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통계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110년의 영화사를 수놓은 명작들을 골라 그것들에 대한 소개, 해설, 비평 등을 담은 글들을 모아놓은 유의 책이 국내외를 통틀어 출간되는 영화 관련서 가운데 굉장히 넓은 영역을 차지할 거라고 짐작하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통상적으로 인정받는 ‘정전’들이라서, 우리의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는 추억의 영화들이라서, 아니면 영화 내러티브의 발전 경로를 보여주는 실례와도 같은 영화들이라서, <국가의 탄생>에서부터 <토이 스토리>까지의 영화들을 소개하는 책들을 우리는 참으로 많이 보아왔던 것이다.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는 기본적인 체제 자체는 그 많은 책들과 동일한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그러면서도 이 책은 한편의 영화 전체에 대한 두루뭉술하고 간략한 설명보다는 영화에서 두드러진 장면들에 대한 분석을 제시하려 하기에 나름대로의 미묘한 차별화를 이뤄낸다. 여기에서는 <전함 포템킨> <싸이코> <나쁜 피> 같은 영화들이 아니라 오뎃사 계단장면, 샤워실 살인장면, 안나의 질주하는 장면처럼 그 영화들 내부에 있으면서도 그것에서 튀어나와 스스로의 특권적 위치를 주장할 만한 유명한 시퀀스들이 다뤄진다. 책 속의 한 구절을 빌리면, 그 시퀀스들 대부분은 “어떤 설명이나 대사 없이도 영상을 통해 스토리를 전달하는 영화의 순수한 형식을 보여주는 좋은 예”(<지상에서 영원으로>의 연병장 장면)들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대상들을 가지고서 이 책은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했는가, 그래서 영화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해주려고 한다.
예상가능한 대로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은 무엇보다도 분석적인 영화 읽기로 초대하는 책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읽기들의 누적이 영화사의 흐름에 대한 전반적인 파악으로 인도하는 책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이것은 영화에 이제 막 입문하려는 초심자들에게 꽤 유용한 책이라 하겠다. 그런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쉬움을 주는 측면들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어떤 경우에는 시퀀스에 대한 해설과 분석이 아니라 그저 묘사만을 제공하고 그친다는 점, 그리고 가끔 도식적인 해석을 내놓는다는 점(예컨대 <정사>의 마지막 시퀀스를 다루며 “벽은 산드로와 염세주의를 대변하고 산은 클라우디아와 낙관주의를 나타낸다”는 식의)은 읽는 이의 불만을 살 수 있다. 아울러 로베르 브레송, 알랭 레네, 오즈 야스지로, 미조구치 겐지 같은 거장들의 영화가 빠져 있어 전체적인 구성상 ‘빈틈’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도 아무리 저자의 선별 기준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