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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파 남자조연 5인 [4] - 김뢰하
사진 오계옥문석 2005-04-06

외강내유의 얼굴, 김뢰하

김뢰하의 첫인상은 무섭다. 얼굴에 빛이 드리워 유난히 굵은 주름 사이로 그림자가 맺히면 그의 사내다운 풍모는 더욱 강해진다. 그런 탓인지 그는 10편 남짓한 영화 속에서 항상 강한 남성 역만을 맡아왔다. 굳이 그의 대표작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지 않아도, <플란다스의 개>의 부랑자, <정글쥬스>와 <맹부삼천지교>의 조직폭력배 등의 역할은 그를 흉포한 남성성의 소유자로 인식하게 했다.

그의 신작 <달콤한 인생>에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김뢰하가 이 영화에서 맡은 캐릭터 문석은 조직의 2인자 자리를 놓고 선우(이병헌)와 격하게 갈등하는 인물이다. 그는 달콤한 인생을 즐기던 선우를 지옥의 불구덩이로 쫓아내기 위해 야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전형적인 악당이다. 김지운 감독에 의해 “누아르의 얼굴”이라 불렸던 김뢰하는 머리 위로 떨어지는 조명 아래서 비열하고 악랄한 내면을 드러낸다.

관객에게 일말의 동정심도 허용하지 않는 냉혈한 문석의 캐릭터는, 하지만 김뢰하에겐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의 굴곡진 얼굴 아래 자리한 “순박한 심성”은 그동안 그의 캐릭터로 하여금 연민을 자아내게 했다. <살인의 추억>에서 폭력의 시대인 80년대를 대별하는 인물 조용구 형사가 비극적 퇴장을 하는 순간엔 묘한 비애감이 흘렀던 것도 조 형사도 시대의 희생양이라는 그의 생각과 연민이 캐릭터에 묻어난 탓이리라. 보스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맹부삼천지교> 속 조폭이나 매일 1천만원을 써야 하는 베스트극장 <돈벼락> 속 조폭 출신 택시운전사도 팍팍한 삶의 냄새를 캐릭터에 묻힐 줄 아는 김뢰하의 능력이 아니었다면 로봇 같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너무 강한 남자만 연기하는 것 같다. 오히려 나 같은 인상의 소유자가 순박하게 짝사랑에 목을 매는 농촌총각 역을 하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도 그런 탓이다.

촬영이 없는데도 새벽같이 촬영장에 나와 스탭들을 돕던 그에게 김지운 감독이 “너 스탭이냐?”고 말했다는 일화는 김뢰하에게 특별한 게 아니다. <플란다스의 개>나 <살인의 추억> 때도 그는 매일 현장으로 찾아가 영화의 호흡을 함께하려 했다. “무언가 하나에 꽂히면 다른 것엔 신경쓸 수 없다”는 이 열혈남아는 이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위해 열정을 끌어모으고 있다.

<달콤한 인생>

<살인의 추억>

나, 이렇게 알려졌다

<살인의 추억>에서 백광호에게 다리에 칼을 맞은 뒤 진흙탕에 빠진 자동차를 미는 장면. 조용구 형사는 말도 안 되는 80년대의 마초를 대별하는 인물 아니겠어. 사고 직후 기본적인 응급처치만 했더라도 다리를 자르지 않아도 되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라고만 말하면서 땀을 삐질거리며 혼자서 낑낑거려요. 그게 조용구라는 캐릭터의 성격과 80년대라는 시대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풍경이 아니었을까. 그 장면은 연기하는 내게 캐릭터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기도 했고.

나, 이렇게 살아왔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지만, 뭔가 갑갑했어요. 우연한 기회에 연극동아리 신입회원 모집 포스터와 만났는데, 그게 뭔가 탈출구로 생각되더라고. 무언가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성격 탓에 그 뒤로 내 삶엔 오로지 연극밖에 없었어. 연우무대에 들어간 이후에도 사정은 똑같았지. 연봉 80만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이었지만, 그 좋아하는 술은 선배들에게 얻어먹고, 밥은 극단에서 해먹으면서 버텼죠. <난 새에게 커피를 주었다> <미친 리어> <국물 있사옵니다> <날 보러 와요> <김치국씨 환장하다> 같은 작품을 했고, 연산군 역으로 2001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받은 <이>(爾)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죠.

나, 이렇게 울고 웃었다

정말로 힘들다고 느낄 때는 거의 없었어요. 무언가를 하는 데 힘이 든다면 그건 그 일을 그만둘 때가 됐다는 것 아닌가. 물론 부분적으로, 순간적으로 힘들 때는 있지. 그건 내가 나 아닌 것을 해보려고 할 때야. 배우라고 해서 자신을 완전히 버리고 100% 남으로 채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달콤한 인생>에서도 김지운 감독이 “여기선 좀 세게 해달라”고 해서 내 나름대로 세고 드라이하게 연기하는데 이상하게도 꼬이더라고. 내가 인상과는 달리 그리 마초는 아니거든요.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이냐고? 그건 말 못하지. 반면 뿌듯한 순간은 이럴 때지. 내가 나온 영화를 보는데, ‘어 내가 배우네’ 하는 느낌이 드는 순간. 배우라는 게 영화에서 도구로도 사용되고, 장치로도 사용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 출연하는 분량은 문제가 안 돼. 예컨대 <살인의 추억>에서 조용구 형사가 없으면 영화는 풀려나가지 못한다고. <플란다스의 개>에서도, <달콤한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그 역할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때, 그때 정말 뿌듯함을 느끼죠.

나, 이런 모습도 있다

일단, 내 첫인상으로 당신이 예측하지 못했을 만한 속살.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렸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공부보다 그림 그리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니까. 고2 때부터는 아예 화실에서 살기도 했죠. 그때(82년) 그린 100호짜리 유화는 400만원에 팔릴 정도였다니까. 대학에도 회화 전공으로 가려 했지만 공부를 안 해서 떨어졌죠. 재수하면서 공예과로 들어간 건 ‘안전제일주의’ 때문이었고. 지금도 집에 화구와 석고상까지 사놓고 언제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준비를 해놓았는데 손이 잘 안 가더라고. 그림을 취미로만 여기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가. 두 번째, 내 첫인상과 약간 관련있는, 하지만 한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속살.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지 않았다면, 어쩜 나는 지금 군소 폭력조직의 두목쯤 하고 있을 거야. 중·고등학교를 구로동, 가리봉동 인근에서 다녔는데 걸핏하면 학교도 안 가고, 가방을 다방에 던져놓고 친구들과 어울려 싸움을 했으니까. 우리 학교에 마골파, YL 등 음성서클이 있었는데, 나는 신생조직인 백장미파 소속이었다고. 그중엔 정말 큰일도 있었죠. 여의도 ‘앙카라’파가 우리 구역에 들어왔다고 해서 우르르 몰려가 선혈낭자하게 싸웠다고. 자세히 사정은 말 못하지만, 그 일이 계기가 돼 그림에 다시 정신을 쏟게 됐어요.

그림, 싸움, 연기… 뭐 그렇지. 아무튼 나는 무언가에 빠지면 절대 헤어나오지 못하는 성격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거 같아…. 고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인생 뭐 있나”라는 정도 아닐까.

Filmography

<달콤한 인생>(2005)

<맹부삼천지교>(2004)

<지구를 지켜라!>(2003)

<살인의 추억>(2003)

<H>(2002)

<정글쥬스>(2002)

<플란다스의 개>(2000)

<송어>(1999)

<퇴마록>(1998)

<둘 하나 섹스>(1998)

<여고괴담>(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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