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Skip to contents]
HOME > News & Report > Report > 기획리포트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방문기

전세계 다큐의 대가들이 한자리에

암스테르담에서는 알겠다. 영화에 반한 그 청년이 왜 그토록 비의 리듬에 몰두했는지를. 늦가을과 초겨울 사이, 지난 11월18일부터 28일까지 열린 제17회 암스테르담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IDFA)는 비 속에서 개막돼, 오가는 빗줄기에 젖어 있었다. 빗줄기는 그때의 빗줄기가 아니겠지만, 그때의 거리는 곳곳에 남아 있었다. 요리스 이벤스들이 영화에 관한 토론으로 밤을 지샜다던 살롱들이 영화제가 열리는 광장 주변에서 여전히 손님을 맞고, 푸도프킨의 <어머니> 상영을 당국이 금지하자, 이벤스들이 모여 ‘대책회의’를 했다는 아메리칸 호텔에는 다큐멘터리 마켓, 독스 포 세일이 차려졌다. 여전한 것은 또 있다. 현실을, 현실의 변화를 포착하려던 다큐의 정신이다. ‘변화’는 올 IDFA에서 중요한 표제어였다.

‘벽에 붙은 파리처럼’ 현실로

60년대 미국 다큐멘터리사에서 솟아오른 ‘시네마베리테’(혹은 다이렉트시네마) 감독들이 암스테르담에 나타났다. 존 F. 케네디가 말 그대로 새로운 별로 떠오른 민주당 대통령 후보경선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의 고전 <프라이머리>의 존 드루와 리처드 리콕, 앨 메이슬스와 <티티컷 폴리>로 시네마베리테에 합류한 프레드릭 와이즈먼, 그 흐름의 막내 조앤 처칠이 한 테이블에 앉아 벌인 토론은 그 자체로 진기한 광경이었다. 바다 건너 프랑스에서 누벨바그와 시네마베리테의 주인공들이 그랬듯, 이들은 가벼워진 카메라를 들고 ‘현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조용하게, 관찰자로서. “벽에 붙은 파리처럼”이란 좌우명 아래 <해피 마더스 데이> <돈 룩 백> <세일즈맨> <호스피탈> 등 일련의 작품으로 다큐멘터리사의 한장을 만들어냈다. 파리처럼 대상을 지켜보며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포착하겠다는 그들 카메라의 존재가 정말로 대상을 변화시키지 않았을까? 40년 뒤의 토론장에서도 질문은 되풀이됐다. “<그레이가든>의 인물들이 카메라가 없었어도 그렇게 극적인 행동을 했을까?” 앨 메이슬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 모습이 그대로 그들의 현실이다. 카메라가 대상을 변화시킨다고? 그런 일은 없었다.” 와이즈먼과 드루가 동조했다. 팔순의 리콕이 조용히 끼어든다. “페네베이커가 <크라이시스>를 찍는데, 케네디가 힐끗 카메라를 바라보더라는 거야. 그걸 의식하고 있다는 거지. 그래서 촬영을 하다말고 페네베이커가 소리를 죽이고, 카메라 렌즈를 밑으로 숙였다는군. 사람들이 카메라에 반응하기는 해.”

장편 대상, 삼대의 생생한 삶을 포착한 <달의 형상>

△ <크라이시스><달의 형상>

네덜란드 감독 레오나르드 레텔 헤름리히의 <달의 형상>은 올해의 개막작으로 초반부터 화제의 초점이 되더니, 장편부문 대상 요리스 이벤스상을 받았다. 어머니가 인도네시아 태생인 감독의 카메라는 어머니의 고향에서 만난 한 가족, 어머니와 아들과 손녀딸 삼대의 삶 속에 깊이 스며들었다. 어머니의 원에 따라 이들은 자카르타의 빈민가로 이사하지만 어머니는 결국 적응하지 못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땅 한뼘 없는 고향, 일감을 찾아 이 논 저 논을 떠도는 생활이지만 감독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달의 형상’은 이슬람의 상징. 어머니는 기독교, 아들은 결혼을 위해 개종한 이슬람 교도다. 극영화보다 삶이 생생하게 포착된 것은 차치하고(다큐멘터리니까) 이야기는 밀도있고, 아름답다.

조너선 스탁과 제임스 브라바존의 <라이베리아, 언시빌 워>는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이 망명하기 직전의 라이베리아 내전을 현장취재했다. 반군과 정부군 양쪽에서 촬영을 진행하며 내전의 참상을 포착하는 데 성공해 장편부문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았다. 신인상과 단편상 실버 울프 상은 루마니아의 일레나 스탄술레스크의 <다리>와 안드레이 파브노프의 <게오르기와 나비>에 각각 돌아갔다. 관객은 194편의 영화 가운데 댄 올먼, 사라 프라이스, 트리스 스미스 감독의 <예스멘>에 관객상을 보냈다.

언론 자유 그리고 대안의 미디어

시네마베리테 토론장,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 이후 미국 다큐멘터리들이 극장 진입에 성공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노 감독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마이클 무어는 다큐 감독이 아니라 코멘테이터”라고 리콕이, “이같은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라고 와이즈먼이 답했다. 하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다큐멘터리의 바람은 IDFA를 고무시켰다. “<화씨 9/11>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앨리 덕스 집행위원장은 “올해는 어쨌든 다큐멘터리의 해”라고 불렀다.

△ <다윈의 악몽><끔찍하게 정상적인>

<아웃폭스트> <WMD>(Weapons of Mass Deception: 대량기만무기. 대량살상무기와 이니셜을 같이 한 말유희) <예스멘> <월드 어코딩 투 부시> <대통령 사냥> <콘트롤 룸> 등 지난 미국 대선과정에서 상영된 반부시 다큐멘터리들이 올 영화제의 ‘현실반영’ 부문에 줄줄이 옮겨졌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 역시 이 부문에 초청됐다. 대자본에 장악된 미국 주류언론을 비판한 <WMD>의 대니 셰프터 감독은 “대선에는 졌지만, 그것이 끝은 아니다”라고 미국의 다큐 부흥 현상을 가리켰다. “미국인의 70%가 현재의 미디어를 불신하고 있다. 다큐의 성공은 사람들이 주류언론과 다른 미디어에 목말라하고 있다는 증좌다. 한번 인터넷 사이트 미디어채널(mediachannel.org)에 들어가봐라. 1300개의 미디어 그룹이 현재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예스멘>이나 <다윈의 악몽>처럼 세계무역기구(WTO)와 세계화를 풍자, 비판하는 영화들 역시 대안미디어로서 다큐가 지닌 가능성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다큐의 등장

카메라가 싸졌다. 분쟁과 환경파괴의 현장으로 달려가기에 캠코더는 얼마나 가벼운가. 한편으로 기술의 진화는 사적인, 지극히 사적인 다큐멘터리의 등장을 부추겼다. 칼레스타 데이비스는 25년 전 어린 시절에 당한 성희롱의 상처를 안고 자랐다. 그는 가족의 친구였던 가해자를 찾아가 감춰둔 이야기를 밝히기로 작정한다. <끔찍하게 정상적인>은 그렇게 진행된다. 다큐멘터리는 데이비스가 정신적 상처를 치유해가는 과정이 됐다. 음주와 마약, 폭력으로 얼룩진 청소년기를 보낸 트라비스 클로제의 방황은 아버지의 억압에서 시작됐다.클로제가 이제 아버지가 됐다. 그는 아들에게 자신의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으려면 아버지를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수단으로 카메라를 택한다. <아버지에서 아들로>는 그 결과물이다.

덧붙이는 말

다시 리콕. “빌어먹을 방송사를 기웃거리지 않아도 캠코더만 있으면 영화를 찍을 수 있다. 필름으로는 안 돌아간다.” 그런 방송이 다큐멘터리의 근거지가 될 수도 있었다. 올 IDFA에는 ‘톱 10: 야니 랑브로엑’ 부문이 있었다. 30년 이상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 선정을 담당해온 랑브로엑이 그 작품 가운데 고른 명편을 여기서 선보였다. 이 주옥같은 다큐들을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왔다는 거지!

집행위원장 엘리 덕스 인터뷰

“다큐가 네덜란드 사람의 성향에 맞나 보다”

폐막식이 끝난 다음날, 영화제 본부가 있는 드 발리의 카페는 빈자리가 없었다. 영화제 내내 그랬듯이. 인터뷰를 위해 폐쇄된 프레스센터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인터뷰 도중, <오퍼레이터의 유령>의 여성감독이 이곳까지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런 영화제의 집행위원장이 여성이라서 자랑스럽다”면서 덧붙이는 말. “상영이 끝나서 홀가분하게 영화 좀 보려니, 모두 매진이다. 내년에는 표 구하기가 좀더 쉬워졌으면 좋겠다.” 폐막식 뒤 이틀 동안 포스트 페스티벌이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매표가 문제는 문제”라는 집행위원장 엘리 덕스의 말이 행복하게 들렸다. 극영화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인데 말이다.

요리스 이벤스의 도시라서 이런가.

다큐멘터리는 네덜란드 사람들의 성향에 맞는 영화인 듯싶다. 렘브란트를 봐라.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낭만은 우리 몫이 아닌가보다. 요리스 이벤스 같은 다큐멘터리의 대가가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래서 다큐멘터리영화제를 시작했나.

사실은 젊어서 교육 비디오일을 했는데, 다큐멘터리의 전통이 강한 이 나라 사람들이 다큐멘터리에 관해 잘 모르더라. 그 충격에 영화제를 하기로 했는데, 반응은 차가웠다. 암스테르담 시당국조차 다큐라면 지원이 곤란하다는 거였다. 세명의 여자가 그럼 우리끼리 하지, 하고 시작했다. 상영작이 겨우 40편,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다.

영화제가 관객을 교육한 건가.

그렇게까지야. 교육이라면, 영화제가 문화정책당국의 지원을 받아 8살부터 18살까지 어린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다큐 교육을 한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판별시키는 일부터 시작해 리뷰까지 쓰게 만든다.

스스로 생각하는 이 영화제의 성과라면.

전세계 다큐멘터리가 모여 통로를 찾는 장이 되었다는 것. 올해엔 90여개 페스티벌의 프로그래머나 디렉터들이 참가했다. 지지난해 요리스 이벤스상 수상작 <체크포인트>의 경우 세계 67개국 페스티벌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되거나 팔렸다. 올 국제 게스트는 2300명으로 로테르담영화제보다 많았다.

매스터 클래스나 디베이트, 토크쇼 등 토론이 참 왕성했는데.

다큐멘터리는 그 자체로서 이미 논쟁이고, 토론은 그 외연이자 목적이다. 세상에는 서로 다른 신념과 종교와 정치적 입장이 엄연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 생각들을 암스테르담에 모두 불러내 대화를 꾀한다. 나치즘과 근본주의까지.

나치즘이라고 말했나.

그렇다. 올해 상영된 <아라키멘터리> 같은 포르노그라피까지. 그 생각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을 통해 공통점을 찾아나가자는 것이다. 지난 1998년 얀 프리만 기금을 만들어 개발도상국 다큐멘터리를 지원하는 것도 국가통제만 있고 지원은 없는 나라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다. 그렇게 지원받아 제작된 영화 가운데 27편이 올해 영화제에서 상영됐다.

한국영화의 소개는 부진하다 싶은데.

아, 한국 다큐멘터리의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부산영화제에도 가봤는데, 우리 마감이 끝난 뒤라서 다큐를 가져올 수가 없었다. 돌아가거든 많은 영화와 정보들을 좀 보내달라고 한국 감독들에게 말해주지 않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