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 상황 속에서 피어난 순백색 사랑
극한의 생존 여정에서 피어난 순. 백. 색. 사. 랑.북극해를 비행하는 베테랑 비행사인 찰리는 의욕이 넘치고 매사 자신만만한 남자. 자신의 생일날에도 평소와 다름 없이 비행을 나섰다가 우연히 이누이트인 일행과 마주친다. 아픈 소녀를 도와 달라고 간청하는 이누이트인들. 그들의 애처로운 눈빛에도 불구하고 야속하게 등을 돌리던 찰리는, 그들로부터 상아를 건네 받고서야 마음을 고쳐 먹는다.
거칠 것 없는 문명인, 티없이 순수한 이누이트 소녀를 만나다!
투명한 눈빛을 가진 순수한 영혼의 이누이트 소녀와 함께 비행에 오르게 된 찰리. 하지만 얼마 못가 갑작스런 요동과 함께 비행기가 허허벌판 설원으로 추락하고 만다.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진 두 사람. 하지만 상황은 암담하기만 하다. 산산 조각난 비행기 잔해 속에서 남은 것이라곤 망가진 라디오와 소량의 식량 뿐. 게다가 두 사람은 서로 말도 통하지 않는다. 끝도 없이 황량하게 펼쳐진 설원을 보고 망연자실한 찰리. 하지만 소녀는 오히려 담담하기만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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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관한 순백색의 러브 스토리!more
"그들이 보여주는 사랑은 매우 심오하고 아주 깊은 차원의 것이다. 찰리와 카날라 사이에서 움튼 사랑은, 찰리 그 자신이 과거에는 전혀 경험해 보지 못했던 깊은 연민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 감독 찰리 마틴 스미스
[스노우 워커]는 백인 비행사 찰리와 이누이트 소녀 카날라가 겪는 극한의 생존 여정을 따라간다. 추락과 함께 그들을 압도하는 광활한 툰드라.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난감함과 절망감들. 문명의 삶에 찌든 백인과 자연 속에서 살아온 이누이트 소녀는 일단 말이 통하지 않았고, 서로의 문화적인 차이에서 비롯된 이질감은 그들 서로를 경계하게 만든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소통할 수 있을 것인가?
영화는 이렇게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을 통해 내러티브의 긴장감을 키워낸다. 그러나 문명인과 자연인, 사랑, 생존이라는 보편적이고 고전적일 수 있는 이야기는 각별하게 빚어낸 캐릭터에 의해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을 전해준다.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악전고투의 장으로 비춰질 황망한 대지, 짙푸른 하늘과 설원에서 평온하리만치 잔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들이 나누는 정신적 교감이 육체적인 사랑 이야기로 변질되지 않고, 맑고 깊은 사랑의 결합을 만들어 냈기 때문인 것이다. [스노우 워커]는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네 안타까운 사랑에 바치는, 한편의 좋은 지침서가 되어줄 것이다.
영화 이전에 소설이 있었다!
[스노우 워커]는 베스트 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해서 만들어졌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작가이자 자연 과학자인 팔리 모왓이 쓴 단편 [Walk Well My Brother]가 [스노우 워커]의 모체가 된 작품. 이 단편 소설은 70년대 모왓의 단편들을 모아놓은 [The Snow Walker]에 포함된 이야기 중 하나였다.
모왓은 자연에 동화되어 가는 삶의 경험들을 담아내는 작가로 잘 알려졌으며 국내에는 멸종 위기에 놓인 야생 늑대의 숨겨진 진실에 관한 논픽션 소설 [울지 않는 늑대]의 작가로 소개된 바 있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환경과 동물의 권리를 위한 집필 활동에 쏟아왔던 작가에게 자연과의 교감은 유년 시절부터 그를 사로잡아온 관심사였고, 성장해서는 제 2차 세계 대전 참전이 안겨준 전쟁의 충격으로부터 그 자신을 살려낸 힘이 된다. 이후 자연과의 교감이란 주제는 작가에게 평생 동안 이뤄내야 할 사명이자 동시에 삶의 안식과도 같은 것이 되었다.
수 차례 북극을 여행하면서 이누이트와 인디언들의 처참한 현실을 접하며 그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간직해 온 모왓은 이질적인 두 남녀가 보여주는 순백의 이야기인 [Walk Well My Brother]에서도 자신이 고집해온 주제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의 장편을 영화화한 1983년 작 [울지 않는 늑대]의 주인공인 찰스 마틴 스미스에 의해 [Walk Well My Brother]를 영화화 하기에 이른다. 서정으로 충만한 동시에 파워가 넘치는 황홀한 이야기의 마력이라는 해외 언론의 극찬에서 보여지듯 [스노우 워커]는 원작 소설 [Walk Well My Brother]가 품고 있던 상상력을 그대로 스크린 위로 불러냈다.
그대로 찰리와 카날라가 되다!
감독은 원작에서 묘사된 대로 젊고 조그마한 체구에 여리면서도 혹한의 툰드라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어떤 극적인 분위기를 지닌 이누이트 소녀를 찾고 있었다. 캐스팅 감독인 제라드 발렌틴은 북극해 근처 이누이트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들을 찾아 다녔다. 그리고 그는 학교와 댄스장을 방문하거나 웨이트리스, 호텔 점원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을 치렀으며 심지어는 길을 걸어가는 소녀들까지 멈춰 세우는 등 소녀 카날라를 찾기 위한 오디션 작전에 돌입한다. 그리고 최종 테스트에 6명의 여자 이누이트인이 선발되었고 그 중에는 [아타나주아]에서 주연급으로 출연했던 이누이트 소녀도 있었다.
그러나 단연 감독의 관심을 붙잡은 이는 캐스팅을 위해 밴쿠버로 오기 며칠 전 가족들과 신선한 바다표범의 뇌를 먹고 왔다고 천진하게 말하던 청바지를 입은 소녀, 바로 아나벨라 피가턱이었다. 아나벨라는 영화 속 카날라의 모습을 놀랍도록 훌륭히 소화해 냈다. 감독의 기대처럼 이 특별한 이누이트 소녀는 눈으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자연스런 연기를 해낼 좋은 배우로서 자질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고 그렇게 영화 속 그대로의 카날라가 되어 있었다.
찰리 할리데이 역으로 배리 페퍼를 캐스팅한 것도 꽤 적절한 선택이었다. 영화 초반, 그는 오지를 비행하는 백인 비행사 찰리의 오만함과 이기적인 문명인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풍겼고 이누이트 소녀 카날라와의 교감을 통해 변화하는 장면들에 이르러서는 깊이 있는 눈빛을 통해 찰리의 마음 속 동요와 적요함을 그대로 담아냈다. 마치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듯이 최선의 연기를 뽑아낸 두 배우. [스노우 워커]는 이 두 배우의 연기 조화가 빛을 발한 영화로 온전히 기억될 만 하다.
1년! 그 긴 시간의 험난한 기록
한계 상황에서의 생존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스노우 워커]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모든 프레임 속에 문명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들에 대한 사랑과 존경을 담아냈다. 또한 원작의 매력을 정확히 되짚어 내는 미덕뿐만 아니라 카메라가 포착해낸 생동감 있는 영상미를 만나게 되는 뜻밖의 선물을 안겨준다.
그러나 북극해 오지에서 촬영된 만큼 그 촬영 과정이 지난할 수밖에 없었다. 감독과 배우를 포함한 영화의 모든 스텝들은 영화 촬영 내내 극심한 날씨 변화와 벌레떼, 북극곰의 공격 등 예상치 못한 난관들과 부딪쳐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1년이 넘는 제작 과정을 거쳐 영화 [스노우 워커]는 그 강렬한 순수를 담아 우리 곁으로 찾아왔다.
[스노우 워커]는 멀리 북극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캐나다의 랜킨 인렛 주변에서 촬영되었다. 원작에서 순록이 등장하는 장면은 엄청난 스펙터클로 묘사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장면을 그대로 옮기기란 쉽지 않았으며 눈속임을 쓴다 해도 어설픈 장면으로 끝나 버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때문에 이 장면은 다양한 의견 조율 끝에 얻어진 아이디어에 의해 성공적으로 촬영이 이루어졌다. 스모그 발생기를 이용해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는 가운데 정해진 장소로 순록 무리를 이동시킨 것. 그렇게 촬영된 장면들은 원작에 버금가는 극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스노우 워커] 중 가장 역동적인 씬으로 남기에 이른다.
영화와 현실이 합일하는 놀라운 경험!
영화 초반과 끝에 보이는 이누이트인 등장 씬은 감독 자신이 [스노우 워커]를 대표하는 이미지라고 말할 정도로 애착을 가졌던 작업이었다. 특히 영화의 엔딩, 마을로 걸어가는 찰리를 큰 스케일의 와이드 샷(wide shot)으로 담아낸 씬은 극적이고 서정적인 순백의 아름다움을 강렬하게 풍긴다.
그런데 이 부분을 촬영할 당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 감독은 배리가 마을로 걸어 들어가고 이어 그를 보려고 이누이트인들이 배리에게 다다르기 전에 컷 사인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때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이누이트인들이 배리에게 인사를 하러 왔고 마치 실제 상황처럼 그에게 자신들의 장갑을 건네며 그를 위로하더니 그의 짐까지 받아준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배리 곁에 둘러서서 따뜻하게 그를 환대하는 것이었다.
이는 전혀 감독이 주문한 사항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감독이 애초 바랐던 장면을 그들 스스로 연출한 것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감독은 컷 싸인을 나중으로 미루어야 했으며 배리 또한 진심이 묻어나는 이누이트인들의 환대에 감격하기에 이르렀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현실이 카메라와 조우하는 순간! [스노우 워커]는 영화가 현실이 되고 현실이 영화가 되는 기적 같은 순간을 거쳐 만들어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