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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석의 씨네콜라주] 아카데미 타이틀매치

진행: 지금부터 카메라와 마이크를 로스앤젤레스 시라인 오디토리엄으로 옮겨, 제72회 아카데미 타이틀매치 실황을 독점 생중계해드리겠습니다. 말씀드리는 순간 노련한 사회자 빌리 크리스털이 링에 올라와 심사위원을 소개하고 있군요. 네 그런데, 웬 뜰채를 들고 나왔을까요?

해설: 네, 이탈리아에서 실어온 팔팔한 꼴뚜기 한마리 때문이죠. 지난해에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하며 난장판을 만들어놓은 로베르토 베니니가 올해에는 시상자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진행: 이제 막 주요 부문의 시상이 시작되고 있네요. 여우주연상 부문에서는 <소년은 울지 않는다>의 힐러리 스왱크군이, 아니 힐러리양이 수상했습니다. 남자로 출연해서 여우주연상을 타다니, 무척 의외지요.

해설: 93년에는 <크라잉 게임>의 여장남자 가수, 제이 데이비슨이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죠. 동성애에 적대적인 아카데미의 결정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강력한 상대인 아네트 베닝은 임신한 몸으로 나와 ‘여자면 애를 배야지’라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진행: 힐러리는 출연 소감을 말하는데 두루말이 화장지를 들고 왔네요. 네, 눈물을 닦으려는 걸까요?

해설: 아닙니다. 저예산 영화를 찍느라고 고생한 동료들의 명단입니다. 모두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군요.

진행: 아네트 베닝은 남편인 워런 비티가 우수한 제작자에게 주는 탈버그상을 수상한 것에 만족해야겠죠?

해설: 네, 그런데 완제품을 보지도 않고 상을 줄 수 있나요? 아네트는 아직 임신 8개월인데. 그렇다면 제작중 아닌가요?

진행: 이어서 남우주연상 부문의 격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허리케인 카터>의 덴젤 워싱턴이 우세하겠죠? 이 맹렬한 복서는 골든 글러브까지 끼고 나왔거든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아메리칸 뷰티>의 케빈 스페이시가 판정승을 거두었습니다.

해설: 뭐든지 판정으로 이루어지니까 절대 막판까지 결과를 알 수 없다, 이것이 아카데미의 묘미이지요. 연기가 어떻든, 관객의 반응이 어떻든, 모든 것은 아카데미 판정관들의 마지막 판단에 달려 있습니다.

진행: 그럼, 막간을 이용해서, 그 밖의 수상작들에 대해서 평을 해주실까요?

해설: 네, 가장 쓸데없는 트로피를 수상한 것은,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안젤리나 졸리인 것 같습니다. 그녀의 오빠인 존 보이트가 예전에 수상한 오스카 트로피는 할머니가 금붕어 어항으로 쓰고 있다죠. 그리고, 주제가상 후보에 오른 <사우스 파크>의 <캐나다 욕하기>가 욕설을 없애느니 어쩌니 소동을 벌였지만, 전통의 디즈니에게 손을 들고 말았죠.

진행: 지금 시상식장 뒤에서 소동이 벌어지고 있군요. <사우스 파크>의 꼬마들이 트로피를 들고 가는 <타잔>에게 시비를 걸었군요. 퍽퍽, 소리가 들리는데 때리는 소리일까요, 욕하는 소리일까요? 네, 다시 말씀드리는 순간, 오늘의 메인 이벤트인 작품상 부문의 대결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경기는 일대일이 아니라, 여러 선수가 동원되는 터라 가장 박진감이 넘치겠죠?

해설: 네, 가장 반칙이 많이 행해지는 경기이기도 하구요.

진행: 아, 이게 뭡니까? 붉은 장미가 흩날리더니, <아메리칸 뷰티>의 십대 소녀가 그 위에 드러눕는군요. 상대 선수들 모두 넋을 잃었습니다. 그순간, 총공세…. <아메리칸 뷰티>의 승리입니다. 네, 예상 외로 싱거운 결과군요. 끝으로 정리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이번 타이틀매치의 가장 큰 승리자는 누구일까요?

해설: 아무래도 실질적인 승자는 기술과 특수효과에 관련된 분야에서 완벽하게 <스타워즈 에피소드1>을 때려눕힌 <매트릭스>가 아닐까 싶네요. 광선검의 시대는 지났죠.

등장 인물

독설 사회: 빌리 크리스털

중년 가장: 케빈 스페이시

남장 여자: 힐라리 스왱크

흑인 복서: 덴젤 워싱턴

임신 내조: 아네트 베닝

욕설 동자: 사우스 파크 출연자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