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백화점에서 태어나고 백화점에서 낙원을 꿈꾸는 한 남자가 있다. 번쩍번쩍 빛나는 의상과 아름다운 여인들이 가득한 이 쾌락의 왕국. 화려한 꽃들 대신 색색의 옷과 보석들이, 아담과 이브의 거친 본능 대신 세련된 성욕이 들어선 이 시대의 유토피아. 그곳에서 아름다움은 끊임없이 구매되고 판매된다. 남자의 야망은 성과 돈이 흐르는 이 낙원의 교주가 되어 죽음 또한 이곳에서 맞는 것이다.
숙녀복 섹션을 담당하는 라파엘(길레르모 톨레토)의 목표는 백화점의 새 지배인이 되는 것이다. 그의 경쟁자는 맞은편 남성 잡화의 담당자인 안토니오(루이스 바렐라)이다. 점잖음으로 무장된 남성 잡화 섹션과 달리 라파엘의 숙녀복 섹션은 감언이설의 천국이다. 자신의 영토에 대한 끈적거리는 애정에도 불구하고 라파엘은 안토니오에게 지배인 자리를 내주게 된다. 하루아침에 해고의 위기에 처한 라파엘은 실수로 안토니오를 죽이고 우연히 이를 목격한 여인이 있었으니, 숙녀복 섹션의 대표적인 ‘추녀’, 루르데스(모니카 세베라). 라파엘의 낙원, 그의 달콤했던 인생은 루르데스의 손아귀에 놓인다. 라파엘의 목적은 이제 그녀의 지옥으로부터 탈출하는 것뿐이다.
<야수의 날> <커먼 웰스>로 알려진 알렉스 드 라 이글레시아는 이번 영화에서도 아이디어의 기발함과 컬트적인 요소로 백화점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을 유쾌하게 덧칠한다. 밀물처럼 밀려드는 쾌락과 권력의 어둠이 공존하는 이 소비의 왕국은 현대사회에 대한 풍자로 가득하다. 여기에는 오직 소비하므로 존재하는 인간의 허영심과 권력을 둘러싼 얕은 속임수가 긴장감 넘치는 유머 속에서 꿈틀거린다.
애정, 권력욕, 성욕, 소비욕이 흘러넘치는 이 폐쇄된 공간 속에서 끔찍한 것은 그 욕망을 좇는 인물들이 아니라 기름처럼 과다하게 미끄러지는 욕망의 과잉 그 자체이다. 이 느끼한 욕망은 토막난 시체, 머리에 칼을 꽂은 유령 등과 같은 지극히 코믹 엽기적인 이미지를 통해 기괴함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것은 소비사회에서 하루에도 수십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인간의 불안정한 운명에 대한 영화적 상상력이다. 낙원의 주인인 라파엘과 권력의 최주변부에서 서성이던 루르데스의 운명이 한순간 뒤바뀌듯, 소비의 왕국에서 이제 인간의 운명은 낡으면 버려지고 돈과 권력으로 구매되는 순간의 패션이 되었다는 ‘호러적인’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