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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멋진 뒷모습을 보이면 떠날 서부라도 있어야‥

어릴 때 갖고 보고 놀았던 건 평생 따라다니는 것같다. 나는 어릴 때 서부극, 그중에서도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고 자랐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반 클리프, 프랑코 네로 같이 냉소적이고 냉정한 총잡이들이 좋았던 건 총 잘 쏘고 말과 행동에 군더더기가 없는 데 더해 마지막에 쿨하게 혼자 떠났기 때문이었다. 황량한 벌판으로 홀로 떠나는 그 뒷 모습! 멋있지 않은가. 그래도 어릴 때 그게 그토록 멋있었던 건 뭘까. 어쩌면 나는 평생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동경하며 살지 모른다는 예감 아니었을까.

어른이 돼 마카로니 웨스턴보다 빨리 나왔던 존 포드 감독의 56년 영화 <수색자>(사진)를 봤다. 가족을 납치해 간 샤이언족을 찾아 복수하러 수년을 헤매고 돌아온 존 웨인은 백인 마을에 정착하지 못하고 다시 떠난다. 그때 알았다. 왜 서부의 총잡이들이 황야로 떠나는지. 폼 잡으려고 떠난 게 아니라 그들의 시대가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존 웨인이 돌아왔을 때 마을사람들은 샤이언족이나 전쟁같은 것은 잊고 새로운 질서 아래 번창을 꿈꾸고 있었다. 구부정한 등을 보이며 비틀대듯 걸어가는 존 웨인의 뒷모습은 멋있기보다 처연했다.

구제금융 시대를 맞은 98년에 샘 패킨파 감독의 73년 영화 <관계의 종말>을 보고 서부 총잡이들의 중요한 이면을 알게 됐다. 이 영화의 원제는 ‘팻 개럿 앤드 빌리 더 키드’이다. 빌리 더 키드는 서부극에 악당으로 자주 나왔던 실존 인물이고, 팻 개럿은 그를 붙잡은 보안관이다. 영화에서 빌리 더 키드는 악당이 아니다. 서부 개척 시대에 서부의 질서를 잡은 건 목장 주인에게 고용된 총잡이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연방정부가 강해지면서 철도와 은행을 앞세워 서부에 새 질서를 잡는다. 연방정부가 임명한 보안관이 옛 서부의 총잡이들을 무법자로 몰아 소탕한다. 한 마을의 친구로 자라서, 팻 개럿은 연방정부로 찾아가 보안관으로 임명됐고 빌리 더 키드는 그 마을의 총잡이로 남았을 뿐이다.

누가, 어느 질서가 더 옳은지를 따지는 건 무망하다. 이 영화에선 새 질서가 법에 더 충실한 만큼 더 교활하게 그려진다. 새 질서에 빨리 적응한 팻 개럿보다, 어떤 질서든 결국 그 본질이 같음을 알아채고 그 자리에 남은 빌리 더 키드에게 신뢰가 가는 건 낭만일까. 구제금융과 함께 새 질서가 몰아닥치던 그때 한 모임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잘 사는 동네 아이들이 못 사는 동네에 와서는 축구 대신 골프치자고 하는 거지. 룰이야 골프가 더 깨끗하지.” 한국에서 ‘축구하던’ 이들에겐 떠날 서부가 없었다.

지금의 불경기가 구제금융 시대에 비유되곤 한다. 내년엔 더 나빠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 와중에 마카로니 웨스턴의 효시인 <황야의 무법자>를 만든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68년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의 DVD가 국내 처음 출시됐다. 주인공 찰스 브론슨은 약속을 지켰다. 철도 회사 사장에게 빌붙어 일확천금을 꿈꾸던 악당 헨리 폰다를 처치한 뒤, 철도 공사로 번창하는 마을을 등지고 황야로 떠난다. 문득 올해 초 개봉했던 홍콩 누아르 <무간도 3: 종극무간>이 떠올랐다. 떠나면 서부극이고, 떠날 서부가 없어서 개기다가 죽으면 누아르다. 80년대말 주윤발은 줄기차게 죽었다. 그런데 <무간도 3>의 유덕화는 죽지도 못하고 반병신이 돼 그곳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