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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군 투덜양] 친구란 이런 것 아니겠니? <사이드웨이>

투덜양, <사이드웨이>의 잭에게 ‘진정성’을 발견하다

이번 아카데미영화제에서 개인적으로 투덜거리고 싶은 부문은 남우조연상 결과였다. 일면식도 없을뿐더러 이번에 미끄러지고 다음에 또 미끄러진다 해도 부와 명성에 있어 나와는 비교가 안 되는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갈 마틴 스코시즈에게 같잖은 연민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가장 애석한 건 <사이드웨이>의 토머스 헤이든 처치가 남우조연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거다.

토머스 헤이든 처치가 연기한 <사이드웨이>의 잭은 최근 본 영화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남자 캐릭터였다. 발에 걸리는 여자라면 모두에게 침을 질질 흘리면서 주접을 떨던 잭이, 유부녀 웨이트리스 집에 갔다가 남편에게 걸려 팬티도 못 챙겨입고 내빼온 뒤 친구 마일즈에게 결혼반지가 든 지갑을 찾으러 돌아가야 한다고 박박 우기며 “빅토리아 없인 못살아”라고 통곡할 때 나는 요사이 남발되던 ‘진정성’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감히 깨달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남들이야 뭐라든 진정한 사랑은 그런 것이다.

나아가 <사이드웨이>는 버디영화의 신기원을 개척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부치 캐시디나 선댄스 키드이든, <리썰 웨폰>의 흑백 형사이든, <덤 앤 더머>의 두 찌질이이든 영화의 장르나 캐릭터의 성격을 막론하고 버디영화의 두 남자들은, 아니 <델마와 루이스>나 <바운드>에서의 두 여자라도 이들은 언제나 서로에게 힘을 주고 격려하는 우정관계로 그려져왔다. <덤 앤 더머>나 <내 차 봤냐> 같은 바보 버디영화조차 바보짓하는 데 호흡이 착착 맞고 서로를 존경한다는 점에서 폼나는 버디영화들의 표현양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우정이란 게 사실 그런가.

이를테면 내 주변의 우정이란 기사 아이디어가 없을 때 함께 머리를 굴리거나 아이디어를 주기보다 “한잔하면서 같이 생각해보자”고 꼬드긴 다음 마감은커녕 다음날 제때 출근도 못하게 하는 종류의 것이다. <사이드웨이>의 두 친구도 그렇다.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까 싶을 만큼 성격도, 원하는 것도, 상대방을 위하는 방식도 다르다. 결국 마일즈가 치밀하게 짰던 여행계획은 잭의 “그까이꺼 대충” 노선에 무너지면서 ‘샛길’로 빠진다. 그리고 마일즈는 자신이 그렇게 말렸던 사고를 치러가 팬티도 못 챙기고 돌아와 징징거리는 ‘웬수’ 같은 잭을 위해 그 집으로 돌아간다. 덜덜 떨며 마룻바닥을 기는 마일즈의 그 큰 엉덩이에서 나는 다시 ‘진정한’ 우정을 봤다. 인생이든 여행이든 정해진 코스는 혼자 갈 수도, 모르는 사람들과 패키지로 갈 수도 있다. 인생에 우정의 역할이 있다면 지루한 직선 코스를 샛길로 인도하고 그 여정에서 똥창에 빠진 친구에게 욕을 바가지로 퍼부으면서도 손을 내미는 정도까지가 아닐까 싶다. 빨랑 노트북 끄고 마감하는 친구나 샛길로 인도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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