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스톱을 부르는게 프로듀서다”
“한국영화, <씨네21> 공히 최근 10년은 의미심장한 세월이라고 생각해요. 현재는 MKB지만 명필름도 올해 10주년이니까요. 1995년 8월에 창립한 명필름이 지나온 궤적이 한국 영화산업과 자본의 변화를 읽는 한 사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코르셋>이 창립작인데 그 작품은 삼성영상사업단 전액투자를 받았어요. <접속>은 창투사의 선두격인 일신창투와 작업했고 일신과는 3편, 대기업인 CJ엔터테인먼트와는 <해피엔드>를 비롯해서 3편을 했죠. MKB는 각자 코스닥 상장에서 좌절을 맛본 두 회사가 후일 기업결합을 한 것인데 MK버팔로가 법인명, 제작브랜드가 MK픽처스예요. 강제규&명필름으로 했는데 강 감독님이 본인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게 싫다고 하셔서, MK라는 이상한 이름을 갖게 되었죠. 남들은 몽구픽처스냐고 하고, ‘프랑스의 MK2가 자회사냐’라는 사람도 있어요. (웃음) 현재 실제 대표이사는 이은 감독이고 지금 저는 그냥 사장 혹은 이사예요. 명필름 때 내가 대표를 해서 아직도 제가 대표이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명필름 때는 이은 감독, 저, 제 친동생인 심보경 이사가 프로듀서(이하 PD)를 맡았죠.
무엇보다 PD의 개념이 아직도 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그제큐티브 PD(이하 EP), PD, 라인 PD(이하 LP) 등 프로듀서의 역할과 개념의 세분화가 분명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의 상업적 활동을 총괄하는 것이 EP, PD는 영화 콘텐츠의 크리에이티브한 부분을 맡는 것이죠. 실제 현장에서 감독들 옆에 PD가 붙는데 LP인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LP는 PD가 인정한 범위에서만 권한을 갖는 거라고 생각해요. PD라면 예산관리의 도장을 찍는 책임자인 동시에, 시나리오 작가, 감독 같은 영화의 핵심적인 인물들을 결정하고 진행해야 하니까요. 그런 PD의 가장 큰 임무는 손익분기점을 맞추는 거예요. 상업영화건 예술영화건 본전은 한다는 마음가짐. 더 벌면 좋은 거고요. 한국영화의 선순환구조가 계속되려면 손해보지 않는 영화가 만들어져야 해요. 예산과 일정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화의 내용에 따른 규모를 판단하는 문제가 프로듀서의 역량인 거죠. 여기서 제일 중요한 것은 프리 프로덕션을 잘 진행하는 거예요. 프리단계 앞에 디벨롭을 따로 분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화 제작과정에서 고, 스톱을 부르는 것은 PD라고 생각하는데, 개발 단계에서 감독이 쪼고, 협박하고, 캐스팅을 하자, 파이낸싱해야지, 같이 먹고살아야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건 기본이니까 그 순간에 고 혹은 스톱을 부르는 게 굉장한 강단과 판단력이 필요하거든요. 개발을 얼마나 잘 가져가고 프리를 잘하는가에 영화의 50%는 결정난다고 봐요. 이후에 프로덕션은 유능한 스탭과 효율적으로 진행하면 되니까.”
오기민 | 심 대표는 80년 후반 서울영화 기획실에서 젊은 영화인의 첫 세대로 시작을 했던 분이지요. 그때부터 신씨네, 시네마서비스, 명필름, 싸이더스가 선두그룹을 형성했어요. 영화 이야기를 하자면, <그때 그 사람들>이 칸에서 법원명령 때문에 삭제된 채 상영되었는데 그쪽 반응은 어땠나요.
심재명 | 한국영화 사상 유례없는 사건이죠. 행정부 소관인 영등위에서 15세 관람가가 났는데 사법부에서 그걸 자르라고 명령하다니. 그때 이야기를 하니까 아직도 울화가 치밀어요. 임상수 감독님이 이야기를 처음 꺼낸 건 <바람난 가족> 프리 프로덕션 때였어요. 임 감독님은 어떤 톤이나 매너로 이야기해야 제작자에게 잘 통하는지를 아시는 분이에요. (웃음) <플레이어>에서 한정된 단어로 요약하라고 요구하는 장면처럼 말이죠. 위정자를 조폭으로 그려내는 블랙코미디라는 설명에 ‘이제는 말할 수 있다’가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다’가 되겠구나 싶어서 흔쾌히 제작에 임했어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현대사의 사건 하나가 우리를 얼마나 강한 트라우마로 짓누르고 있는지 실감했어요. 칸에서는 폭소의 도가니였다더군요. ‘한국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라는 반응도 있었다더군요. 그나마 칸 반응에서 위로를 좀 받았어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외판매도 진행 중이고요.
오기민 | 화를 돋워서 죄송한데, 이야기가 나온 김에 하나 더 질문을 드리면 그때 법원의 결정, 향후 본안소송 과정과 예상되는 결과가 있다면.
심재명 | 소송은 진행 중이고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어렵지만, 복원해서 원래대로 상영한다는 바람은 변함이 없어요.
오기민 | 명필름은 굴곡이 많고 굉장히 드라마틱한 요소가 많아요. 발에 채이는 게 영화사지만 꾸준히 자신만의 색깔을 가져왔는데 그 비결이라면.
심재명 | 자존심으로 버텨왔죠. 겸손한 얼굴에 숨겨진 오기와 의지로.
오기민 | 오기는 전데요. (웃음)
오기민 | 합병을 거쳐 전체 작품 수가 늘어나면서 어떤 노력, 준비, 상황의 변화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심재명 | <공동경비구역 JSA>까지는 1년에 1편에서 1.5편을 했어요. 그 다음에 <버스, 정류장> <후아유> <YMCA야구단>으로 죄다 말아먹었죠. (웃음) 현재는 1년에 5∼6편은 만들 수 있는 역량이 있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는 10편도 가능하리라 생각해요. 1년에 1편, 1.5편을 만들 때는 뜸을 많이 들였어요. 프리 전에 개발단계를 오래 가져가고 후반작업에 공을 더 들이는 식이죠. 지금은 기존의 3명 외에 신인 PD들이 각각의 역할분담과 역량을 강화하고 그외의 인력들이 도울 수 있는 구조로 제작구조를 재편했어요. 그때는 세 명의 PD가 한 프로젝트에 다 달라붙어서 일을 했다면 이제는 개별적으로 작품을 책임지는 거죠.
오기민 | 기존 투자사인 CJ, 쇼박스, 롯데가 얘기한 안정적 투자자가 되지 못하고 불안하다고 판단하나요.
심재명 | 근본적으로는 그렇죠. 그건 개별 프로젝트에 한정된 파이낸싱이니까요. 저희는 단순히 제작만 하고 전액투자를 받는 게 아니라, 제공사 역할도 겸하면서 간다는 포석이에요. 기타 다른 기관투자자와의 파이낸싱을 말하고. 영화사가 프로젝트별로 파이낸싱을 해야 하는 리스크를 줄이고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이죠.
오기민 | 명필름 시절, 세 명의 PD가 같이 작업하는 과정이 많아서 서로 반대하는 경우도 많았던 것 같은데 사례를 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심재명 | 제 프로젝트가 반대에 부딪혔던 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제가 아득바득 반대했던 <욕망>은 이은 감독이 PD를 하려고 이렇게 거짓말을 하더군요. 떡영화. (웃음) 아 이건 임상수 감독님 용어인데. 떡영화로 만들어서 마케팅할 수 있다고. 김기덕 감독의 <섬>도 한때 제가 반대했죠.
오기민 | 온갖 변명과 미사여구에도 불구하고 제 경우는 결국 작품선택은 개인적 취향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그래서 큰 회사가 되기는 글렀구나. (웃음) 이런 게 좀 아쉬웠다는 작품을 꼽는다면.
심재명 | 많죠. 특정작품보다는 상황이나 과정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캐스팅이 잘 안 되면 무조건 그 배우랑 하겠다고 기다리는 PD도 있지만 제 생각에는 캐스팅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자존심상 용납 못하는 일이에요. 그 배우만 끝까지 기다리면 스탭들은 봉인가요? 한편 <후아유>는 당시에는 빅스타가 아니던 조승우, 이나영씨를 기용해서 오랫동안 촬영해서 21억원 정도 제작비로 공을 들였는데 그걸 또 바보처럼 월드컵 기간에 틀었어요. (웃음) 월드컵이 그렇게 무서운 경쟁상대인지 몰랐어요. 돌발변수였죠.
오기민 | 충무로에서 마케팅의 귀재로 정평이 나 있는데 개인적으로 열등감을 느낍니다. 저는 우리 회사 마케팅 담당자가 마케팅을 모른다고 꾸중할 정도니까. (웃음) <접속> 당시에는 관객의 평균연령이 본인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는데 지금은 많이 차이가 난다는 기사를 봤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심재명 | 세대 차이나 트렌드를 읽는 눈이 둔해지는 걸 느끼죠. 그래서 위기의식으로도 작용하고요. <바람난 가족>은 우리 식구들은 이해 못하는데, 제 경우에는 딱 와닿는 이야기였어요. <와이키키 브라더스>도 젊은 세대보다 진지한 영화니까요. 저희나 제가 잘할 수 있는 게 또 있는 거죠. 현재 저희 회사 평균 연령이 32살이에요. <접속> 때만 해도 평균연령이 20대 중후반이었는데 참.
오기민 | 귀여니의 인터넷 소설에 대해서는 검토한 적이 없었나요.
심재명 | 저희 회사가 고령화임에 분명해요. (웃음) 비슷한 사람을 뽑고 같이 일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보면서 그쪽에서 잘 만들 수 있는 이야기구나 생각했어요. 왜 대중적으로 성공하는지도 이해가 가지만 우리가 만들었으면 현재보다 안 좋은 결과였을 거예요. 시나리오 고치느라 3년 소비하고 그랬겠죠. (웃음) 뻔해요. 그거.
오기민 | 이번에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될 것으로 알려졌는데 공적으로 할 일에 대한 포부를 밝힌다면.
심재명 | 현장영화인의 의견과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차원의 위촉인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한국영화가 궁극적으로 살아남는 방법은 다양성이니까 저예산영화를 중점적으로 투자하는 투자조합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적정한 예술영화전용관 수는 100∼200개로 보니까 그 부분에도 의견을 개진하고요.
관객1 | 스탭 처우 개선 문제에 대한 비판이나 논의가 많습니다 어떻게 생각하나요.
심재명 | 현장 스탭 처우 개선 문제는 한국영화의 왜곡된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예요. 제작 단계별로 정확한 시스템이 확보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가야 연출부를 고용해야 하는 거죠. 책임자 밑에서 일하는 사람도 전부 개별계약을 해야죠. 개별계약뿐만 아니라 기간계약도 이제는 인간적으로 읍소하는 걸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죠. <바람난 가족>의 캐스팅 때도 배우가 드라마와 영화를 병행하면 프로덕션 일정을 맞출 수가 없었어요. 기간계약을 한 우리는 기간이 늘어지면 그만큼 돈을 더 내는 부담이 생기니까.
관객2 | 내수시장에 대한 견해가 궁금한데요? 내수시장이 무너지면 대안은 갖고 있으신지.
심재명 | 내수시장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상해본 적이 없어요. 내수시장의 문제점이라면 극장 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과 비디오시장의 추락에 DVD가 시장 형성이 안 되고, 해외판매가 특정 국가에 편중된 것도 걸림돌이죠. 무엇보다 모든 멀티플렉스를 먹여살리는 영화가 한국영화인데 부율이 여전하다는 게 문제예요. 한국영화가 시장경쟁력이 없던 시절과 똑같이 5:5인데 부율의 변화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처럼 슬라이딩 시스템(개봉한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부금 비율에 차등을 두는 시스템)의 도입도 고려할 수 있고 극장별 가격 자율화도 필요해요. 시설 좋은 극장과 나쁜 극장이 요금이 달라도 좋다고 생각해요.
관객3 | 대기업이 들어오면서 투명해졌다고 했는데. 현재 투자받은 것을 어느 선까지 밝히는 게 가능한지. 회사에서 작품별로 예산과 일정이 어느 정도까지 지켜지나요.
심재명 | 저희 회사는 거의 정해진 예산과 일정에 맞추는 편이죠. 10편 중에 9편을 맞춘다고 보시면 되요. 예비비 5∼10% 정도 책정되는데, <안녕, 형아>가 15회차, 1억5천만원이 초과돼 그 10편 중에 1편이라 할 수 있죠. <안녕, 형아>도 전체 제작예산과 실제 비용이 100% 공개되죠. 영수증 하나까지 확인하고 정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니까 의외나 불투명성은 있을 수가 없죠.
관객4 | 매니지먼트사의 제작, 공동제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심재명 | 톰 크루즈, 니콜 키드먼도 제작을 해요. 영화를 완성하고 가능성 있는 존재가 제작자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배우 때문에 제작이 가능해진다면 공동제작을 해야죠. 하지만 어떤 배우가 캐스팅되면 무작정 공동제작의 크레딧이나 개런티 외에 비합리적인 지분을 요구하면 곤란하죠. 현재 시장상황에서 과도한 크레딧과 지분을 요구하는 건 용납하지 않겠다는 거죠. 프랑스에서는 최고의 배우도 예산이 작은 영화에서는 개런티의 5, 10분의 1을 받고 나중에 보전하는 방식으로 작업해요.
오기민 | 축구나 야구 같은 프로스포츠는 성적이 안 좋으면 연봉이 깎여요. 영화에서는 그 정도 시스템도 없는 상태죠. 무엇보다 합리적인 근거를 찾아야 할 것 같아요.
관객5 | 좋은 투자자본을 받는다면 해외시장을 공략할 계획은.
심재명 | 제작단계부터 해외와의 공동제작이나 합작은 고려하고 있어요. <아리랑> <노근리 다리> 같은 작품은 선판매, 사후판매가 아닌 제작단계에서 해외와의 공동제작을 진행할 생각이에요.
관객6 | 영화인을 꿈꾸는 대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심재명 | 해주고 싶은 말은 우리 조카도 고모가 제작자라고 감독을 꿈꾼다고 까불어요. 그럴 때마다 조카에게 그분들이 학교다닐 때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고, 인문학적 소양이 깊은 줄 아느냐고 면박을 줘요. 영화 일만큼 처절하게 개인의 역량에 따라 도태되거나 발전하는 직업이 없는 것 같아요. 영화계가 어떤 한국사회 집단보다 진보적이고 유연한 이유는 관객과 항상 소통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관객의 질타와 준엄한 시선이 영화계를 고인 물로 만들지 않는 거죠. 사회 다른 어떤 분야보다 학연, 혈연, 성차별이 없긴 해요. 무엇보다 뛰어들기 전에 자기의 능력이나 태도를 스스로 냉정하게 판단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