경 속에 가둬진 형편없는 인물이 결국엔 그 땅을 더 훌륭하게 바꾸는 이야기라고 연상하면 된다. 더이상은 엔딩을 밝혀야 하는 것이라 안 된다.

-월드컵을 끌어온 건 어떤 의미인가.

=영화에서 종대는 돈벌기 위해 소싸움을 벌이고, 개싸움을 벌이고, 불법적인 게임을 벌인다. 그와 반대로 딸은 오픈되어 있고 합법적인 게임인 월드컵을 좋아한다. 그늘에 있던 종대가 점점 딸쪽으로 가는 과정이 보여질 것이다.

-제작자인 정훈탁 아이필름 대표의 아이디어라고 하던데.

=가볍지 않은 소재의 영화를 만들겠다고 해서 의외라고 생각했다. 정 대표를 전에 만난 적이 없는데 매니지먼트 오래 했으니 도시적이고 매끈하고 뺀질뺀질한 비즈니스맨 아닌가 싶었다. (웃음) 그런데 아니더라. 가족이라는 관계 안에서 보통 사람들이 겪는 고민이나 슬픔을 털어놓는 걸 보면. 그리고 박광수와 정훈탁, 서로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만났을 때 어떤 시너지가 나올까 궁금하기도 했고.

-소재를 들었을 때 어떤 영화가 떠올랐는지 궁금하다.

=진짜 슬픈 영화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하 선생도 언젠가 비슷한 말을 한 적 있는데. (영화 속) 인물의 한이 관객한테 흥이 되고, 기쁨이 되는 영화였으면 좋겠다.

-본인이 슬픈 영화를 보고 싶었던 것은 아니고.

=보고 싶진 않고. 처음에 들었던 아이템은 신파였다. 신파가 나쁘다는 건 아니고. 전에 내가 만들었던 영화들이 감정을 절제하고 가는 편이라서 그렇지 다 슬픈 이야기들이다. 이번엔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전에 준비했던 <방아쇠>도 그렇고. 개인의 비극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닮아 있다.

-판타지 장면이 많은 것 같다.

=종대라는 인물이 어떤 사람인가 하면, 컨테이너에 살면서 웰빙족을 꿈꾸는 인간이다. 각종 영양제와 건강식을 챙기는. 그리고 소싸움은 돈이 안 된다면서 스페인처럼 투우사를 등장시켜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해상 카지노를 꿈꾸기도 하고. 그런 장면들이 판타지로 등장하는 터라 비주얼적으로도 신경쓸 게 많다.

-종대 역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가 있나.

=논의하고 있는 배우가 있다. 내가 원했던 모호한 이미지의 소유자인데다가 서너번 만났는데 종대랑 잘 어울린다. 보통 3시간 정도 영화 이야기 하다보면 딴 데로 새게 마련인데 그 친구는 다른 이야기를 하면 가만있다가 틈을 봐서 다시 작품 이야기를 꺼내고, 무엇보다 진지해서 좋다.

-전작들을 가만 보면 고인이 되신 황해 선생(<그들도 우리처럼>)을 비롯해 안소영(<그 섬에 가고 싶다>) 등 활동이 뜸했던 배우들을 기용했는데.

=일부러 쓴다. 대학영화 하다가 충무로 들어와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분들을 캐스팅하면 영화가 깊어 보이는 것 같다. 한국영화의 정통성을 잇는 것 같기도 하고. (웃음) 이번에도 생각 중이다.

-소외된 밑바닥 인간들에 대한 애정은 여전한 것 같다.

=그런 이야기 안 하려고, 벗어나려고 하는데 자꾸만 눈이 돌아간다. 이상하게 그쪽으로 가더라.

-영화사쪽에서 처음엔 과연 연출 제의를 받아들일까 우려를 했다던데. 데뷔작 <칠수와 만수>를 시작으로 <그들도 우리처럼> <베를린 리포트> <그 섬에 가고 싶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이재수의 난> 등 그동안 만들었던 전작들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건드렸던 영화들이니까.

=시대가 변했고, 사회가 변했고. 지금도 전두환이 정권을 잡고 있으면 그런 영화 만들어야겠지. <아름다운 청년…> 같은 경우 노동운동 이야길 하자는 건 아니었고 그 시대의 지식인을 화두로 던져보겠다고 한 건데 논의가 전혀 안 됐다. 영화의 영향력에 대해 자문하게 된 계기였고, <이재수의 난>을 하면서 이런 영화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는 어떻게 대중과의 접점을 찾을 것인가.

=옛날에 <칠수와 만수> 할 때는 건강한 대중영화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대중과 만나는 방식의 연결지점이 웃음이겠다 싶어 블랙코미디 형태로 만들었고, 익사이팅한 사건을 배치했다. 그런데 개봉 시기나 여러 가지 회사 입장 때문에 대중적인 성공을 못했다. 올림픽 앞두고 영화사쪽에서 <전쟁과 평화>라는 당시 소련영화를 수입했는데 그게 이슈가 될 거라고 판단해서 <칠수와 만수>를 뒤로 미뤄버린 거지. 홍보까지 다 했는데 묵히고 나서 개봉하니까 다들 재개봉한 영화라고 알더라고. 국가의 미래가 걸린 올림픽 개막식 날 검열을 받아서 한컷도 안 잘렸는데. 성공했으면 다른 길로 갔을지 모른다. 그뒤로 대중영화 만드는 게 한국사회에서 쉬운 게 아니구나, 내 방식으로 가야겠다 싶더라. <그들도 우리처럼>부터는 그래서 내 식대로 간 거다. 이번 같은 경우는 <그들도 우리처럼> 하다가 <칠수와 만수> 때로 가는 거라고 보면 된다.

-세상이 변했다고 하더라도 감성은 쉽게 변할 수 없는 것 아닌가.

=바꿔야지, 감성도. 슬픔에 대한 정서만 하더라도 요즘 사람들은 좀 라이트(light)하다. 농도가 떨어진단 말은 아니고. 자료에 의존해서는 한계가 있다. 내가 바뀌어야 하는 거지. 전에 미술할 때 정신병자 비슷하게 집착하고 그랬는데 영화하면서 성격을 바꿨듯이, 이번 영화도 마찬가지다.

-자신을 바꾸기 위해 어떤 훈련을 했나.

=컴퓨터 게임도 해보고 그랬다. <이재수의 난> 끝나고 얼마 안 돼 <방아쇠> 준비할 때인데 지금 고1인 아들이 <스타크래프트>를 가르쳐줬다. 처음엔 조그만 모니터로 벌레들이 움직이는 거 왜 보냐 눈 나빠지게 그랬는데. 나중엔 박흥식 감독 연출부가 잘한다고 해서 우리쪽하고 4 대 4 게임을 해서 이겼다. 하하.

-게임을 배웠더니 효과가 있던가.

=영화에 대한 리듬도 바꿔야 하는데 그건 쉽지 않더라. 그래서 단편영화를 해마다 만들었는데 도움을 많이 봤다. 재미없는 것을 못 견뎌하는 체질로 바꿔야 했으니까. 찍다보니까 옛날하고 달라지더라. 남의 현장 가서도 저거 ‘옛날 스타일이네’ 싶은 게 보이기도 하고. 카메라 워킹 보면서 ‘저거 이제 안 되는데’ 혼잣말 하고 그랬었다.

-박흥식 감독도 그렇고, 밑에서 연출부 했던 감독들과 자주 만나는 편인가보다.

=이현승, 허진호, 김성수, 박흥식, 오승욱 등등. 아, 이창동 감독도 있고. 요새 돌아가는 상황 물어보고 그런다.

-1960년대 이후 감독들의 계보도를 수치화해서 영향력을 평가한 자료가 있는데 최상위권이더라. 주위에 후배들이 모이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나.

=그 사람들이 날 따르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들 따르니까 그러는 거지.

-박광수 감독 연출부는 실제 충무로에서 사단으로 불리기도 하고 학교라고 불리기도 하잖나.

=사단은 무슨. 분대 정도 되면 모를까. 그리고 내가 학생이다. 배울 것 없는 연출부는 안 뽑는다. 연출부 역할이 감독 심부름하는 건 아니거든. 촬영장에서 연출부를 이 감독, 김 감독 그렇게 부르는 것도 그래서다.

-후배들한테서 뭘 배웠나.

=허진호는 영화를 정확하게 볼 줄 안다. 다른 사람 영화 보면 제대로 짚어낸다. 김성수 감독은, 음… 이런 이야기 해도 되나. 뭐, 파워지, 파워. 조감독들끼리 축구하고 있는 자리에 시상하러 간 적 있는데 유난히 잘 뛰는 놈이 있더라고. 누구냐고 물었더니 동국대 대학원의 김성수라는 거야. 지칠 줄 모르고 뛰는 것 보면서 뭐 하겠구나 싶더라. 얼마 뒤에 연출부 시켜달라고 와서 바로 들였다. 지금도 에너제틱하다. 이현승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이다. 언젠가 공항에서 비행기가 결항돼서 줄 선 적이 있는데 새치기를 하니까 내가 말리는데도 앞에 나서서 “난 이래서 한국사회가 싫어요”라고 고함을 치더라. 현장에서도 그런 성격 탓에 당시 나이 많은 제작부들과 곧잘 싸움을 벌이곤 했다. (웃음)

-충무로에서 영화를 시작할 때 다른 감독들은 카리스마를 발휘하고자 대부분 윽박지르는 스타일 아니었나.

=조감독을 짧게 해서 그런가. 내 뿌리가 얄라셩 만들어서 대학영화 하던 때였고 함께 만들어가는 것에 익숙해져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남이 나한테 윽박지르는 거 싫어해서 나도 윽박지르는 거 싫어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

-시나리오 쓸 때부터 현장 지휘까지 연출부한테 많은 권한을 준다고 들었다.

=남들이 보면 난 소풍 나온 아저씨 같을 거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때 아들을 단역으로 쓰려고 데리고 갔는데 갔다 와선 나보고 “아빠는 뭐 했어?” 그랬으니까.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허종호, 김은경, 권지연 등 실력있는 연출부 스탭들이랑 같이 시나리오 짰다. 그들이 시나리오 쓸 때 난 책도 보고 다른 시나리오도 쓰고 그런다. 그래야 나중에 볼 때도 객관적인 눈이 생긴다.

-영화는 감독의 것 아닌가.

=콘티를 다 짜서 가더라도 난 현장에 가면 동양화에서 난 치듯이 영화를 찍는다. 다 잊어먹어야지 새로운 게 나오거든. 계산대로 하면 내가 굳이 연출 안 해도 된다고. 어느 순간에 뭔가 내놔야 하는데 현장 생각만 하고 있으면 막혀버리는 거지. 또, 참여하는 스탭들이 모두들 자기 영화라고 생각해야지, 좋은 작품이 나온다. 연출부의 경우만 놓고 보면 그들이 영화를 명확하게 이해해야지, 내가 현장에서 완벽하게 지휘가 가능하다. 연출부들한테 현장에서 감독이라고 부르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야 현장에서 변동 사항이 있을 때 내가 금방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연기 지도할 때 직접 시연도 한다고 들었다.

=전체 중심 톤을 잡고 가는 배우들한테는 안 한다. 소 몰듯이 왼쪽, 오른쪽 하는 거지. 대신 순간적인 감각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는데 전체 톤을 못 잡는 배우들한테는 시연을 한다. 나도 연극하면서 무대에 여러 번 서봤다.

-이번 영화 스탭들 중엔 영상원 제자를 비롯해서 눈에 띄는 사람들이 많다.

=연출부 5명 중 4명이 제자고. 요즘 애들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많이 배운다. 또 아직 얘들은 이렇게 보는구나 하면서 같이 붙어도 되겠다 안심도 하고. 아, 내가 발굴한 김병서 촬영감독이 있고. (웃음) 신경만 조명기사도 <칠수와 만수> 조명팀이었고, CG를 맡을 친구도 <칠수와 만수> 때 연출부 했던 친구고. 인연들이 많고 한번씩 작업을 해본 이들이라서 편하다.

-이젠 영화계에서 어른 대접 받을 때가 많지 않나.

=어른 대접 받고 싶지 않다. 어른도 아니고. 어른 되면 영화 잘 못 만들 것 같아.

-같이 사는 분(이연호 전 <키노> 편집장)이 시나리오에 대한 모니터는 해주나.

=아니다. 촬영장에도 안 온다. 그냥 매번 괜찮다고만 한다. 아, 오늘 인터뷰한다고 했더니 걱정하더라. 인터뷰 대상으로는 폭탄인데 어떻게 하냐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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