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마무리한 송일곤 감독은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우도로 달려갔다. 의 남자주인공 현성처럼. 은 자연을 자연답게 보여주는 흔치 않은 한국영화다. 이 영화에서 우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천변만화하는 날씨와 함께 교감하는 남녀의 심리와 맞물리는 또 다른 주인공이다. 80%를 우도에서 촬영한 를 이은 은 100% 우도산 영화. 먼저 우도를 가는 길은 제주도라는 섬에서 비롯된다. 평소에는 육지로 이어지지만 물이 차오르면 섬 속의 섬으로 변하는 비양도의 모습도 이 작품의 공간적 구성이 배경이 아닌 심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한다. 정현종의 시구를 빌리자면 영화 에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가 아닌 섬과 섬 사이를 사람이 오가는 광경이 펼쳐진다.
10년 전 첫사랑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우도를 찾은 현성(장현성). 그녀와의 기억을 더듬으며 섬 곳곳을 거니는 현성의 눈에 모텔을 지키는 씩씩하고 밝은 섬처녀 소연(이소연)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항구에서 멀뚱거리던 현성을 오토바이로 픽업하면서 시작된 소연의 업무는 식사 제공, 차가운 생맥주, 화장실의 전구 고치기로 이어진다. 이후 그들의 이야기는 공작 키우기, 모닥불 피우기, 탱고, 불꽃놀이, 진실게임, 피아노 선물하기 등 일상적인 남녀상열지사로 옮아간다. 사무실로부터 시나리오를 독촉받는 통화 중에 “제주도 날씨랑 여기는 또 다르죠?”라고 거짓말하는 현성의 모습은 밉지 않다. 차라리 사랑스럽다. 거기에는 떠나야 할 자의 조급함보다는 일상을 떠난 자의 여유로움이 배어나온다. 급할수록 천천히 상대를 바라보는 현성의 이러한 태도나 영화의 평화로운 속도는 대체로 자극적이고 코미디 코드가 강한 요즘 로맨스물과는 정반대편에 서 있다.
에서 첫사랑을 기다리는 기대와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설렘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일상에서 만남과 기다림의 경계가 분명치 않듯이. 은 ‘10년 전의 그녀가 올까?’라는 명제에 집중하기보다는 ‘그저 기다릴 뿐’이라는 느긋함에 귀를 기울인다. 은 멜로물이지만 관습적으로 투닥거리고 사랑을 고백하기를 거절한다. 현성과 소연은 서로에게 조용히 읊조리고 원하는 만큼 조심스럽게 다가설 따름이다. 마치 아무 말 없이 낚시를 하면서 기약없이 떠난 아내를 기다리는 소연의 삼촌(조성하)처럼. 은 섣불리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처음 만난 이성에게 편지를 쓰듯 차근차근 질문을 던지는 멜로드라마다. 스크린의 풍광을 보노라면 ‘그 섬’에 가고 싶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