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제작비는 늘고 관객 수는 줄었다. 12월19일치 <뉴욕타임스>가 결산한 2004년 할리우드 박스오피스의 요약이다. 박스오피스 집계회사인 이그지비터 릴레이션에 따르면, 미국 내 박스오피스 수입은 지난해의 92억7천만달러를 넘어선 94억달러에 육박한다. 그러나 3.85%의 관람료 인상률을 고려하면 실질 관객 수는 2.25% 줄어든 셈. 3.8% 관객 감소를 경험한 2003년에 이어 2년째 감소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올해의 관객 감소가 더욱 뼈아픈 까닭을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화씨 9/11>의 놀라운 선전에서 찾았다. 애초 흥행 카드로 간주되지 않았고 독립 배급사를 통해 배급된 두편이 거둬들인 5억달러에 달하는 수입을 올해 박스오피스에서 제하고 계산해보면, 스튜디오들은 더욱 우울해야 마땅하다는 뜻이다. 특히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전혀 영화를 보지 않았던 계층을 극장으로 유인하며 통산 국내흥행 3위(3억7030만달러)에 올랐다.
반면 스튜디오들이 총력을 기울인 블록버스터의 평균 순제작비는 1억4천만달러선을 넘어섰다. 올해 몸값을 한 블록버스터는 대부분 속편. 2004년의 흥행 챔피언인 <슈렉2>는 북미에서 4억4100만달러를 벌었고 2위는 3억7400만달러 수입을 올린 <스파이더 맨2>, 4위는 2억5천만달러의 <해리 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가 차지했다. 반면 블록버스터 이름값을 못한 영화는 워너의 <캣우먼>, 디즈니의 <히달고>와 <킹 아더>, 유니버설의 <리딕> 그리고 첫 3주간 3300만달러 수입에 그친 <알렉산더> 등이다. 스튜디오별 북미시장 점유율은 소니가 13억달러로 1위, 워너가 11억달러로 2위를 바라보고 있다.
엄밀히 수익률로 따지자면 2004년의 승자는 <폴리와 함께> <그러지> <피구의 제왕> 등 중·저예산 코미디와 호러다. 그러므로 올해 대차대조표가 제작자들로 하여금 거대 예산 서사극, 특수효과로 중무장한 블록버스터의 가능성을 재고하게 만들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하다. 그러나 스튜디오 간부의 입장은 다르다. 아무리 저예산영화가 짭짤해도 배급사로서는, 폭넓은 관객을 휘어잡을 대작과 배급 경쟁에 내세울 기둥영화가 필요하다는 것. 매머드급 블록버스터의 제작을 부추기는 또 다른 변수는 스튜디오 총수입에서 나날이 비중을 늘려가고 있는 DVD 시장과 해외 박스오피스다. <CNN 머니>는 <알렉산더>나 <반 헬싱>처럼 미국 내 흥행에서 타격을 입은 블록버스터 여럿이 DVD와 해외수입에 의해 구제됐다고 지적했다.
2004년 할리우드의 DVD 판매수입은 2003년에 비해 24% 증가한 146억달러에 달하며, 제작사가 절반을 갖는 극장 흥행수입과 달리 DVD 수입의 제작사 지분은 80%로 알려져 있다. 한편 워너의 배급 담당 대표 댄 펠먼은 “이미 성숙할 만큼 성숙한 미국시장과 달리 국제시장은 아직 여지가 있다”는 말로 해외 박스오피스의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평가했다. <CNN 머니>와 인터뷰에서 “이제는 영화로 돈을 잃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힌 <DVD 익스클루시브> 스콧 헤트릭 편집장의 말은 과장이라고 해도, DVD 컬렉터들과 해외 박스오피스가 이제 위험할 만큼 덩치가 불어난 블록버스터의 안전그물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김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