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감독의 새 영화 <녹색의자>가 조용히 완성됐다. 영화는 성인 여성과 미성년 고등학생의 역원조교제에 관한 기사에서 소재를 얻어 만들게 된 것이다. “예산? 7억원 정도 들어갔죠. 거품 많이 들어간 요즘 영화에 비교하면 적지만, 내 영화치곤 많이 들어간 거예요.” “저예산 영화제작 방식보다는 합리적인 영화제작 방식”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강조하는 박철수 감독답게 내실있는 영화 한편을 또 하나 만들어낸 셈이다. <녹색의자>는 2000년에 만든 디지털영화 <봉자> 이후 거의 4년 만이다. 그동안 몇 가지 일들이 있었다. 박철수필름의 이름으로 임종재 감독의 <스물넷>을 제작했고, 박철수 아카데미에서는 졸업생도 배출했다. 비록 지금까지는 발이 묶인 형국이 됐지만 감독 위주의 창작 프로젝트를 위해 발족했던 뉴 시네마 네트워크(NCN: New Cinema Network)는 이제 곧 다시 운신의 폭을 넓힐 것이라고 한다. 박철수 아카데미의 경우는 “내년에 목원대에 재단이 넘어가지만, 돈벌이하려고 했던 게 아니니까 괜찮다. 그동안 사실 영화 만드는 것에 소홀했는데, 이제 영화 만들게 됐으니까 홀가분하다”고 말한다. 근래에 대구 한의대 디지털 콘텐츠 객원교수를 수락하면서 덜고자 했던 교육자의 짐은 여전히 남아 있게 된 셈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그곳에서 투자받아 <동의보감>도 만들 예정이다. 신작 <녹색의자>에서 현재 비축된 프로젝트들까지 이야기는 오고갔다.
-뉴 시네마 네트워크(NCN)는 어떻게 됐나.
-사실 그동안은 시간이 걸려서 좀 연기됐다. 이제 개수조정위원회로 넘어갔으니까 조만간 정부에서 얼마라도 돈이 나올 테고 그걸 갖고 출범할 거다. 부득이하게 감독 인적구성을 재편해야 하고, 전반적으로 컨셉 공모도 할 생각이다. 상업적인 시각으로 한국영화가 풍성해진 것에 비해 문화적으로는 부족하다는 인식에서 출발한 프로젝트다. 그런 의미에서 기성, 신인 할 것 없이 새로운 영화의 밭이 하나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말들도 좀 있었지만, 내 의중을 이해해준 사람도 많았다.
-오랜만에 영화를 다시 만들어 새로운 각오일 것 같다.
-도태시키기, 그러니까 환경의 밀어내기가 있다. 대체로 그렇지만, 영화쪽이 좀더 심각하다. 영화 한두편 만들면 중견으로 빠지는데, 실제로 문화적 깊이를 향유하고 공유하려면 20대 감독들과 70∼80대 감독들이 같이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40대 중반 정도 되면 서서히 도태되거나 중견 소리를 듣는다. 이런 것이 안타까웠다. 나는 내가 올드패션 감독으로 밀려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가 나보고 왜 이렇게 젊어졌냐는 소리 하면 별로 듣기 좋지 않다. 성찰하는 눈이 생겨야 좋은 영화를 만들 것 같은데, 지금부터 그런 성찰이 조합을 이루면 괜찮은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제 뭐가 좋은 영화인지 좀 정리가 돼가는 것도 같고. 나보고 ‘재기’ 어쩌고 하는데 잠시 영화 만들기에 소홀하거나 침묵하고 있었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좋게 표현하면 내공을 좀 쌓았다고 할 수 있다.
-<녹색의자>를 만들게 된 동기는.
-나는 투자사 자본, 정부 자본 두 가지 다 써본 사람이다. 투자사 자본은 역시 상업적으로 눈치를 봐야 하고, 또 계산하는 데 복잡하다. 정부 자본은 때로 실효가 없는 경우가 있다. 5억원 정도 받아 만들어놓고나면 뭐하나? 광고비가 없는데. 나는 영화밭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그런 면에서 이번에는 충무로의 유일한 토착자본을 만나자고 생각했던 거다. 그렇게 만난 게 서울극장의 곽정환 회장이다. 그분도 옛날부터 나하고 영화를 하고 싶어했다. 유부녀가 미성년과 역원조교제한 가십 기사였는데, 이걸 정교하게 접근하지 말고 그냥 ‘섹스’ 코드로 접근해보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서 그들이 감옥을 갔는지보다 감옥을 갔다 나온 이후에 다시 만나면 어떻게 될 것인가, 거기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가장 온화한 방법을 선택한 거다. 이들의 사랑과 섹스를 인정하자는 거였다. 외국영화나 한국영화나 섹스장면을 찍을 때 너무 장난들을 친다. 나는 심리적 무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굉장히 직접적으로 카메라에 갖다댔다. 이번 영화는 호흡도 길게 하고, 유치함의 미학으로 가보자 했던 거다.
-지금 단계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곽정환 회장하고 약간의 마찰이 있긴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한테는 못 주겠다, 감독 네가 한번 해봐라 하고 배급권을 나에게 넘겨준 것에 대해서는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선댄스 공식 경쟁부문에 출품됐다.-버리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아니다. 소수 관객이라도 만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실, 영화제를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는데, 선댄스, 베를린쪽 사람들이 의외로 좋은 반응을 보였다. 선댄스는 변화의지를 가진 젊은 감독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영화제다. 그런 영화제가 나의 변화의지를 인정해준 거다. 선댄스에 나가는 감독 중에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을 거다.
-<녹색의자>는 성인 여자와 미성년 남자에 관한 영화다. 왜 이런 소재를 택했나.
-나이는 13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난다. 그 정도면 결혼도 하지 않나. 단지 미성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됐던 것뿐이다. 그러니까, 비포가 아니라 애프터에 대한 이야기, 굉장히 성실하고 리얼한 섹스를 그려보고 싶었다는 거다. 미성년자하고 섹스 한번 했다고 사회봉사까지 하는데, 사실은 코미디 아닌가? 그런 점에서 마지막 장면에 남녀 주인공의 주위 사람을 다 불러모아보고 싶었다. 이 지구상의 남녀 중에 정신적인 간통을 안 한 사람이 얼마나 있겠나? 그럴 때마다 늘 궁금했던 건 이 간통한 여자의 남편의 말과 표정이 듣고 보고 싶었고, 간통한 딸을 둔 엄마의 얼굴을 보고 말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이 여자가 만났던 사람들을 다 모아서 남자애가 성인이 되는 날 가상 연극적인 공간으로 몰아가본 것이다.
-<녹색의자>뿐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도 많았을 것 같다. 중도하차한 성철 스님 같은.
-결국 성철 스님은 교리 충돌문제 때문에 완성을 안 했다. 교리는 수단일 뿐이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데도 불구하고 문도들하고 충돌이 있었다. 촬영은 80∼90% 했고, 지금은 여유있게 편집도 같이 하고 있다. 왜, 배우와 함께 나이먹으면서 20∼30년 걸려 찍는 영화들도 있지 않나. 지금은 서둘러 완성 안 한 걸 잘했다는 생각을 한다. 한편으론, 한국 불교를 문화상품화하는 것이 어마어마한 문화시장이 될 거라는 생각도 한다. 그런 점에서 10여년 전부터 준비해오던 에밀레 종의 불교 설화를 재해석하는 <아밀라>도 어느 정도 구체화됐다. 또, 우리나라의 페미니즘을 좀 새롭게 정리한다는 의의를 갖고 있는 <주부가요열창>이란 것도 있다. 그리고, 옛날 방송사 PD할 때부터 몸 담론에 관심이 많았다. 동양적 이기철학적 사고로 몸 연구를 많이 했는데, 좀더 쉽게 <산부인과> 컨셉으로 성형이란 가십들을 모아서 <성형외과>를 한번 해보자고 준비하는 것도 있다. 주찬옥 작가가 시나리오 쓰는데 바로 나올 것 같다. 이른바 2004년 대한민국 세시풍속에 관한 영화가 될 거다. 요즘 갑자기 생긴 것도 있다. 얼마 전에 왜 우리나라 30대 남자가 시장자본주의체제에 배겨나질 못해서 밀입북을 하고 싶어하다가 겨우 북으로 들어갔는데 얼마 안 돼 다시 강제추방당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이게 21세기 마지막 코미디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내 인생 전체를 걸고 만들 영화는 ‘베트남 영화’다. 이 시기는 나에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때 우리는 ‘머슴군인’으로 팔려갔다. 미국이 만들어낸 베트남 영화들은 모두 거짓말이다. 실상을 바로 알려야 한다. 또, 한국의 현대사와 경제사에서 베트남은 6·25 이상으로 중요하다. 베트남전은 우리나라 산업화나 민주화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여 할 문제다. 다만 ‘전장’영화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내가 영화감독이 된 이상 꼭 만들어야 할 작품이다. 어쨌거나, 내년에는 좀 많이 만들어볼 생각한다.
-대구 한의대 디지털 콘텐츠 학부 객원교수를 맡게 됐다. <동의보감> 제작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예전에 미국 메이저급 영화사에서 연락와서 <동의보감>을 영화화하자고 난리났었다. 유의태를 앤서니 홉킨스 시키고, 허준을 브래드 피트 시키자면서. 그것 때문에 앤서니 홉킨스 만나서 사인까지 받았었다. 앤서니 홉킨스를 언제 오게 하느냐까지 진행하다가 중단됐다. 이런 정황을 대구 한의대 황병태 총장이 다 알고 있다. 그래서 칼리지에서 유니버시티로 바뀌면서 대구 한의대를 세계적인 학교로 만들겠다는 취지하에 영화를 만들자고 하면서 나를 부른 거다. 15억∼20억원 정도 예산은 결정됐고, 내가 가서 제작위원회 꾸릴 거고,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직접 연출을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