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Culture > 초이스 > 도서
마지막 패에 천운을 건다, <마작의 제왕 테쯔야>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80일간의 세계일주> <조이 럭 클럽> <크라이 우먼>. 이들 서로 다른 나라, 다른 장르의 영화들이 지닌 공통점은 무엇일까? 모두 동양인 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들이 마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일본, 홍콩, 대만 등 동아시아인들에게 마작만큼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게임도 없을 것이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은 아예 마작판을 위한 행사로 보이고, 장국영처럼 자기 관에 마작 패를 넣어가는 애호가들도 적지 않다. 다만 한국에서는 해방 직후 부유층에 전파되다가 퇴폐 도박으로 낙인 찍혀 시들어버렸는데, 네명의 균형이 중요하고 판의 회전이 더딘 마작은 사실 도박성보다는 사교성이 뛰어난 게임이다.

일본에서는 야구 만화만큼은 아니지만 무시하지 못할 수의 마작 만화가 존재한다. <근대 마작>처럼 마작 만화만을 전문으로 연재하는 잡지도 존재하는데, <도박묵시록 카이지>를 그린 후쿠모토 노부유키도 바로 이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처럼 도박 만화의 핵으로 인정받고 있는 마작 만화 중에서도 가장 큰 인기를 모으고 있는 작품이 <마작의 제왕 테쯔야>다.

최근 41권으로 국내 완결된 이 작품은, 2차대전 직후 신주쿠를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는 직업 마작꾼 테쯔야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전문 소재를 다루는 작품인 만큼 마작의 세부적인 룰을 알아야만 그 재미를 한껏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한 다채로운 사건과 매번 스타일을 달리하는 새로운 적과의 대결 덕분에 문외한도 약간의 기초만 익히면 쉽게 만화 속으로 빨려들게 해준다.

신사숙녀의 사교 도구인 ‘깨끗한 마작’이 자리잡기 직전, 마작판은 사기술이 게임의 기초로 인정되는 이전투구의 도박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자신의 운과 실력을 시험하는 진정한 ‘꾼’들의 싸움이 벌어진다. 몽골의 초원에서 자라 녹색의 패만 달라붙는 남자, 완벽한 일란성 쌍둥이로 서로 자리를 바꿔 상대를 현혹하는 커플, 패의 곳곳에 화학약품을 묻혀 특수한 안경으로 투시해보는 사기꾼 등 다양하고 무궁한 적들과의 싸움은 시종 짜릿한 흥미를 이끌어낸다. 그러면서 미군의 횡포, 노조 파업, 대형 오락장의 개장 등 변화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자신의 길만을 걷는 테쯔야에게서 ‘고독한 늑대’의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