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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과 오이디푸스의 고뇌를 품은 ‘신조인간’, <캐산>
문석 2005-06-28

삶은 무엇이고 죽음은 무엇이더냐, 인간은 뭐고 인간 아닌 건 뭐더냐. 햄릿과 오이디푸스의 고뇌를 품은 ‘신조인간’ 캐산, 화려한 컴퓨터그래픽 속에서 되살아나다.

가까운 미래, 대아시아연방공화국은 50년 동안의 처참한 전쟁 끝에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 전쟁은 끝났지만 제7관구에서는 국지전이 벌어지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다. 세포학의 권위자인 아즈마 박사는 모든 세포로 변화 가능한 ‘신조세포’를 이론적으로 완성하고 군사병기에 관심을 둔 군부의 은밀한 지원으로 본격적인 실험에 착수한다. 이 와중, 아즈마 박사의 아들 데츠야는 약혼녀 루나를 남긴 채 전선으로 향하고 얼마 뒤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다. 바로 그날, 실험실에서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실험 용액 안에서 세포들이 저절로 결합해 인간들이 만들어진 것. 이들 ‘신조인간’은 대부분 경비병들에게 사살되지만 살아남은 극소수는 제7관구로 들어가 인간에 대한 복수를 다짐한다. 광기에 휩싸인 아즈마 박사는 데츠야의 시신을 용액에 집어넣어 부활시킨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년 전쯤 한국 TV에서도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방영됐던 <캐산>이 실사영화로 부활했다. 실사영화라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캐산>은 CG애니메이션과 실사영화의 중간쯤에 자리한다. 일본 최고 가수 중 한명인 우타다 히카루의 남편이자 뮤직비디오 감독인 기리야 가즈아키는 화려한 컴퓨터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의 세계 안에 실제 배우들을 집어넣고 뮤직비디오 속도로 이미지를 붙여나간다. <월드 오브 투모로우> <씬 시티>보다 <풍운>에 가까운 CG의 완성도를 감안할 때 <캐산>의 비주얼은 화려한 껍데기만 앙상한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캐산>은 만화영화 버전과 달리 액션 활극이기를 거부한다. 주인공 데츠야, 그러니까 캐산이 던지는 질문은 햄릿의 그것과 비슷하다. 전장에서 사망한 그는 아버지에 의해 다시 생명을 얻지만, 이를 고통으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인간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안온한 삶을 위해 끝없이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켜야 하는 잔혹한 존재다. 그의 “난 이제 인간이 아니야”라는 외침은 부활한 생명체라는 존재 탓이 아니라 이미 전장에서 민간인을 쏘아죽이며 인간성을 잃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까지 품은 그는 햄릿과 오이디푸스의 합체인 셈이다. 과연 그가 물리쳐야 할 상대는 신조인간들의 기계군단인가, 공화국의 군대인가, 아니면 아버지인가. 아니면 자신 안에 살고 있는 증오심인가. <캐산>은 강렬한 메시지를 대사로 끝없이 들려줘 보는 이를 지치게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적 세계관에 동의하는 사람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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