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푸른 바다를 헤엄치던 고등어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은 이렇게 중얼거리며 현재를 회한하는지도 모른다. 옛 사랑이라는 과거에 발목잡혀 사는 영훈과 딸만을 바라보고 사는 진영을 비롯해 네 남자의 삶에는 결핍의 공간이 들어앉아 있다. 옛 감정을 들춰내게 하는 조동진의 노래처럼, <산책>에는 젊은 날에 대한 향수가 은근하게 펴져 있다. 눈물젖은 <편지>로 전국 200만 관객을 울렸던 이정국 감독은 <산책>에서 중년의 고개를 넘는 남자들의 일상을 묽고 엷게 담는다. 화인(火印)의 역사와 희화화한 현실비판, 인공의 사랑이 빠진 자리에 남은 건 볼품없는 일상뿐이다. 이 남자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에 연민이 어려있는 건, 그들 어디엔가 그가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감독은 소재의 일상성을 지나치리만치 평이한 영화언어로 담아냈다. 평범한 인물, 평범한 이야기가 곧장 영화 전체를 장악해버린 것이다. 등장인물을 비롯해 현실의 일상성을 영화로 재현함에는 치밀한 미학적 조작이 필요한데, <산책>은 그 과정을 간과했다. 테크닉을 배제하고 카메라를 고정시켜둔다고 해서 일상의 우수가 고스란히 화면에 살아나는 건 아니다.
영훈으로 분한 김상중을 제외하면 <산책>의 남자친구들은 스크린에 낯선 얼굴들이다. 양진석은 어쿠스틱 밴드 노래그림의 멤버, 라디오 DJ, TV리포터 등으로 낯익으며, 이명호는 <백마강 달밤에> 등의 연극에서 연기를 다져왔다. 중견 탤런트인 정호근은 <산책>이 스크린 첫나들이고 임권택 감독의 <아제아제 바라아제>에서 지적인 비구승을 그려냈던 진영미가 진영의 아내로 오랜만에 얼굴을 내보인다. 조동진과 김광석 프로젝트 밴드의 음악이 오솔길의 한가로움을 소리로 살려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