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쳐야 살고, 공동제작 해야 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매니지먼트 업체들 또한 다양한 결합을 꾀하고 있지만 맥락은 조금 다르다. 매니지먼트사 K업체의 대표는 “요즘 분위기는 한마디로 ‘뭉쳐야 산다’다. 뒤집어 말하면 ‘안 뭉치면 죽는다’다”라고 말한다. 한국 매니지먼트 사업의 구조는 지출이 많은 데 비해 수입이 적은 탓에 웬만한 규모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중견 매니지먼트 업체 T사의 대표는 “일류 배우의 경우 수입의 8은 연기자에게, 2는 회사로 돌아간다. 중급 연기자의 경우에도 회사의 몫은 3할 정도다. 초특급 배우의 경우 1 대 9 배분도 있다고 들었다. 게다가 자동차를 대주고 각종 경비까지 회사에서 대니 남는 게 거의 없는 장사”라고 말한다.
물론, 업체끼리 뭉친다고 해서 갑자기 수익구조가 좋아지고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이 생길 리는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 매니지먼트 업계의 또 하나의 화두가 등장한다. 영화와 드라마의 제작 참여가 그것. 이 분야 또한 원조는 싸이더스HQ다. 싸이더스HQ는 2002년 싸이더스로부터 분리된 이후 꾸준히 제작쪽으로 진입해왔다. 싸이더스HQ는 2002년 <몽정기>를 시작으로 여러 영화에 공동제작으로 참여했고, 2003년에는 자회사인 제작사 아이필름을 설립해 직접 영화를 제작해왔다. 또 2004년에는 배급사인 아이러브시네마를 설립했고, 일부 작품에 투자까지 하고 있으며 드라마 외주제작사 캐슬 인 더 스카이 또한 인수했다. 결국 싸이더스HQ가 투자에서 제작과 배급까지 수직적 완결 구조를 갖추는 데 있어 출발점은 공동제작이었던 셈이다.
“기획부터 시나리오, 콘티작업까지 모두 끝난 상태에서 배우만 데리고 들어와 제작사의 지분을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것은 공동제작이 아니라 캐스팅난을 빌미삼은 힘 밀어붙이기일 뿐이다”라고 비난하는 제작자들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공동제작은 충무로에서 갈수록 뿌리를 내리고 있다.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 웰메이드엔터테인먼트, 먼데이엔터테인먼트 등이 속속 공동제작의 대열로 들어왔고, 많은 수의 매니지먼트사들이 영화에 배우를 제공하는 대신 ‘공동제작’이라는 크레딧을 화면에 새기고 있다. 이들은 공동제작 과정을 통해 제작 노하우를 배우고, 인력을 만들어내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매니지먼트들이 공동제작을 원하는 건 우선 수익 때문이다. 공동제작사로 참여하게 되면,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 손익분기점을 넘길 경우) 매니지먼트사는 제작사가 가져갈 수익의 일부를 받을 수 있다. 지분율은 적게는 15%지만 많을 때는 50%에 이르며 상당수가 30%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흥행만 잘된다면 매니지먼트사로사는 큰 금액을 손에 넣을 기회가 되는 것이다. 제작사에겐 무조건 손해로 보이는 공동제작이 실제로 성사되는 배경에는 캐스팅난과 투자라는 문제가 자리한다. 한해에 제작되는 영화 편수에 비해 주연급 배우의 수가 적은데다가 대부분의 투자사들이 흥행의 안전판이라 할 수 있는 ‘A급’ 이상의 배우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만약 감독이 스타급이라거나 제작사가 탄탄한 경력과 능력을 갖고 있다면 몰라도 신생 제작사라면 스타 캐스팅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진다. 쇼이스트의 김장욱 이사는 “검증되지 않은 감독과 제작사일 경우 투자자들의 이익을 생각하는 투자자 입장에서는 스타의 존재를 아무래도 신경쓰게 된다”고 말한다. 투자를 받지 못하고 떠돌다간 프로젝트가 아예 무산될 수 있다고 판단하는 신생 제작사들은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공동제작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최근 들어서는 제작사가 매니지먼트를 찾아 공동제작을 먼저 제의하는 경우도 잦다. <B형 남자친구>를 제작한 김두찬 시네마제니스 대표는 “한 제작자가 이동건의 소속사로 찾아와 ‘지분 50%를 줄 테니 자신의 영화에 출연해달라’고 제의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매니지먼트사의 최종목표는 직접 제작
매니지먼트사들이 공동제작을 요구하는 또 다른 목적이자 궁극의 목표는 직접적인 제작이다. 공동제작은 직접 제작을 위한 준비이자 발판이 된다. 직접 제작을 하게 되면 공동제작 때보다 수익성이 더 좋을 수 있는데다 잘하면 ‘대박’까지도 맛볼 수 있다. 또 확보하고 있는 각각의 배우들에 맞는 기획도 만들어낼 수 있다. 싸이더스HQ 박성혜 매니지먼트 본부장은 “요즘 30대 여배들의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 찾기가 너무 힘들다. 우리 배우의 성향과 장점을 살릴 수 있는 작품은 내부에서 만들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설명한다. 2004년 들어 싸이더스HQ는 자회사 아이필름을 통해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와 <얼굴없는 미녀> <S다이어리>를 만들었고, 포이보스는 <내사랑 싸가지>를, 박중훈의 매니지먼트사인 보람엔터테인먼트의 계열 보람영화사는 <투가이즈>를 제작했다. 특수한 케이스인 <투가이즈>를 차치하더라도 이같은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플레이어와 먼데이, 웰메이드, 예당 등이 직접 제작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 드라마의 경우 매니지먼트사들의 직접 제작은 두드러진다. GM기획이 <명성황후>를 제작하는 등 매니지먼트 업체가 방송 드라마 제작에 뛰어든 것은 꽤 오랜 일이지만, 최근의 경향은 그때와 조금 다르다. 두 시기의 간극에는 ‘욘사마 신드롬’과 함께 시작된 한류 열풍이 있다. 한 배우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극적인 과정을 지켜본 매니지먼트 업계는 발빠르게 방송쪽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아시아 전역에 걸쳐 한국 드라마에 대한 열기가 아직까지도 존재하는 탓에 드라마는 배우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회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수익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로 그동안 외주제작 드라마는 방송사의 낮은 대우 때문에 시청률이 높아도 실익은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김희선, 권상우(그리고 애초의 송승헌) 등을 기용한 <슬픈 연가>는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표적인 경우다. 김종학 프로덕션, 포이보스, 두손엔터테인먼트가 함께 제작한 이 드라마는 수출을 전제로 기획된 탓에 수출액 중 70%를 외주쪽이 갖도록 계약을 맺었다. 일본과 동남아 지역 판매액만 50억원이니 일단 이 전략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를 중심 무대로 삼던 배우들이 드라마쪽으로 유턴하려는 분위기도 이런 사정과 관련있어 보인다”고 심재명 MK픽쳐스 대표는 말한다.
한류를 중심에 놓지 않더라도 드라마는 배우의 연기욕과 가치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인데다 해외판매, PPL 등의 부가수익을 통해 수익성을 올릴 수 있는 탓에 여러 매니지먼트들이 의욕적으로 달려들고 있다. 특히 방송사들은 최근까지 스타급 배우만 확보되면 앞뒤 가리지 않고 편성을 잡아줘왔다. 스타는 편성이라는 외주제작의 가장 커다란 장벽을 뛰어넘을 수 있는 단단한 장대가 되는 것이다. <봄날>로 성공을 거둔 싸이더스HQ는 자회사인 캐슬 인 더 스카이(<홍콩 익스프레스>)와 함께 1년에 각각 2편 정도의 드라마를 만들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예당엔터테인먼트도 <신입사원>에 공동제작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김정은의 소속사 파크엔터테인먼트와 포이보스는 김종학 프로덕션과 함께 표민수 PD의 <두루공주>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배우 확보가 편성의 관건이 되는 상황에 대한 방송사의 자성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기존 외주제작사들도 매니지먼트 사업에 참여할 채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흐름은 <못된 사랑>의 캐스팅 파문, <다섯손가락> 대본의 표절 의혹, 일부 드라마의 졸속 제작에 대한 비판 등을 낳고 있기도 하다.
“탄력적 운용, 역지사지가 해답이다”
김정수 플레이어엔터테인먼트·굿플레이어 대표 인터뷰
-공동제작과 직접 제작, 또는 투자한 영화는.
=<조폭마누라2>에 투자했고,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제공했다. 제작사 굿플레이어는 <파송송 계란탁>을 제작했다. 앞으로 매니지먼트와 영화제작은 엄격히 분리해 사업할 생각이다. 현재 안진우 감독의 <요원의 수기>라는 작품을 준비 중인데, 우리 소속 연기자가 아닌 김정은과 이범수가 출연한다. 굿플레이어라는 제작사의 역량을 평가받을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급선무다.
-사업다각화를 고민하고 있나.
=매니지먼트와 영화제작에만 집중할 거다. 다만 아시아 시장 진출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모색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다. 이를테면 <오션스 일레븐>처럼 배용준, 이병헌, 장동건이 모두 나오는 영화는 어떨까. 드라마 제작은 관여하지 않을 생각이다. 제대로 알지 못하는 분야에 뛰어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매니지먼트 업체가 배우 파워에 근거해 과도한 횡포를 부린다는 불만이 많다.
=커진 배우의 힘이 매니지먼트의 힘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작품이라면 얼마든지 우리 소속 배우들에게 권하겠지만, 말도 안 되는 작품이나 시나리오를 오래 같이 일했다는 이유로 이병헌이나 이정재에게 권하지 않겠다. 내가 배우라면 그런 것을 요구하는 매니저와 일하지 않는다. 결국 매니지먼트사의 본령은 좋은 배우들을 안정적으로 영화산업에 공급하고 두터운 층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것에 달려 있다. 역할이나 성격에 맞게 탄력적인 개런티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드라마 외주제작사와 매니지먼트사의 합종연횡이 활발하다.
=그런 방식은 실질적인 시너지를 내기 어렵다. 어떤 배우가 전속이라고 프로젝트 성격이나 방향도 보지 않고 외주제작사의 스케줄에 맞춰 무조건 출연하겠나. 선택은 배우가 하는 거다. 관건은 좋은 작품을 배우들에게 공급하는 것이지 배우들을 끌어모으는 게 아니다. 매니지먼트가 등산가를 인도하는 셀퍼라면 배우는 자유계약선수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배우 개런티 상승에 대해 제작자의 불만이 많다.
=지난해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 낮에는 아내인 신은경의 출연계약을 위해 모 영화사를 찾았고, 저녁에는 임창정이 <파송송 계란탁>의 개런티 계약을 위해 우리 사무실을 찾았다. 그렇게 역지사지해보면 해답은 명확해진다. 문제의 핵심은 개런티 상승이 아니라 탄력적 운용에 대한 인식이 양쪽 모두에게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번 2억원을 받는다고 다음해에는 무조건 2억5천만원, 이런 방식은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