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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대학생 말투가 싫다
2001-07-19

김지운칼럼

일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말투를 보면 대게 두 가지로 크게 나누어지는 걸 알 수 있다. 하나는 운동권 말투고 하나는 양아치 말투다. 얼마 전 우연히 특강을 하는 자리였는데, 대학교 3, 4학년들이 대상이었다. 한 대학생이 질문을 한다. “감독님은, 척박한 한국적 영화현실 안에서 자신 스스로 견지하고 있는 운동성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면 어떤 방법으로 수렴하고 노정하실 건지 말씀해주세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턱 막힌다. 이게 질문이야?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대답하라고 이런 질문을 하는 건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럴 때마다 “아… 네, 참 좋은 질문입니다”라고 하거나 “시간 관계상 길게 말씀드릴 순 없고…” 하면서 딴 얘기를 하거나 그도 저도 아니면 삐질삐질 땀 흘리면서 못 들은 척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 질문에 대답을 충실히 하지 못한 죄 때문에 특강이 끝나고 나서 그 질문자에게 조용히 다가가 인기나 만회할려고 “한국영화에 대해서 공부 많이 하세요?” 하면서 비굴하게 웃어보이면 그 친구는 생뚱맞은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네? 저 한국영화 안 보는데요” 한다. 난 너무도 기가 막혀 눈을 커다랗게 치켜뜨고 “뭐라고? 야∼ 이 똥땀을 내고 뒈질 자슥아, 너 아까, 척박한 한국영화 현실 안에서 뭐 어쩌구 했잖아?” 하며 그 학생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환상에 잠시 빠진다. 현실로 돌아와서도 내 상태는 환상과 그리 다르지 않다. 머리에 김이 난다. 만화로 표현한다면 내 머리 위에 목욕탕 표시가 여러 개 떠 있었을 거다.

어느 장소였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또 그 말을 누구한테 했는지 모르지만 뜬금없이 “난 대학생 말투가 싫다”라고 한 적이 있었다. 대학생 말투가 뭐냐고 물어보면 딱히 할말은 없지만 어쨌든 그런 말투가 있다. 예를 들면 특강 때 조금 전 예를 든 그 학생의 화법 같은 거다. 말로 친다면 틀린 말도 아닌데다가 쭈욱 풀어놓으면 뛰어난 문장에 적확한 단어선택과 풍부한 어휘구사력, 한결같이 빼어나고 완전하기 이를 데 없는데 듣고 있으면 단 한 가지도 알아들어 먹을 수 없는 말 같은 거,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말 같은 거, 이런 게 있다. 이런 것이 내가 말하는 대학생 말투, 다른 말로 운동권 말투라고 하는 것이다. - 이 지점에서 아무쪼록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운동권인사를 폄하하거나 희화화할 의도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기 바람. 오히려 오늘날 변절한 수많은 얼치기 운동권자들을 야유하기 위해 쓰임.- 어쨌든 나는 리얼리티가 없는 말에서 느끼는 공허함과 미숙함, 그런 것을 대충 싸잡아 운동권 말투, 대학생 말투라고 한다. 운동권 말투, 대학생 말투는 대학생만 쓰는 게 아니다.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다니고 가정을 가진 사람까지도 그런 말투를 쓰는 사람이 있다. 뭐 이것 저것 좋은 말을 많이 하는데 한개도 알아듣지 못하는 거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가장 좋은 말이란 자기가 맨눈으로 보고 느끼고 맨몸으로 부딪혀서 느끼고 그런 것들을 고민하고, 그 고민의 과정이 사유과정이라면, 그렇게 사유화했다가 최종적으로 말로 또는 글로 나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단순한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엽기 코믹 에로틱 호러물 <록키 호러 픽쳐쇼> 보면서 시종일관 낄낄거리다가 끝날 때 “아∼ 쓰발, 슬프네. 왜 슬프지? 이 영화가 슬픈 게 맞는 거야? 누구를 온전히 사랑한다는 게, 사랑받는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거야?” 뭐 이러면 되는 거 아닌가 한다. 편견일지 모르지만 어쨌든 말이 살아 숨을 쉬고 있구나 하고 느껴지는 건 다 양아치 말투다. 물론 얼치기 양아치 말투도 있다. 운동권, 대학생 말투처럼 이 얼치기 양아치 말투도 귀에 안 들어오고 싱겁고 재미없긴 마찬가지다.

나는 어떠냐면, 그러니까 상당히 안 좋은 케이스인데 말할 때는 운동권 말투로 하고 듣는 것은 양아치 말투만 듣는다. 이건 무슨 위선일까?

김지운/ 영화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