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희 감독이 <돌아오지 않는 해병>을 만들 때였다. 한겨울에 제작비가 없어 중단되었던 영화가 우여곡절 끝에 다시 촬영을 시작했지만, 문제는 산등성이를 넘으면서 갑자기 눈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이만희 감독은 대사 한마디를 넣었다. “이 전쟁터에도 봄이 왔구나.” 1950년대부터 70년대에 걸쳐 우리 영화의 대표적인 편집기사였던 김희수의 증언이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출간한 두권의 책 <한국영화를 말한다: 1950년대 한국영화>와 <한국영화사 공부: 1960-1979>는 한국영화사 연구에 봄을 왔음을 알리고 있다.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은 변하고 있다. 자료원 로고도 변했고, 인터넷 홈페이지도 변신했고, 매달 그저 의무적으로 상영되던 영화들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시선”으로 탈바꿈하여 좀더 다양한 테마전과 기록영화로까지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외적 변화보다 더 중요한 변화는 지난해부터 자료원 내부에 “연구팀”이 신설된 것이다. 이 두권의 책은 이 연구팀이 내놓은 첫 번째 성과물이다.
<한국영화를 말한다…>는 “한국영화사 구술총서”의 시작으로, 1950년대에 활동했던 영화인들의 인터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기존의 영화사가 대체로 감독과 배우들의 활동과 증언으로 정리된 것과 달리 이 책은 제작, 편집, 조명, 미술, 각본, 효과, 음악, 성우 그리고 평론에 종사했던 원로들을 아울러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 자체만으로 이 책은 중요한 영화사적 가치를 가진다. 이들의 증언은 한국의 영화산업이 태동하던 1950년대 모습을 총체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사 공부…>는 “한국영화사 연구총서”의 그 첫 번째 연구서이다. 그러나 이 책 역시 과거 연구서들이 영화의 텍스트에 연연하던 것과 달리 연구 영역을 당시의 영화정책과 영화 제작기술의 변화와 같은 생산자 영역은 물론 상영관과 관객이라는 소비자 영역까지 확대하여 좀더 넓은 연구의 스펙트럼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발간한 두권의 책이 시사하는 점은 제목에서부터 분명하다. 지금까지 검토되지 않았던 한국영화사의 새로운 영역을 “말하고, 공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살아남은 몇편의 유명한 영화에 천착하던 척박한 한국 영화사 연구의 지형도에 변화를 가져올 초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갖는 귀중한 의미는 우리의 자료원이 무지함과 편협함에 갇혀 있던 한국영화를 현재 속에 숨쉬게 만드는 것이 자기 역할임을 밝히는 선언문이라는 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