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영웅>은 언뜻 보기에도 김성수 감독의 <무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막을 건너는 무사들과 한 여성의 모습이나 요새에서 공성전을 벌이는 장면 등은 <무사>와 너무 흡사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천지영웅>은 <무사>가 갖지 못했던 무언가를 갖추고 있다. 그것은 확실한 캐릭터와 탄탄한 드라마다. 장대한 스케일에 비해 액션장면은 다소 맥이 빠지는 게 사실이지만(장원이 장검을 휘두르는 모습을 생각해보라), 강한 남자 캐릭터들의 호흡만큼은 생생하게 살아 있어 전성기의 홍콩누아르를 보는 듯하다. 황제의 대리자인 라이시는 ‘범법자’인 이 부관을 처단해야 마땅하지만,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수’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그를 살려둔다. 경전을 싣고 가는 행렬이 수도에 도착할 때까지만 그를 살려둔다는 그의 주장은 사실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내색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라이시는 이 부관을 동지로 느끼고 그와 운명을 함께하려 한다. 팽팽한 두 남자 사이의 긴장과 소통이라는 끈을 놓치지 않은 채 영화는 다양한 캐릭터들을 선보인다. 스필버그 감독의 <레이더스>에서 착안한 것이 분명한 마지막 장면만 빼놓는다면, <천지영웅>은 남성의 로망을 한껏 품고 있는 괜찮은 캐릭터 영화가 될 수 있었다. <막스의 산> <올빼미의 성> <바람의 검 신선조> 등을 통해 낯이 익은 나카이 기이치와 자신이 연출한 <귀신이 온다>에서 주연을 맡았던 장원의 연기가 돋보이며, <포타쌍등> <일광협곡> 등을 만들었으며 <열화전차> 등에 출연한 하평 감독의 연출력 또한 눈여겨볼 만하다.
광활한 사막 위에 펼쳐지는 비장한 남성 액션, <천지영웅>
글
문석
2004-12-07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비장한 남성 액션. 홍콩누아르 또는 서부영화의 고비사막 버전.
일본에서 당나라로 유학차 왔다 25년 동안 머물고 있는 라이시(나카이 기이치)는 왕명을 받아 사막 한 벌판에서 10년째 한 인물을 쫓고 있다. 그의 표적은 터키 포로들을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에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군인이 할 짓이 아니다”라며 거역하고 탈영한 이 부관(장원). 그는 사막의 대상(隊商)들을 호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마침내 라이시는 사막 저편으로부터 당의 수도로 불교 경전을 옮기는 행렬을 보호하고 있는 이 부관을 찾아내지만, 산적과 터키족 등이 득시글거리는 사막을 건널 때까지만 그를 살려주기로 한다. 결국 친구의 딸인 원주(조미)를 수도로 호위해야 하는 라이시 또한 이들 대열에 합류한다. 하지만 이들이 옮기고 있는 수수께끼의 ‘보물’을 빼앗기 위해 안 두령이 이끄는 산적 무리가 이들을 공격하고, 라이시와 이 부관, 그리고 이 부관이 예전에 거느렸던 무사들이 합세해 강력하게 맞서 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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