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깃>은 송일곤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 (2001)은 저마다 깊은 상처를 지닌 세 여성의 기나긴 여정을 뒤쫓는 로드무비였다. 그것은 ‘세명’이 함께하는 공생과 치유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한국적인 로드무비의 계보 속에 놓일 만한 작품이었다(에서 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로드무비는 세 인물의 여행기인 경우가 많다. 대개의 경우 그것은 두 남자와 한 여자로 구성된 ‘삼인조’가 펼치는 ‘탈출/도피-공생/갈등-치유/죽음’의 궤적을 그리곤 한다). 그들이 모두 여성이라는 점, 그리고 현실과 환상의 공존을 통해 독특한 ‘시정’(詩情)을 담아낸다는 점, 이것이 의 새로움이었다.
그의 두 번째 작품 (2004)은, 나에겐 조금 뜻밖의 작품으로 여겨졌다. 장르의 화법을 빌린, 죄의식에 사로잡힌 한 남자의 무의식 또는 고전적 비극의 세계에 대한 탐구. 그것은 또 한번의 징후적인 계통 발생의 반복이었다. 김지운이 을 통해, 박찬욱이 를 통해 보여준 궤적의 반복. 그들과 함께 송일곤은, 장르적 수사법의 세련화라는 일보전진과 새로운 영화적 발견의 부재라는 이보후퇴를 반복한다. 은 도스토예프스키적 소수적인 분열의 세계를 ‘원죄의식의 서사’라는 낡은 관념으로 봉합-설명해내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낡은 관념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영화적 발견(새로운 정서의 창조)이 이루어지기란 근본적으로 힘든 것임을 다시 한번 보여준다.
송일곤의 세 번째 작품 은 생각보다 무척 빨리 세상에 나왔다. 의 무거운 관념의 세계의 끝자락에서 이미 이 태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화 은 송일곤 특유의 겨울 하늘과 그것이 품고 있는 북구적 우수를 담고 있지만, 동시에 경쾌하고 가벼운 사랑스러움 또한 지니고 있다. 은 과 를 잇는 ‘감성 멜로’일 수 있지만, 단지 그것에 머물지 않는 텍스트적 의미를 지닌다. 세 영화가 새로운 ‘감성 멜로’로 자리매김되는 것은, 그들이 ‘사랑’을 이야기한다기보다는 사랑의 ‘예감’ 또는 그것이 시작되는 ‘순간’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려내는 그 ‘순간’은 감독 자신의 영화적 시작의 순간 즉 ‘초심으로의 회귀’와 중첩되어 있다.
의 소녀 혜나(김혜나)는 ‘날개’를 들고 다니며 비상을 꿈꾸지만, 끝내 날 수는 없었다. 의 소녀 소연(이소연)은 단지 바람과 함께 흐르는 ‘깃’을 머리에 꽂고 경쾌한 탱고를 꿈꾼다, 그리고 출 수 있다. 날개와 달리 깃이 가벼운 것은, 다른 무엇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바람을 타고 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존재 이유를 지니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념의 무게에 짓눌려 더이상 시나리오를 쓸 수 없었던 감독 현성(장현성)은, 그 깃-소녀와의 만남을 통해 시나리오를 쓸 수 있게 된다. 그 깃-소녀는 비양도의 바다와 바람과 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허무는 설화 또는 지혜의 세계이기도 하다. 감독 송일곤은 그 세계로부터 얻은 것을 다시금 그 세계에 돌려주고, 그만큼 가벼워진다. ‘문지방을 긁어먹으면 글이 잘 써진다’는 민간요법을 몸소 실천하며, 기다림의 고통에 관한 비극적인 ‘망부’(望夫) 설화를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망부’(望婦) 설화로 살짝 바꾸어놓는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것 하나. 영화의 시작에 현성을 짓누르던 것은 80년대(광주)에 대한 시나리오였다. 마지막에 결국 그가 써낼 수 있었던 시나리오는 어떤 내용이었을까? 그 세대에게 또 하나의 버거움일 수밖에 없을 그 ‘관념’의 무게에 접근할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던 것일까, 아니면 그냥 피해가기로 했던 것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이 보여주는 가벼움은 감독 송일곤이 새로운 긍정의 미학으로 접근해가는 징후로 읽힌다. 그래서, 반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