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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허구와 인간의 나약함을 성찰하는 솔직함, <스노우 워커>
오정연 2005-01-11

한계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할 것. 어설픈 외부자의 시선만이 전달할 수 있는 감동도 소중한 법이다.

2003년 말 개봉한 는 기계문명으로부터 가장 멀리, 신화로부터 가장 가까이서 살아가는 동시대 에스키모를 보여줬다. 그러므로 불시착한 캐나다인 비행기 조종사 찰리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삶의 지혜를 대변하는 에스키모 소녀 카날라의 교감을 그린 가 의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자연과의 교감에 천착했던 자연과학자 팔리 모왓의 단편 를 영화화한 는 외부자의 시선을 견지한다. 스스로를 성찰한 와는 태생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영어를 금세 익혀 관객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카날라의 명민함, 찰리의 상처를 치유하는 카날라의 손길을 따라잡는 여성적이며 토속적인 음악이 불편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는 섣불리 이해했다고 자만하거나 이유없는 경외로 오해의 불씨를 키웠던, 서구영화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백인 남자와 원주민 처녀의 순결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다. 로맨스 따위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 단호함이 매력적이고, 우리를 둘러싼 문명의 허구와 인간의 나약함을 성찰하는 솔직함이 돋보인다. 두 주인공은 두 문명의 다름을 인정한다. 그리고 현실적인 과정 속에서 이해와 교감을 쌓아간다. 때로 우직하게 상대 문명을 설득하기도 한다. 물론 찰리는 전형적인 백인의 표상이다. 그는 누구나 영어 한마디는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믿으며, 자신이 비문명인이라고 간주한 이들에게 엄청난 호의라도 베푸는 양 초콜릿과 콜라를 권하는 무례를 일삼는다. 그러나 그는 혹독한 자연에서 더욱 빛나는 생존력으로 자신을 (그야말로!) 먹여살리는 카날라에게 진심으로 감사할 줄도 안다. 그리고 짜증과 화풀이로 일관하던 그는, 몸을 움직여 생존에 골몰하면서 점차 강해진다.

영화는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속을 혼자의 힘으로 꿋꿋하게 걸어, 자그마한 에스키모 부락에 당도한 찰리의 모습으로 수미쌍관을 이룬다. 저 멀리 문명의 세계에선 이미 그의 장례식까지 치러진 상태. 어쩌면 찰리는 비행기가 추락하는 그 순간 이미 세상을 떠났으며, 우리는 사후의 세계에서 평안을 찾는 그의 모습을 담은 판타지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대서양 한복판에서 난파한 타이태닉만큼이나 막막하기 그지없던 찰리가 “힘내 걸어야 해, 형제”라는 카날라의 말을 끝내 실천하는 모습, 생면부지의 이방인을 손내밀어 맞이하는 사람들, 그리고 이들의 모습을 멀찍이서 바라보기만 하는 카메라의 따스한 시선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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