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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칼럼] <떨리는 가슴>, 간만에 가슴 떨리게 하네

배두나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호기심 많은 스무 살 캐릭터를 연기한 <고양이를 부탁해> 이후로 그녀의 영화와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챙겨 보고 있다. 한 남자 선배는 그런 날 보고 ‘그럴 줄 알았어’라는 뜻 모를 말을 건네기도 했다. 삐딱한 이미지가 내 취향일 것 같다나. 그래, 선배는 누굴 좋아하냐고 물으니 ‘김태희’라는 답이 돌아왔다. 나 역시 '그럴 줄 알았어’ 했다. 배두나의 유쾌한 웃음소리에 혀를 끌끌 차는 사람이 있으면, 김태희의 단정하고 고운 미소를 답답해하는 나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배두나에게 삐딱한 이미지가 없지는 않다. 바로 그 점을 좋아하는 것이기도 한데, 드라마 <떨리는 가슴>에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솔직히 ‘배두나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하기는 했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애정, 달리 말하자면 선입견이 작용한 탓이다. 톡톡 튀고 발랄한 드라마겠구나, 특이한 스토리겠구나, 조금 삐딱한 주제일 수도 있겠구나. 물론 내 예상(이랄 것도 없지만)이 들어맞은 구석도 있긴 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 의외로 건전했다.

불건전한 듯 건전한

스스로 편견에 갇히는 젊은 이혼녀

옴니버스 형식인 이 드라마는 현재까지 총 2개의 에피소드를 방영했는데, 그 둘은 전혀 다르면서도 서로 통하는 데가 있었다. 그것은 불건전한 듯 보이지만 실은 매우 건전한 시각이었다. 되바라진 듯 반듯한, 불건전한 듯 건전한. 그것이 이 드라마의 특징이자 장점이라 하겠다.

첫 번째 에피소드 ‘사랑’에는 젊은 이혼녀 배두나가 등장한다. 어학연수 하러 간 곳에서 공부는 안하고 연애질하다 스물 한 살 어린 나이에 전격 결혼, 그리고 3개월 만에 이혼까지. 소위 ‘되바라짐’으로 표현될 만한 이 경험은, ‘결혼 적령기’에 이른 그녀에게 풀기 힘든 숙제로 남는다. 어렵사리 새로운 사랑을 만나 희망에 부풀지만 시아버지 되실 분이 자신의 결혼식 주례 선생님이었음을 알고는 다시 한 번 주춤하는 그녀. 시아버지로 만난 주례 선생님은 ‘이혼녀’의 앞날에 놓인 가시밭길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이혼녀’에 대한 세상의 편견을 묘사하기 보다는 지레 겁먹고 포기하는 당사자들을 묘사함으로써, ‘세상의 편견’을 만들어가는 사람은 타인이 아닌 바로 자기 자신임을 말하고 있다. 어떠한 시도도 해보지 않고 미리 포기해버린 아들에게 도리어 그의 아버지가 이런 말을 한다. “아버지, 나 이 여자 아니면 안되겠습니다, 할 배짱도 없니? 너는 사내자식이 그만한 배짱도 없어?”

두 번째 에피소드 역시 마찬가지. 집 나간 남동생, 트랜스젠더가 되어 돌아왔다는 내용인데, 동생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유일한 가족은 바로 그의 형이었다. 아내는 도련님이던 그를 아가씨로 대하고, 딸은 고모로 대하며, 처제는 그와 동거까지 하는데 가장 가까운 가족인 친형만 그를 부인한다. 그는 ‘어머니가 보시면 쓰러지신다’는 핑계로 동생을 내몰지만, 그 어머니 역시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딸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품에 안으며 ‘얼마나 아팠니’ 한다. 젊은 형도 이해하지 못한 일을, 늙은 어머니는 이해한 것이다.

이 얼마나 반가운 꾸짖음인가?

‘건전함’ 이라 하면 우리는 흔히 바른생활 사나이, 혹은 양가집 규수를 떠올리곤 한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성장해 모난 구석 없이 반듯한 젊은이. 예를 들자면 ‘김태희’처럼 참한 이미지. 그렇다면 이혼 경력 있는 여자와 여자가 된 남자의 인생은 불건전한 인생인가. 그들의 생활은 ‘바르지 못한 생활’인가. 아니다. 네모뿐만 아니라 세모, 동그라미, 사다리꼴에도 ‘건전함’은 있다. 우리에게 ‘건전함’이라는 미덕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모양’이 아닌, 그 ‘모양’을 보는 시각에 있을 것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장, 좋은 사람 만나 결혼, 아이 낳고 행복하게.’ 이러한 삶의 모토만이 건전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세상이라면, 전혀 다른 모토를 가진 사람들의 인생은 본의 아니게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건전함’이란, 바로 그 다양성에 있지 않을까.

풀기에 따라서는 그저 자극적인 내용으로 끝날 수도 있는 소재였으나, 열린 시각으로 건강한 드라마를 만들어낸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특히 세상의 편견 앞에서 미리 겁 먹고 좌절하는 젊은 세대를 꾸짖는 기성 세대의 모습은 요즘 드라마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기도 했다. ‘이혼녀는 절대 안 된다!’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여자 아니면 안되겠다는 배짱도 없니’는 얼마나 반가운 꾸짖음인가. 세상의 편견을 욕하는 나지만, 나 자신이 바로 그 편견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깨닫게 하는, 간만에 ‘가슴 떨리게 하는’ 반가운 꾸짖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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