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문제없어요.” 영화가 시작되면 부부인 듯한 커플이 나란히 앉아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답과는 달리 이들은 문제없는 부부의 모습이 절대로 아니다. 결혼 5년째인지 6년째인지 옥신각신하질 않나, 섹스 빈도를 묻는 상담가의 말꼬리를 잡으며 히스테리를 부리지 않나. 뚱한 얼굴의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가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처럼 인터뷰의 모양새로 문을 연 영화는 이후 <부부 클리닉-사랑과 전쟁>의 터프하고 섹시한 판타지 버전으로 돌변한다. 감전되듯 첫눈에 반해 뜨겁게 사랑했지만, 급속히 열정이 식고 권태에 빠진 이 부부는 결국 서로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만다. ‘그동안 속고 살았다’는 것을 알려주고 나서, 그 참에 식칼이나 기관총 같은 살벌한 무기까지 들려준다면, 죽기 살기로 싸우지 않을 수 있을까. 서로가 라이벌 조직에 소속된 킬러이고,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 수 있다면, 더더욱 사랑이나 화해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는 서바이벌 게임과도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 몰린 부부의 화끈한 대결을 다이내믹하게 따라잡는다.
서로의 정체를 알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 킬러 부부, 라는 독특한 설정은 총격과 추격 등의 액션을 예고하지만, 영화는 주로 로맨틱코미디의 전통과 자장 안에 머문다. 경쟁관계인 두 조직에 소속돼 있던 이들은 같은 타깃을 노리면서, 서로의 정체를 깨닫게 되고, 목격자인 상대를 이틀 안에 처치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사랑하지 않으니까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라고 생각하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주먹을 날리는 이유는 직업정신 때문이라기보다는 “나와의 결혼이 위장이었던가” 하는 배신감 때문이다. 서로를 죽일 듯이 싸우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갑자기 몸을 섞는 장면은, 셰익스피어와 체호프의 희극에 나오는 남녀들에서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커플로 이어져 내려온, 미움이 사랑되고 사랑이 미움되는 연애의 사이클을 조금 더 과격하게 변주한 것일 뿐이다. 존과 제인 또는 스미스 부부. 한국이라면 ‘철수와 영희’쯤으로 풀이될, 두 배우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촌스러운 작명도, 연애와 결혼의 ‘일반론’을 펼쳐 보이려는 포석이었을 것이다.
시들어버린 사랑이 어떻게 소생하는지를 보여줄 빌미로, 영화는 이제 부부 공동의 적을 내세우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홍콩 누아르에서나 보았을 법한 액션 스펙터클로 과감한 점프를 시도한다. 이들 부부의 손에 죽어나가는 이들이 너무 많고, 부서져나가는 건물이 너무 많다는 것보다 심각해 보이는 문제점은, 그런 과도한 폭력과 파괴의 퍼레이드가 이들이 사랑을 회복하게 되는 계기나 과정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값비싼 대형 액션신이 즐비한 후반부의 긴장과 흥미가 다소 떨어지는 것은 그런 이유다. 근사한 그림을 만들기 위해, 해피엔딩이라는 결말로 달려가기 위해, 간혹 이해할 수 없는 상황들이 나열되기도 한다. 논리적 허점이거나 의도적인 과장으로 보이는 이런 비현실성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은 역동적인 촬영과 강렬한 색감으로 빚어 근미래적인 인상마저 주는 영상이 작품 자체를 ‘판타지’로 끌어안을 여지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임스 본드의 판타지를 보탠 <장미의 전쟁>의 리메이크”라는 한 평자의 비유에는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이 영화의 진정한 미덕은 액션이나 스펙터클이라기보다는 간간이 빛을 발하는 유머와 디테일이다. 서로가 킬러라는 심증은 있지만 물증은 없는 상태에서 탐색하는 부부의 긴장 가득한 저녁식사 장면은 그중에서도 압권이다. 플라멩코 선율에 맞춘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부부의 눈빛과 표정에 담긴 긴박한 순간들을 잡아내는 감각은 그 어떤 대사나 사건보다도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몰려드는 킬러들을 처치하는 짬짬이 에어 서플라이의 노래를 흥얼거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가장 치열하고 요란한 상황 속에서 한발 물러서서 능청을 부리는 여유도 재밌다. 코미디적 요소가 있는 인물 위주의 이야기(<고>)에서는 한없이 재기발랄했고, 크고 역동적인 장르영화(<본 아이덴티티>)에선 뜻밖에 진중했던 더그 라이먼 감독의 개성이나 이력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라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두 주연배우의 카리스마다. 두 배우에게 스미스 부부의 연기는 일종의 복습편이다. 감독보다도 먼저 작품에 합류했다는 브래드 피트는 <스내치>와 <오션스 일레븐> 사이를 오가며, 완벽해 보이는 외양 뒤로 껄렁하고도 허술한 모습을 드러내, 예상치 않았던 웃음을 자아낸다. 안젤리나 졸리는 <툼레이더>의 라라 크로프트에 섹시한 자신의 이미지를 보태, 애초 스미스 부인으로 낙점됐던 니콜 키드먼보다 적역이라는 평을 이끌어냈다. 최고의 출연작은 아니지만, “훗날 그들의 가장 아름답던 시절을 담은 영화로 기억될 것”이라는 말에는 이견을 달 수 없다. 따로 또 같이, 화면을 빛내는 이들의 매력과 재능은 압도적이다. 실제 상황인지 고도의 마케팅 전략인지 헷갈리는 둘의 스캔들 때문에 작품을 더 주목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스크린에서 감지된 저들의 ‘케미스트리’가 연기일까 실제일까를 가늠하느라, 영화에 제대로 몰입하지 못하는 위험이 따르는 것 또한 사실이다.
죽여야 사는 부부들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난 부부의 이야기는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가 처음이 아니다. 이런 설정에서 가장 먼저 연상되는 영화가 바로 <장미의 전쟁>이다. 장성한 자식을 떠나보내고 평온하게 살아가던 부부에게 느닷없이 위기가 찾아온다. 별다른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남편이 심장마비라는 소식에 병원으로 달려갔던 아내는 사소한 위장병이라는 진단을 듣고,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당신이 죽었다는 상상을 했는데, 문득 그 사실이 행복하게 받아들여졌다”는, 해서는 안 될 고백을 남편에게 해버린 뒤로, 이들은 사사건건 다투게 된다. 서로의 애장품을 파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 죽기 살기로 육박전을 벌이다가, 거의 동시에 죽음에 이르는 파국을 맞는다. 특별한 계기없이 증오와 살의를 품게 된 부부관계가 한치의 타협도 망설임도 없이 파멸로 직행하던 것이나, 마지막 순간 화해의 제스처로 내미는 남편의 손을 뿌리치고 마는 아내의 모습은, 억지 해피엔딩과 신파적 감상에 익숙한 당시의 관객에게 크나큰 충격이었다. <로맨싱 스톤>에서 다정하게 짝을 이뤘던 마이클 더글러스와 캐서린 터너가 그들의 전작과 역할 이미지를 블랙코미디 안에서 패러디한 것도 흥미로웠다. 한적한 교외에서 살아가는 중산층 부부의 균열과 동상이몽을 그렸던 <아메리칸 뷰티>나 두 여자 사이에서 방황하던 우유부단한 남자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옛 아내와 드잡이를 벌이던 <죽어야 사는 여자> 또한 서로에 대한 살의를 거리낌없이 드러내거나 실행에 옮기는 부부의 대담무쌍한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한국영화로는 강우석 감독의 <마누라 죽이기>가 그런 이야기였다. 바깥일의 결정권은 물론 가정에서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대찬 아내에게 지쳐 있던 남편이 매력적인 여배우와 내연의 관계를 맺으면서 아내를 죽이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살인청부업자를 고용한다는 이야기로, 국민 정서를 고려한 까닭인지 코미디적 요소를 강조했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