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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문인의 파괴와 쇠락, <실비아>
김혜리 2005-04-12

죽은 시인을 사로잡았던 위험한 마음의 고백.

실비아 플라스는 그녀의 책상에서 천사를 찾으려고 했다. 시로 세속의 성공을 누리길 원했고, 그 책상 곁에는 연인으로서 그녀를 영원히 사랑하는 동반자가 서 있기를 꿈꾸었다. 재능있는 소녀는 숱한 시험을 통과하고 장학금을 따낸다. 그러나 결벽증적 투지는 자주 그녀를 죽음과 한뼘 거리까지 몰아세웠다. 스물한살에 자살을 기도했다 실패한 실비아(기네스 팰트로)는 영국의 케임브리지로 유학을 떠난다. 그리고 훗날 계관시인이 된 남편 테드 휴스(대니얼 크레이그)를 만난다.

영화는 여기부터다. 애초 <톰 앤 비브> <헨리와 준> 같은 문인 전기영화와 운을 맞추어 <테드와 실비아>라는 가제로 출발했던 <실비아>는 남편에 대한 동업자적 시기와 성적인 질투심으로 출렁거린 시인의 결혼생활에 집중한다. 테드 휴스는 정말 부정을 저질렀을까? 아니면 그녀의 병적인 의심이 테드로 하여금 배신을 선택하도록 내몰았을까? 실비아 플라스의 충실한 팬이라는 크리스틴 제프스 감독은 모든 논란과 혼돈을 그대로 놓아둔 채 플라스의 우울증이 고인 물처럼 썩어가는 과정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인물의 해석도 조심스럽다. 실비아는 질투에 불타는 주부와 비범한 영감에 전율하는 예술가 사이를 오갈 뿐 어느 쪽으로도 광기를 폭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과연 실비아 플라스에 관한 영화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균형과 공정성일까? 문제는 영화가 정교한 노력을 기울여 대답을 회피한, 누구에게 불행의 책임이 있었느냐는 물음 자체가 플라스를 이해하는 열쇠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시와 일기가 전하듯 실비아 플라스에게 자살은 실연으로 인한 자포자기의 몸짓만은 아니었다. 아홉 목숨을 지닌 고양이처럼 플라스는 죽음과의 정면충돌을 살아갈 자격을 인정받는 주기적 통과의례로 여겼다. 그녀는 다가올 고통에 선수를 쳐서 승리하려 한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시인의 심리상황과 시작(詩作)의 에너지 사이에 있는 고리를 명쾌히 보여주지 못한다. 아이리스 머독에 대한 <아이리스>가 그랬듯 <실비아>는 여성 문인의 성취를 해명하기보다 그녀들의 파괴와 쇠락에 이끌린다.

플라스 역을 맡은 기네스 팰트로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공연한 어머니 블라이스 대너보다 미아 패로나 시시 스페이섹을 닮았다. “그냥 주제를 정하고 거기 머리를 처박으면 돼.” 사랑했던 남편의 충고를 따르기라도 하듯 실비아가 가스 오븐에 머리를 파묻기를 결심한 순간 영화는 지복의 빛이 천상으로부터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지도록 한다. 순간 고양감으로 평온해진 기네스 팰트로의 얼굴은 순교하는 잔다르크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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