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웹스터의 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고아소녀와 보이지 않는 후원자를 제외한다면 영화 와 J. 웹스터의 소설은 별다른 공통점이 없다. 새벽 꽃시장에서의 데이트와 기억을 잃어버리는 병, 가슴 아픈 짝사랑과 감초 연기로 메워진 는 하지원이라는 스타에 기대고 있는 작은 야심의 기획영화다.
하지원에 의해 솜털처럼 연기되는 영미는 머리 위에 성혼이라도 보일 만큼 선한 인물이다. 그에게 비밀이 하나 있다면, 부모가 없는 그를 위해 방송작가가 되기까지 보이지 않게 후원을 해준 ‘키다리 아저씨’라는 존재. 항상 그의 정체를 궁금해하는 영미는 또한 자료실 직원 준호(연정훈)와 사랑의 감정을 싹틔워나간다. 성선설에 기반을 둔 듯 지나치게 결백한 로맨스가 약간 불편해올 무렵, 는 또 다른 창을 연다. 이전 집주인이 놓고 간 컴퓨터에서 보내지 못한 이메일을 발견한 영미는, 오랜 짝사랑을 고백조차 하지 못하고 죽어가는 집주인의 사연에 감동받는다. 이제 영미는 라디오 방송을 통해 그 사연을 누군지도 모르는 대상에게 전달하기로 마음먹는다.
는 두개의 작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다. 하나는 이메일 속 주인공들의 정체, 다른 하나는 키다리 아저씨의 정체다. 이메일 속 주인공들은 카메오 출연자들을 통해 또 다른 액자식 구조로 등장하고, 두개의 액자는 극의 마지막에 비밀을 열어젖히며 맞물린다. 그러나 흥미로운 구성을 지닌 각본은 두개의 액자를 게으르게 나열하는 연출에 의해 갈지자걸음을 간다. “여백이 많은 영화이니 관객의 감성으로 이를 채워주기 바란다”던 감독의 말과 달리, 영화는 로맨스와 미스터리, 조연들의 상투적인 코미디가 느슨하게 들어차 있어 여백을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다.
영미는 곰인형과 대화하는 유아기적 행태를 보이면서, 폴 오스터의 책에서 가져온 인용구를 소녀처럼 읊조린다. 여성의 참정권도 없던 시절을 살았던 J. 웹스터의 강하고 독립적인 소녀 ‘주디’로부터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왜 20대의 프로 방송작가는 이름도 모르는 후원자가 보내준 곰인형을 안고 소녀처럼 미소짓고 있을까. 영화 속 대사처럼, 는 ‘첫눈이 올 때까지 봉숭아 꽃물이 지워지지 않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 그러나 그 순결한 믿음에 설득당하기란 그리 수월치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