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파트라는 공간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가 많다. 아무도 없는 층에 엘리베이터가 서면 귀신의 장난이라고 믿어버리는 이 나약한 성격도 문제지만, 사실 아파트 단지에서 내 뒤를 따라오는 사람이나 엘리베이터를 같이 타는 사람의 정체를 전혀 모른다는 데서 근본적인 두려움은 발생한다. 아파트는 도시 문화가 낳은 익명의 공간이다. ‘미스터리 심리썰렁물’이라는 부제가 달린 강풀의 <아파트>는 모두가 소외된 아파트라는 공간이 주는 공포를 으스스하게 그려낸다.
<가위> <분신사바>를 만든 안병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는 <아파트>는 지난해 5월19일부터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연재되었다. 서울 변두리의 오래된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는 고혁이 주인공으로, 그는 어느 날 밤, 아파트 맞은편 동에서 특정 시각에 여러 집의 불이 동시에 꺼지는 것을 목격한다. 처음에는 우연이라고 생각해 넘겼지만, 며칠 뒤, 같은 시각에 또 여러 집의 불이 동시에 꺼지는 것이 아닌가. 한 가지 달라진 점은, 이번에는 불이 꺼지는 집 가구 수가 늘어났다는 것. 점점 불이 꺼지는 집이 늘어나자 고혁은 탐문에 나선다.
<아파트>는 사건에 얽힌 주요 등장인물들의 시점에서 각각 이야기를 진행해나간다. 각기 자신만의 관점이 있고, 그 관점에서 보면 다른 인물은 조연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야기의 규모는 점점 커져간다. 처음에는 그저 ‘신기한 일’이었던 밤 9시56분의 집단 소등은 고혁이 불이 꺼진 집 사람이 추락한 것을 보면서 다른 국면을 맞는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들은 아파트의 문을 사이에 두고 일어난다. 문 안의 사람은 문 밖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른다. 문 밖에 있는 사람은 문 안에 있는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없다. 고혁과 귀신, 그리고 귀신에 홀린 사람들이 있고, 연쇄살인을 수사하는 형사가 있고, 퇴마사가 있다. 주인공들이 어둠 속에서 번져나가는 죽음의 그림자를 과연 피해갈 수 있을지, 다른 사람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윈도를 스크롤하는 맛에 적합하게 그려진 작품이라 단행본으로 읽을 때는 그 맛이 덜하다는 것이다. 화면을 따라 스르르 올라오는 귀신의 모습을 보는 스릴은 줄어들었지만, <아파트>는 여전히 의식 저편에 꼭꼭 숨었던 두려움을 살살 흔들어 깨우는 요령을 알고 있다. 주의할 점, <아파트>를 읽으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아파트 맞은편 동의 집 불이 우연히(!) 동시에 꺼지거나, 모습이 안 보이는 이웃집의 굳게 닫힌 문을 보게 되면, 우리 집에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썰렁한 척하면서 진짜 사람 무섭게 만드는 것, 바로 <아파트>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