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도피를 감행한 거부의 딸과 동행하게 된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의 피터(클라크 게이블)와 어느 백만장자의 딸의 재혼을 들여다보는 <필라델피아 이야기>(1940)의 코너(제임스 스튜어트), 이 두 주인공의 중요한 공통점은? 둘 다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고전기의 스크루볼 코미디 영화들에 저널리스트들이 자주 등장한다는 사실은 꽤 흥미로운 데가 있다. 무언가 숨겨진 사실들을 캐낸다는 것이 새로운 ‘관계’ 구축과 관계가 있다고 보아서였을까? 30∼40년대의 이 고전적인 로맨틱 코미디 영화에 대한 오마주처럼 보이는 <사랑의 특종> 역시 그처럼 기자들의 세계에 초점을 맞춘 영화다. 게다가 남녀 주인공 모두 기자라는 점은 이 영화가 혹 이혼한 커플인 편집장과 여기자의 앙숙 관계를 다룬 <여비서>(His Girl Friday, 1940)로부터 영감을 받은 건 아닐까, 라는 괜한 생각마저 들게 한다. <사랑의 특종>의 감독인 찰스 샤이어가 이전에 스펜서 트레이시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1950년작 <신부의 아버지>를 리메이크해 고전 영화에 대한 관심을 이미 보여줬음을 상기한다면 이런 추측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사랑의 특종>은 특종을 잡으려는 두 남녀 기자 사이의 라이벌 관계로 막을 연다. 그 당사자는 이제 저명한 칼럼니스트로 자리잡은(그리고 플레이보이로도 이름난) ‘시카고 크로니클’의 스타인 브래킷과 ‘시카고 글로브’의 신참 기자이지만 프로페셔널리즘에서는 결코 그에 뒤지지 않는 당찬 여성 피터슨. 열차탈선 사고가 이 둘의 만남을 주선해주는 가교 역할을 한다. 마주쳤다 하면 아웅다웅 설전(舌戰)을 벌이는 이들은 사건 취재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자 경쟁자 관계를 유지하는 가운데 협력하기로 서로 합의를 본다. 이제 이들은 사고의 이면에 숨어 있는 어두운 음모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닉 놀테와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 영화의 주인공 브래킷과 피터슨은 경력으로 보나 성격으로 보나 화합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이는 견원지간(犬猿之間)의 인물들. 간단히 말해 <사랑의 특종>은 서로 “만약 내게 이성의 타입이란 게 있다면 아마 당신의 정반대 타입을 찾으면 되겠지”라고 말하는 이들이 결국 사랑의 이름으로 결합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영화다. 그러기 위해선 계속 이어지는 언전만 갖고는 화학작용을 일으킬 촉매로 강도가 좀 미약하다고 생각했는지 영화는 그들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부과했다. 정체 모를 킬러들이 수시로 이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음모의 플롯을 설치해놓은 것. 하지만 로맨스와 스릴러의 그리 매끈하지 않은 결합은 그 어느 쪽으로도 큰 만족을 주지 못하게 만든 면이 있다. 결과적으로 <사랑의 특종>은 별로 우습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 감정을 울리지 못하는 러브 스토리, 긴박하지 않은 스릴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여비서> 같은 로맨틱 코미디의 고전과 스릴러의 고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를 참조하고 와이프나 아이리스 같은 ‘지나간’ 기법을 써본들, 무턱대고 ‘고전’의 향취가 묻어나지는 않는 법이다.
재능있는 샤이어씨
감독 찰스 샤이어
영화감독으로서뿐 아니라 제작자, 시나리오 작가로도 잘 알려진 찰스 샤이어(1941∼)는 코미디 장르에 재주가 있는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마도 그의 트레이드 마크라면 중산 계층의 일상과 가족의 가치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을 그린 성인 코미디물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다소 과장된 상황에 빠진 인물들을 그린다. 1970년대 후반부터 코미디 영화 제작에 참여한 샤이어는 주로 그의 아내인 낸시 마이어스, 그리고 앨런 맨델과 함께 팀을 이루어 작업해왔다.
70년대에 인기있는 TV 시리즈의 대본을 집필했던 샤이어가 영화쪽으로 걸음을 옮긴 것은 77년, 버트 레이놀즈가 주연한 <스모키와 도둑>(1977)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부터. 이후 그는 몇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썼는데, 그 가운데 두번의 결혼이 실패로 돌아간 끝에 여군에 지원한 여성을 그린 골디 혼 주연의 <벤자민 일등병>(1980)은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이 영화의 성공 덕분에 샤이어는 감독으로 데뷔할 수 있게 된다. 84년에 만든 <화해할 수 없는 차이>가 그의 데뷔작. 다이앤 키튼이 여피 여성으로 출연한 샤이어의 두 번째 영화 <베이비 붐>(1987)은 큰 성공을 거두어 TV용으로 개작되기도 했다. 50년에 나온 동명 영화를 리메이크한 <신부의 아버지>(1991)는 딸을 시집보내게 된 아버지의 애정과 갈등을 섬세하게 묘사한 작품. 샤이어 감독과 주연 스티브 마틴이 다시 모여 만든 <신부의 아버지2>(1995)는 전편의 주인공이 아들과 손자를 한꺼번에 보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코믹하게 다루었다. 샤이어의 최근작으로는 일란성 쌍둥이의 이야기를 그린 <부모의 덫>(The Parent Trap, 1998)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