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살의 발랑 까진 영어선생 이유림은 만난 지 이틀밖에 안 된 여자에게 다짜고짜 같이 자자고 조른다. 27살 먹은 늦깎이 교생 최홍은 기습 뽀뽀를 감행한 남자의 뒷모습을 향해 알 듯 모를 듯 피식 웃음을 날리는 여유를 부린다. 강간에 다름없는 ‘사건’을 저지르고도 상대가 자기를 무시한다며 천연덕스럽게 삐치는 이 남자도 문제지만, 그런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나랑 자려면 50만원 내”라고 손을 내미는 이 여자도 만만찮다. 어두울 때는 잠을 못 이루고 사람 많은 곳에서는 제대로 먹질 못한다는 그녀와 주말에 찾아와서 집안일을 거드는 여자친구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게임에 열중하는 그. 두 사람 모두,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왠지 정이 간다. 6년을 사귀어 “부모 같고 자식 같은”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딴 여자에게 “다른 게 아니라, 연애만 하자”고 수작을 거는 그의 뻔뻔함이나, 3년을 사귄 번듯한 남자친구를 두고도 못 이기는 척 다른 남자의 요구를 들어주고야 마는 그녀의 능청스러움이, 예사롭지 않다. <연애의 목적>은 세상 모든 러브스토리를 한곳에 모으고 공통점을 뽑아서 만든 영화가 아니다. 유림과 홍의 대담무쌍한 관계를 세밀하고 생생하게, 그러나 불친절하게 기록한 결과다. 말과 행동이 다르고, 앞의 말과 뒤의 말이 일관되지 않는 등 실제 연인들의 속성까지 그대로 가져오다보니, 인물의 감정을 설명해줄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 대부분은 괄호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남는 것은 알다가도 모르겠는 유림과 홍의 표정과 대사, 행동뿐이다.
<살인의 추억> <인어공주> 등에서 비중은 작더라도 한없이 깊은 파장을 그려내는 인물을 소화했던 박해일과 <올드보이> <컷> 등 ‘센’ 영화 속 중요한 키워드로 야무지게 자신의 몫을 다했던 강혜정. 예사롭지 않은 필모그래피를 자랑하는 이들은, 평범해서 현실적이고 솔직해서 특별한 <연애의 목적>을 만만찮은 숙제였다고 말한다. 기자시사회에서 완성된 영화를 처음으로 함께 관람한 뒤 애써 설명하려 들지 않는 인물들을 전달하기 위해 씨름했던 두 사람이 솔직한 수다의 시간을 가졌다. 둘은 유림과 홍의 진심과 본심에 대해 미세한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결국은 영화 속 인물들을 이해하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 모습이, 까다로운 연애의 끝에서 몰라보게 성장한 세상의 모든 연인들을 연상시킨다.
박해일은 현재 <소년, 천국에 가다>를 촬영 중이며, 이후 <괴물>에 출연할 예정이다. 아사노 다다노부와 함께 펜엑 라타나루앙 감독의 <보이지 않는 물결>에 출연했던 강혜정은 또 다른 출연작 <웰컴 투 동막골>의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영화의 결말 이후 어떻게 변화할지 알 도리가 없는 영화 속 유림, 홍과 달리 새로운 영화를 향해 후회없이 빠져드는 이들 각자의 짜릿한 연애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