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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서의 순정>의 배우 문근영

“연기, 공부, 배낭여행,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문근영의 얼굴이 달라졌다. 보는 사람을 무장해제시키는 웃음, 호기심으로 빛나는 눈망울 등 특유의 매력은 여전하다. 그러나 <댄서의 순정>의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는 더이상 “나는 사랑을 아직 몰라~”라며 막춤을 선보이던 여고생 보은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전직 최고의 스포츠 댄서와 호흡을 맞추기 위해 위장결혼으로 밀입국을 감행한 당찬 조선족, 갖은 노력 끝에 댄스 실력도 인정받고 사랑도 이뤄내는 스무살의 장채린이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배역을 맡아 작품마다 조금씩 성장해왔던 그가, 드디어 성인의 문턱에 다다른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배우 문근영 역시 달라졌다.

<댄서의 순정> 기술시사를 앞둔 그는, 시사회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이젠 두렵다고 말한다. 첫 영화 <연애소설>에선 자신이 나오는 장면만 나오면 안절부절못했고, <장화, 홍련>에선 영화가 무섭지 않으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영화 전체를 책임졌던 <어린 신부> 때는 비로소 자신의 연기를 근심하며 영화를 보게 됐다고. 그것이 얼마나 큰 부담인지 알기 때문에, 유난히 새로운 시도가 많았던 이 영화의 결과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더욱 두렵다는 것. 일년 전에 비해 키는 고작 1cm밖에 자라지 않았다지만, 그가 고민하는 인생과 영화, 연기는 일년 전과 비할 수 없이 훌쩍 깊어져 있었다. 왜 아니겠는가.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는 것도 많은 열아홉. 가능성만으로도 가슴 벅찬 시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일 년을 꿋꿋이 달려온 문근영이다. 배움과 도전을 즐기고, 고민을 미루지 않으며, 받은 사랑을 더 큰 사랑으로 보답해왔던 꼬마는 이제, 자신의 몫을 야무지게 책임지는 어른이 될 길목에 섰다. 그가 준비한 단단한 변신은 그래서 기대를 모은다.

-스포츠 댄스 배우랴, 옌볜어 익히랴, 극중에서 중국어 노래까지 부르랴, 섣불리 출연을 결정하기 힘든 영화였을 것 같다.

=근데 그런 생각을 처음엔 전혀 안 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다. (웃음) 영화를 찍으면서 힘들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보통은 소속사에서 먼저 시나리오를 검토한 뒤, 최종결정은 할머니와 엄마, 나, 이렇게 세명이서 한다. 근데 할머니께서 “이 영화하면 다이어트도 되고, 건강해지겠다”면서 권하셨다. 조선족들이 우리나라에서 희망을 찾게 되는 이야기라는 점도 마음에 드셨다고 한다.

-할머니나 엄마와 본인의 생각이 다를 때도 있었나.

=드라마 <명성황후>에서 명성황후의 아역으로 출연할 때와 <어린 신부>는 사실 별로 하고 싶지 않았었다. <명성황후>는 사극이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근데 할머니가 명성황후는 여배우라면 꼭 한번 해봐야 되는 거라셨다. 나중에 어른이 되면 성인 명성황후도 해봐야 할 텐데. (웃음) 그리고 <어린 신부>는 <장화, 홍련> 다음 작품으로 선택하기엔 너무 밝은 영화 같았다. 전작이 워낙 어두운 영화여서 그랬는지, 잔상이 많이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근데 <어린 신부>는 정말 밝고 따뜻한 영화로, <장화, 홍련>과는 극과 극 아닌가. 막상 그런 시나리오를 받아드니까, 어색하고 이질적이었다. ‘이걸 어떡해 할까, 난 이걸 못할 것 같다’는 식의 생각만 들고.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못할 것 같았는데, 찍고나서 생각하니 주변 사람들 말을 듣길 잘한 것 같다. 사실 난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이었는데, 다시 한번 밝은 편이 낫다는 걸 깨닫게 됐고. 게다가 그 작품으로 김호준 감독님 만나서 연기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떤 고민이었는지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나.

=김호준 감독님이 나를 많이 풀어주셨다는 얘기다. 사실 그전에 만난 감독님들도 자유롭게 여지를 많이 주신 건 사실이지만, 아무래도 작품의 특성상 한계가 있었다. <장화, 홍련> 같은 경우, 영화 자체의 분위기가 강하니까 그로 인해 벌써 일정한 울타리가 생긴다. 근데 <어린 신부>는 그렇지 않았다. 그냥 밝음이라는 것 외에는. 감독님께서 내가 스스로 어떤 울타리를 만들도록 해주셨다. 처음엔 촬영 때마다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싶었는데, 촬영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이유를 알게 됐다.

-<어린 신부>로 많은 사랑을 한몸에 받았고, 연기에 대해 고민도 시작했다면, <댄서의 순정>을 선택하기 전까지 고민이 많았겠다.

=아무래도 그뒤로는 시나리오가 <어린 신부>와 비슷한 영화들만 들어왔다. 그런데 <댄서의 순정> 속 장채린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다른 캐릭터였다. 그리고 춤이나 옌볜어 등 새로운 것을 많이 시도해볼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뭔가 배운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이번 영화에서 새로 시도했던 것 중에 제일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나.

=(고민없이) 어른스러운 사랑의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 영세가 채린이를 생각해서 매몰차게 채린이를 보내는 장면 같은 경우 이틀 동안 찍었는데 많이 힘들었다. 잘 안 돼서 울기도 했고. 그 장면뿐 아니라 사랑 이야기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가는 장면에선 고민도 많았고 걱정도 많았다. 사랑도 안 해봤으면서 사랑연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싶었고. 하지만 배우가 연기를 하기 위해 모든 것을 직접경험을 해야 하는 건 아니잖나. 감독님과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시나리오상에는 영세와 채린이 자신들의 집을 감시하는 출입국 감시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베드신을 연출하는 장면도 있던데.

=물론 걱정이 많았다. 시나리오로 봤을 때는 <어린 신부>의 상상장면보다 수위가 더 높았으니까. 근데 찍고 나서 영화로 봤을 때나 찍을 때의 느낌은 오히려 <어린 신부>가 더 심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어린 신부>는 영화 전체 분위기가 그렇지 않은데 그 장면만 들어가니까 좀더 세게 다가왔던 것 같기도 하고.

-앞으로는 그런 연기를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올 것 같다.

=(조심스럽게) 아예 못하겠다는 건 아니니까 고민을 해봐야 할 거다.

-멀지 않은 고민이지 않을까.

=멀 수도 있지 않을까. (웃음) 그래도 그런 고민은 최대한 늦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몸이 제일 힘든 건 스포츠 댄스를 배우는 일이었을 것 같다.

=4개월 정도 연습했고, 집중적으로 하루 10시간씩 연습한 건 두달 정도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굉장히 재미있었다. 처음 한달은 스트레칭과 기본동작 연습만 했는데, 그러다보니까 어느 순간 춤이 몸에 익숙해지더라.

-춤과 관련해서 제일 어려웠던 순간은 언제였나.

=음. 분명히 춤이 익숙해지긴 했는데, 그 이상 나아지지 않을 때. 그전에는 힘들어도 힘든지 몰랐는데, 그때는 앞으로 또 얼마나 힘들까 두렵기도 하고, 더이상 발전하지 못한다는 게 무섭기도 하고. 삼바를 연습하다가 딱 한번 울었는데, 선생님이 굉장히 당황해하셨다. 솔직히 기본도 없이 어려운 기술을 익히려고 했으니 무리이긴 했을 거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원리를 알지만. 기본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 순간이었다. 촬영 때는 감독님이나 관계자 분들이 바라는 그림이 분명히 있는데 우리의 능력이 거기에 못 미쳐서 아쉬워하고 포기한다는 걸 느낄 때가 힘들었다. 우리가 열심히 한 걸 아니까 그분들도 직접 말하지도 않고 그냥 지켜봐주시지만 속상한 일이다.

-삼바, 룸바, 파소도블레 등 다양한 춤을 배웠다고 들었다. 어떤 춤이 제일 좋았나.

=솔직히 다 좋았다. 그중에서 꼽으라면 룸바. 어렵긴 제일 어려웠는데, 그래서 더 재밌었나보다. 룸바가 원래 접촉도 많고 끈적끈적한 춤이라서 걱정이 많았다. 저걸 어떻게 하나. 게다가 난 느끼한 것도 싫어하는데. 근데 직접 해보니까 의외로 안 그렇더라. 연습실에도 할머니가 계속 같이 계셨는데 보시고 예쁘다고 해주셨다.

-‘그랑 알레그로’라는 어려운 기술을 선보이는 장면을 촬영하다가 사고가 있었다던데.

=별거 아니었다. 그냥 내가 작은 크레인 위에서 연기를 하는 거였는데, 갑자기 어딘가의 나사가 풀렸던 모양이다. 별로 높지 않은 곳에서 슬쩍 떨어져서 다치지도 않았다. 스탭들은 많이 놀라신 것 같지만 솔직히 난 창피하기만 했다. (웃음)

-그래도 감독님은, “성깔있는 배우라면 촬영 못한다고 난리였을 텐데, 너무 고마웠다”던데.

=진짜 성깔있는 사람은 그러지 않는다. 그냥 참아야지. (웃음) 난 화가 나면 그냥 말이 없어진다.

-국가대표 선발전을 위한 대회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3일 만에 찍느라 어려움이 많았다더라.

=처음으로 많은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기 때문인지 무대 공포가 생기더라. 다른 분들은 다 전문 댄서들이라서 위축되고 자신감도 없어지고. 근데 어느 순간부터 관중이 많다는 걸 즐길 수 있게 됐다. 그런 단계가 좀더 일찍 찾아왔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다. 광주에서 친구들이 올라와서 촬영장을 구경했던 땐데, 워낙 정신이 없어서 친구들 앞에서 연기하는 게 어색하다는 생각도 못했다. 그래도 나중에 친구들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고 말해주고, 내가 이렇게 힘들게 영화를 찍는지 예전엔 몰랐다는 말을 해주니까 기분이 좋았다.

-옌볜어를 익히는 건 어렵지 않았나.

=처음엔 되게 걱정이 많았다. 연출부 오빠들이 옌볜분들에게 대사를 읽어달라고 한 뒤 그걸 녹음해서 갖다주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연기를 전문으로 하는 분들이 아니어서 어색했다. 마침 촬영 전 옌볜에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만난 언니가 많은 도움이 됐다. 연기 경험도 있었고, 서울말도 약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하루 만에 집중적으로 교습을 받았다. 마지막 고민은 진짜 옌볜말은 우리말과 너무 달라서 관객이 못 알아들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근데 영화에 같이 출연한 김지영 언니가 마침 중국 합작드라마를 하면서 1년 정도 조선족과 지낸 적이 있어서 수위조절을 했다. 나중엔 평상시에도 옌볜말이 나올 정도였다. 옌볜어 발음이 원래 시옷이나 지읒이 많이 세는데, 내 발음이 그렇게 된 거다. 억양도 계속 남아 있고, ‘습니다’를 ‘슴다’로 줄여서 말하는 게 입에 붙어서 영화 촬영하다가 인터뷰를 하면 자꾸 그렇게 되더라. CF 찍을 때도 코디 언니들이 앞에서 “근영아, 말 조심해” 이럴 정도였다. 예전엔 말이 빠르고 촉새 같았는데 말도 많이 느려졌다.

-시나리오상에는 혀를 쏙 내민다든가 하는 식의, <어린 신부>의 귀여운 모습을 연상시키는 제스처들이 종종 등장하더라. 감독님은 최종 편집본에선 그 부분들이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한번 했던 걸 다시 하는 게 신경쓰이진 않았나.

=별로 그런 건 없었다. 오히려 좋았던 게, 한번 했던 것들을 좀 다르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의지가 생겼다. 물론 정말 다른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겠지만.

-그 밖에도 <어린 신부>와 달리, <댄서의 순정>을 하면서 연기를 차별화하기 위해 시도한 것이 있었나.

=음. 아마 별로 티는 안 날 것 같은데… 오버하지 않고 담담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했다.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이어서 너무 울어서 NG가 난 적도 있었다. 맨 마지막에 영세와 채린이 재회할 땐 감정이 복받쳐서 계속 울게 됐다. 그래도 감독님이 워낙 못 울게 하셔서….

-촬영장에서 일일스탭을 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일 안 하면 스탭복을 안 준다기에…. (웃음) 연출부, 조명부, 제작부 일을 했는데, 조명부에서는 날 진짜 막내 스탭으로 인정해주셨다.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의상부, 연출부 등을 해보곤 했는데 그런 기회를 통해 스탭들과 함께 호흡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재밌다. 스탭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도 알게 되고.

-<댄서의 순정> 개봉 뒤엔, 대학 입시까지 활동을 쉬게 되는 건가.

=아무래도 좀 쉴 것 같긴 한데 꼭 대학 때문은 아니다. 항상 이맘때쯤 영화를 개봉하고 그뒤에 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겨울에 촬영에 들어가고 이런 식이었다. 좀 긴 휴식을 가지고 싶기도 하지만.

-대학에선 뭘 공부할지 생각해봤나.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잘 모르겠다. 사실 전공보다도 1, 2학년 때 듣게 될 교양수업이 너무 기대된다. 전공은… 연극영화과, 국문과, 사학과 정도가 관심이 간다. 그전에는 광고 일이 하고 싶어서 광고홍보학과에 가고 싶었고, 그러다보니 산업디자인도 재밌을 것 같았는데 그건 실기가 있다고 해서 포기하고. (웃음)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진짜.

-배우가 평생직업이 아니라는 얘긴가.

=그럴지도. 하지만 연기가 재미가 없거나, 딴 게 더 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나한테 정말 배우로서의 소질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거나 연기가 어려울 때처럼 능력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 때문에 도망가고 싶은 거다. 워낙 불안정한 직업이니까 안정감을 찾고 싶다는 마음도 들고. 하지만 다 못난 생각이다. 도망가고 싶고, 어려운 건 피하고 싶다는 거니까. 지금은 제일 하고 싶은 게 연기다. 아, 여행도 너무 가고 싶다. 대학에 들어가면 유럽에 배낭여행을 가도 된다는 허락도 받았다. 그래서 지금 돈도 모으고 있다.

-스무살이 되고, 대학에 진학하면 인생이 달라질 텐데, 생각해본 적 있나.

=아무래도 여유가 많이 생길 것 같다. 내가 공부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어떤 사람들은 비웃기도 하는데, 공부를 많이 안 해서 그런지 난 공부가 너무 재밌다. 근데 고등학교 때는 입시 때문에 재밌는 걸 지겹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대학에 가면 그런 부담이 없으니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깊이있게 할 수도 있을 거고. 즐기면서 하게 되면 여유도 생길 것 같고. 특별히 걱정을 해본 적은 없다. 가족이나 주변분들이 그렇기 때문이겠지만, 워낙 내가 낙천적인 편이라서.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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