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마그렙’(Maghreb)이라는 지명은 굉장히 낯설게 여겨진다. ‘마그렙’은 아랍어로 ‘해가 지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닌 단어로서, 통상 ‘마그렙 영화’라 하면 알제리, 튀니지, 그리고 모로코 등지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지칭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마그렙 영화들은 총 8편이 준비되어 있다. 낯선 지역의 문화를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을 넘어, 이 영화들은 우리에게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황홀한 이미지의 영토가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든다. 이슬람 문화권에 속한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영화들이면서도 지중해 북쪽, 특히 프랑스 영화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은 탓에 시네필적 감수성과 영화형식에 대한 사유를 기반으로 하는 작가영화들도 적지 않다.
이슬람의 대표적인 문화적 산물 가운데 하나로서 <천일야화>를 떠올리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데, 이것은 모로코 출신의 소설가 타하르 벤 젤룬이 적절히 표현했듯이 이슬람의 예술가들에겐 “거대한 집, 모든 것이 다 가능한 폐허가 된 성”(<실수의 밤>)과 같은 영감의 원천이 되어왔다. 영화감독들에게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표현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마그렙 지역의 영화들에서 <천일야화>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가장 좋은 사례 가운데 하나가 튀니지 감독 나세르 케미르의 <사막의 방랑자들>(1984)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사막의 한 신비로운 마을에 교사로 부임했다가 실종되고 만다. 우물 속에서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사내, 흡사 유령과도 같은 모습으로 사막을 떠도는 일군의 ‘방랑자들’, 사막 한가운데 나타난 커다란 배, 손거울을 든 신비한 소녀, 주인공을 미지의 세계로 안내하는 노파 등등 이 작품은 정말이지 불가해한 내러티브와 신비주의로 넘쳐난다(한편 여기서 주인공 역을 맡은 이는 케미르 감독 자신이며 그는 자신의 영화상영에 맞춰 전주를 방문할 예정이다). 가장 널리 알려진 마그렙 영화 가운데 하나이자 많은 이들에 의해 1980년대 튀니지영화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누리 부지드의 <재의 인간>(1986)이다. 스스로를 열렬한 시네필이자 “68년 5월 혁명의 아이”로 규정한 바 있는 부지드는 아랍사회의 민감한 구석을 건드리는 도전적인 영화들로 명성을 떨쳤다. 아랍사회에서의 아동 성추행과 동성애 등의 문제를 전면에 내세운 섬세한 청춘영화인 <재의 인간>은, 감독 자신에 따르면 “남성다움이라는 것은 사회의 게임에 불과하며 아랍 남성은 여성만큼이나 연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1990년대 이후의 튀니지영화 가운데는 <사막의 방랑자들>의 편집을 담당했던 무피다 틀라틀리가 연출한 <궁전의 침묵>(1994)이 명실공히 당대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모로코는 시네필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지역이다. 영화사 초기부터 식민지 열강들에 이국적인 풍광을 제공하는 촬영지로 명성 높았던 이곳은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의 연애담이 펼쳐지는 무대였으며, 오슨 웰스의 <오델로>와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의 <오이디푸스 왕>이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로코인들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재현이 가능하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상영작 가운데서는 화가 출신의 시네아스트 모하메드 아불루아카르가 연출한 <하다>(1984)가 우선 주목할 만하다. 빼어난 형식미와 시적인 대사가 돋보이는 이 작품은 단 한번의 감상으로는 거의 해독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징과 메타포들로 가득한데, 한편으로는 글라우버 로샤,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그리고 장 마리 스트라우브 등으로 대표되는 ‘대지의 시네아스트’들의 계보에서 논의될 수 있을 법한 작품이다. 비평적, 상업적 성공을 동시에 거둔 <러브스토리 인 카사블랑카>(1991) 이후 모로코영화 가운데 최근 국제적으로 가장 널리 주목받았던 작품은 2003년 칸영화제에 출품되었던 파우지 벤사이디의 <천월>(2003)이다. 약간은 에미르 쿠스투리차의 <아빠는 출장중>을 연상시키는 이 작품은 삶의 비극성과 유머, 축제적 흥겨움의 조화로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는데, 제목 ‘천월’(千月)은 “라마단 성야(聖夜)의 하룻밤은 일천 개월보다 가치있다”는 말에서 따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