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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디 앨런의 현주소 [1]
김혜리 2005-02-15

스캔들, 소송, 비평가들의 우려 등으로 얼룩진 우디 앨런의 90년대 그리고 현재를 알아본다

한동안 수입 소식이 뜸했던 우디 앨런의 영화가 웬일인지 올해는 세편이나 한국 관객과 만날 채비를 하고 있다. 2월4일 개봉하는 <애니씽 엘스>는 그 첫 작품. 수입사들이 계획대로 개봉을 성사시킨다면 2002년작 <할리우드 엔딩>과 오븐에서 갓 꺼낸 신작 <멜린다, 멜린다>도 연내에 스크린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찰리 채플린과 버스터 키튼, 막스 형제의 예에서 보듯 스스로를 연출하는 위대한 코미디언이 위대한 말년을 구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35편의 영화를 만든 일흔살의 우디 앨런 역시 이제 웃어넘길 수 없는 문제다. 노장의 근작들과 오래간만에 조우하려니 문득 궁금해진다. 온갖 변화의 와중에 우디 앨런씨는 안녕하신가? 그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우디 앨런 필모그래피 since 1995

1995 <마이티 아프로디테>(Mighty Aphrodite) 1996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Everyone Says I Love You)                            1997 <해리 분해하기>(Deconstructing Harry) 1998 <셀레브리티>(Celebrity) 1999 <스위트 앤드 로다운>(Sweet and Lowdown) 2000 <스몰 타임 크룩스>(Small Time Crooks) 2001 <옥전갈의 저주>(The Curse of the Jade Scorpion) 2002 <할리우드 엔딩>(Hollywood Ending) 2003 <애니씽 엘스>(Anything Else) 2004 <멜린다, 멜린다>(Melinda and Melinda)(3월 미국 개봉예정)         <매치 포인트>(Match Point)(후반작업 중)

뉴욕에 거주하는 우디 앨런(70)씨가 부지런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는 모범시민 납세하듯 해마다 꼬박꼬박 새 영화를 내놓는다. 불안과 노이로제는 창작의 촉매라는 가설을 입증하듯이. 참고로 우디 앨런 본인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병원의 환자들이 치료를 위해 바구니를 짜듯이 영화를 만든다. 영화를 만들지 않으면 시간이 남아 생각이 많아지고 병적인 내성이 시작된다.”

그럼에도 우디 앨런은 한국 관객과 한동안 적조했다. 1997년 뮤지컬영화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이후 극장 개봉작으로는 2003년 1월의 <스몰 타임 크룩스>가 전부였다. 하지만 소식이 뜸한 데에 비해 우리는 그의 근황을 그리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우디 앨런은 우리에게 브루클린 다리나 센트럴 파크 같은 뉴욕의 지형지물로 여겨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보나마나 여전히 우주의 멸망을 겁내고 예술적 자괴감에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자들을 간곡히 설득하는 줄거리에 재즈 사운드트랙을 장착한 코미디를 찍고 있겠거니, 월요일이면 ‘마이클즈 펍’에 나가 클라리넷을 불고 있겠거니 짐작해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언뜻 한결같아 보이는 우디 앨런에게 1990년대는 특별히 힘든 시간이었다. 곤경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그의 영화에 대한 리뷰는 점점 혹독해지고 있으며, 앨런의 코미디를 받아들이는 미국사회와 문화의 표정도 많이 달라졌다.

스캔들과 소송의 날들

자신과 동거하는 미아 패로의 양녀 순이 프레빈을 사랑한다고 우디 앨런이 공표한 것은 이미 10년이 훌쩍 넘게 흐른 사건. 그로부터 파생된 미성년자 성추행 의혹과 양육권 분쟁은 우디 앨런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1997년 순이와 결혼하여 두 양녀의 부모가 된 지금도 이 스캔들이 우디 앨런에게 덫이 되는 것은 그가 유난히도 영화와 현실의 경계선이 모호한 이미지의 소유자이기 때문이다.

관객은 영화에 출연한 우디 앨런의 언행을, 진짜 우디 앨런의 그것과 필요 이상 동일시한다. 게다가 미아 패로와 맺은 관계의 위기가 지속되는 동안 만들어진 <우디 앨런의 부부일기>는 앨런이 스무살 여대생에 반해 패로를 떠나는 내용이어서 사태를 부채질했다. 스크린 밖의 성추행 의혹이 스크린 속 섹스에 대한 호들갑과 연결되자 앨런 코미디의 관객에겐 무거운 부담이 생겼다. <옥전갈의 저주>(2001), <할리우드 엔딩>(2002)에서 30년쯤 어린 헬렌 헌트, 티아 레오니와 벌이는 로맨스에 저널리스트들은 진저리를 쳤다. 일부 팬들은 이제는 “<맨해튼>에 나오는 고교생과의 데이트 장면도 불편하게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우디 앨런은 그러나 젊은 여성과 자신의 로맨틱한 연기를 상상하는 데 문제를 느끼지 않는다고 일축한다. 그런 불만은 어차피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찾아낸 핑계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애니씽 엘스>의 리뷰에서도 <빌리지 보이스>를 비롯한 몇몇 언론은 “크리스티나 리치와 우디 앨런의 러브신이 없어서 다행이다”라는 심술궂은 코멘트를 잊지 않았다.

순이 스캔들로 컬럼비아 영화사가 우디 앨런 영화 크레딧에 오르기를 꺼려하기 시작했을 때 손을 뻗은 것이 제작자 진 두메니언과 그녀의 남자친구인 레바논-스위스계 투자자 자키 샤프라다. 이들은 <브로드웨이를 쏴라>부터 8편을 내리 제작했고 첫 3편 이후로는 서면 계약서도 없이 신뢰만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진 두메니언은 공격적인 해외 세일즈 전략을 밀어붙였고 스탭의 보수를 과감히 깎아 편집기사 수잔 모스, 의상 디자이너 제프리 컬랜드 같은 앨런의 오랜 동료들을 떠나게 했다.

또 다큐멘터리 <와일드 맨 블루스>를 제안해, 앨런을 무해한 나르시시스트로, 순이를 침착한 조력자로 세상에 보여주는 성과도 올렸다. 그러나 두메니언 커플에게 “메디치(예술 후원으로 유명한 이탈리아 가문)”라는 별명까지 붙였던 앨런은, 2002년 이들이 영화 5편이 낸 정당한 이익을 분배하지 않고 착복했다는 소송을 제기했고 지저분한 소동 끝에 1200만달러를 더 받는 판결을 얻어냈다. 지인들은 수백만달러짜리 비즈니스를 가족끼리 운영하는 구멍가게처럼 처리한 탓이라고 수군댔다. 어쨌거나 공과 사를 넘나들던 파트너십이 깨지면서 은둔자 스타일의 제작자와 우디 앨런은 이미지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갑자기 돈줄이 끊어진 우디 앨런의 프로덕션을 구조한 것은 앨런이 성우로 출연한 <개미>의 제작사 드림웍스. 국내 개봉을 앞둔 <애니씽 엘스>는 이때 드림웍스가 판권을 산 3편의 영화 중 마지막 작품이다. 우디 앨런에게 흥행의 정점은 미국 박스오피스 4천만달러를 기록한 1986년작 <한나와 그 자매들>이었다. <브로드웨이를 쏴라>부터 <옥전갈의 저주>까지 8편을 합쳐도 국내 흥행은 6500만달러에 불과하다. 오히려 앨런의 영화를 지탱하는 것은 꾸준한 해외시장의 수요다. 2003년 <뉴욕타임스>가 우디 앨런이 펭귄 출판사와 300만달러에 회고록 판권을 교섭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많은 사람들은 앨런에게 돈이 무척 중요한 모양이라고 전과 다른 탐탁지 않은 투로 반응하기도 했다.

비평가들의 우려, 시대와의 불화

2001년과 2002년, 우디 앨런은 노부모를 연달아 여의었다. 아들이 약사가 됐으면 영화보다 손님을 많이 모았을 거라고 믿던 아버지는 향년 100살, 이듬해 1월 타계한 어머니는 95살을 일기로 아들 곁을 떠났다. 그 무렵 우디 앨런은 정신분석가에게 상담받기를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나이가 60이 넘으니 모두들 당연하게 항우울제 처방을 얻는다고 앨런은 말하기도 했다). 그해 우디 앨런은 놀랍게도 13년간 거절한 오스카 시상식 초대를 받아들였다. 이어 5월에는 칸영화제에 나타났다. 경악하는 구경꾼들에게 앨런은 “올해 아카데미는 9·11에 대한 추도를 담았다. 뉴욕에 도움이 된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칸은 조금 다르다. 프랑스인들은 오래전부터 내 영화를 애정어린 눈으로 지지했다”고 답했다. 배급사 드림웍스의 부추김이 컸겠지만, 사람들은 “이제 인생의 1/3이 지났다”는 67살 우디 앨런의 오스카 시상식 조크를, 세월을 의식하기 시작한 표지라고 해석했다.

하지만 정작 팬들을 걱정시킨 것은 그의 육체가 아니라 영화가 노쇠하고 있다는 일부 평론가들의 관찰이었다. 1999년 이후 앨런의 영화 가운데 가장 호평받은 작품은 오래전 써둔 시나리오를 서랍에서 꺼내 만든 <스위트 앤드 로다운>이다. 익숙한 냉소 대신 씁쓸한 온기가 흐르는 이 가짜 전기영화에서 숀 펜이 연기한 1930년대 천재 재즈 기타리스트 에멧 레이는 지금까지 가장 우디 앨런을 닮지 않은 주인공이라는 평을 얻었다.

비교적 좋은 반응을 얻은 2000년의 <스몰 타임 크룩스> 역시 잉마르 베리만풍의 자기분석을 떨치고 초기작 <돈을 갖고 튀어라>의 에너지로 만들어진 매너 코미디였다. 그러나, 은행 강도를 모의해 드라마를 이끌어가던 인물들이 영화 1/3 지점부터 흐지부지 사라지고 전혀 다른 드라마가 부상하는 구성은 매끄럽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장면의 재미에 치우쳐 전체를 단단히 묶어세우지 않는 구조의 문제는 <옥전갈의 저주>에서도 발견되었다. <버라이어티>의 평론가 데보라 영은 “모든 장면이 농담을 기다리며 보면 즐길 만하다. 그러나 그것의 총합은 별게 아니다. 앨런의 최근작에서 보이는 구조의 결핍은 <맨해튼>이나 <젤리그> 같은 최고작과 같은 리그에 속하지 않는다”고 썼다. <옥전갈의 저주>와 <할리우드 엔딩>이 연달아 평단에서 냉대받자 유럽의 관객과 비평가들도 그의 작가적인 파워가 쇠락하고 있다고 느낀다는 기사를 내기도 했다.

우디 앨런 영화를 향한 불만의 또 다른 요지는 “신선하지 않다”는 것이다. <할리우드 엔딩> 개봉 당시 <엔터테인먼트 위클리>의 오언 글라이버먼은 “66살에도 여전히 신경과민한 10대처럼 행동하는 신경과민한 중년 연기는 더이상 보기 즐겁지 않다”며 앨런의 영화를 ‘제살을 깎아먹고 뼈가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자기 패러디’라고 깎아내렸다. <빌리지 보이스>는 <애니씽 엘스>의 리뷰에서 영화의 제목이 10여년간 우리가 감독에게 묻고 싶었던 질문(“딴 거 뭐 없수?”)이라고 말하는 심술을 부리기도 했다. 이에 대한 우디 앨런의 답변은 간단하다. “나는 여전히 체구가 작고 여전히 유대인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 앞에서 매너리즘을 문제삼는 것은 좀 새삼스러운 노릇 아닌가? 진짜 문제는 앨런이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시대가 변했다는 사실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앨런은 그 변화에 호의나 관심이 없는 듯하다. 고급문화의 숭배 풍조를 조롱하면서 대중문화의 경박함에도 신물을 내온 우디 앨런은 사실 진작부터 동시대 미국 문화로부터 얼마간 고립되어 있었다. 그러나 동시대의 미국사회와 뉴욕에서 사는 평자들은 우디 앨런 영화의 폐쇄성에 외국의 관찰자보다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

<뉴욕타임스>의 평론가 A. O. 스콧은 40년대로 거슬러올라간 탐정영화 <옥전갈의 저주> 개봉에 즈음해 “최근 우디 앨런의 영화는 현대를 배경으로 설정했다 하더라도 코스튬을 걸친 인위적 시대극의 분위기를 두르고 있다. 그건 그가 현재의 뉴욕에서 한발 물러나 노스탤지어, 판타지, 손쉬운 조크로 구성된 버전의 뉴욕으로 틀어박혔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뉴욕의 다른 평론가들도 뉴요커들이 더이상 우디 앨런 영화 속 인물 같은 어휘나 말투를 쓰지 않는다고 꺼림칙해한다. 코미디 작가로서 귀가 어두워졌다는 것이다(실제로 우디 앨런은 청력이 저하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콧이 궁극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우디 앨런의 해학과 자아분석이 더이상 시대정신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영화는 점점 더 취미로 갖고 노는 장난감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디 앨런의 영화는 한때 우리에게 취미 이상이었다.” 어쩌면 우디 앨런의 영토는 1990년대부터 양산된 센스있는 시트콤들에 잠식당한 것인지도 모른다.

<할리우드 엔딩>

<셀러브리티>

그렇다면, 우디 앨런은 21세기 사회의 이슈, 그 사회를 움직이는 젊은 세대와 적극 소통을 꾀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2004년 6월 <인디펜던트>의 인터뷰에서 우디 앨런이 밝힌 입장은 부정적이다. 그리고 솔직하다. “하지만 내가 왜 (젊은 애들에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나? 다시 젊어지려 애쓰는 건 실수다. 미국의 젊은이들은 좋은 영화나 연극에 대한 감식안을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젊은 층을 겨냥한 영화들은 사려 깊지 못하다. 화장실 조크로 넘치는 코미디는 어리석고 세련미라고는 조금도 없다. 나는 젊은이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우리는 적어도 트뤼포, 베리만, 안토니오니의 신작에 흥분했다. 요즘은 지적인 아이들도 르누아르와 구로사와를 모른다. 마치 젊다는 것 자체만이 그들이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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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협조 동숭아트센터·사진제공 R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