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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하전영의 대표 주자 - 지아장커
사진 오계옥이영진 2004-11-19

“가짜를 믿는 중국인들에게서 슬픔을 느꼈다”

올해 베니스영화제에서 당신을 따라다니던 중국 언론들을 볼 수 있었다. 지하전영의 존재를 부정하던 중국이 이젠 달라졌구나 싶었는데.

2년 전에 <임소요>를 들고 칸에 갔을 때는 중국 언론들이 나서서 공격적으로 기사를 썼다. 기자회견 때는 <CCTV> 기자가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을 만큼 중국이 부유해졌다며 내 영화가 거짓이라고 해서, 가슴에 손얹고 누가 거짓말하는지 생각해보라면서 싸우기까지 했다. 그때에 비하면 적의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 정부 아래 있는 언론매체들까지 왔으니까.

<세계>는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

<플랫폼>을 찍고 나서였던가. 고향의 사촌동생이 베이징 생활을 부러워하며 그곳 생활이 어떤지 물은 적이 있는데 말로는 표현 못하겠더라. 다만 베이징에 관한 영화를 언젠가 찍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었다. 그러다 <플랫폼> <임소요>에 나오는 여배우 자오타오에게서 세계공원에 관한 이야길 들었고, 구체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세계공원은 세계 각국의 유명한 건축물들을 모조해서 한데 모아놓은 놀이공원인데 자오타오는 1년간 심천의 세계공원에서 실제로 일한 적 있었다. 베이징에도 세계공원이 있었고 그 공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겠다 싶었다.

그 공간을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나.

중국의 빠른 현대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세계공원은 가짜들로 채워져 있다. 중국 사람들은 위조와 허상의 세계공원을 통해서 바깥을 인식한다. 거기에서 비탄을 느꼈다. 영화 속에서 세계공원은 극도의 화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내면 정서는 고독, 상실, 분노다. 비현실적인 공간을 넘나들며 굉장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실제 인물들의 내면에는 중국 현실이 있다. 그런 대비가 굉장히 드라마틱했다.

주인공인 타오와 타이쉥은 세계공원의 쇼걸과 경비원으로 살아간다. 이들의 직업을 드러내고 싶어하는 쇼걸과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경비원으로, 그리고 두 사람을 연인으로 설정한 의도가 있을 것 같은데.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권력과 자유를 각각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를 완성했음에도 권력과 자유가 상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권력과 자유는 서로 상처를 주게 마련이고, 양자가 공존하는 현실이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을 뿐이다.

세계공원이 보장해줄 것 같은 젊은이들의 행복한 삶은 후반부에 모래성처럼 허물어진다. 연인 타이쉥과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타오는 서서히 혼란으로 빠져들고 타오의 친구인 러시아 무희는 무대를 떠나 몸을 파는 지경에 이르고 타오쉥의 후배는 세계공원을 짓다 죽음과 직면한다. 인물들이 파국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첫 장면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타오가 물집잡힌 발목에 붙이려고 밴드를 찾는 장면 말인가. 의도한 거다. 밴드를 붙이는 것만으로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세계>

쇼걸로 나오는 여주인공 자오타오를 제외하곤 이번에도 비전문 배우들을 기용했다.

경비원 역의 타이쉥은 베이징전영학원 연기과를 졸업한 학생이었다. 자신을 배우로 써주는 사람이 없다면서 해적판 DVD나 팔아야겠다는 푸념을 전해 들었고, 그 정도 속이야기까지 털어놓는 정직한 사람이면 타오쉥 역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러시아 무희의 경우는 실제로 심천의 세계공원에서 쇼걸로 일하는 이였다. 그때 기타 치는 모습이 너무 슬퍼 보여서 출연 제의를 했다. 비자가 이틀밖에 안 남아서 러시아로 돌아가야 했고, 나중에 다시 초청해서 촬영할 수 있었다.

중국 현실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인 시선은 여전하지만, <세계>의 형식은 전작과 구별된다. 카메라 움직임뿐 아니라 다싱(베이징 근교)의 파리, 울란바토르의 밤, 아름다운 성, 도쿄 스토리 등으로 내러티브를 단락화하고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것까지.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과 느낌으로 이 시대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전엔 객관적인 시선에서 영화를 찍었다면, 이번엔 인물과의 거리를 좁혔고, 카메라도 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을 따라가고, 음악의 경우도 주관적인 느낌을 주문했다. 배경 자체가 가상적인 공간이고, 보는 이들도 영화 속 인물들과 같은 감정을 갖길 바랐다. 유럽 관객이 곤혹스러워한 내러티브는 현재 중국의 복합적인 상황을 묘사하는 데 적당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 하나의 인물, 하나의 상황에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인터넷 서핑하듯이 다층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이번에도 유릭와이가 촬영을 맡나.

미뤄둔 70년대 말 갱스터 이야길 해야겠지. 지금 시나리오 수정 중이고 이르면 내년 4월쯤에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유릭와이는 형제 이상이다. 내 내면을 읽는 이들은 더 있지만, 영상으로 그걸 표현해 줄 수 있는 사람은 현재까지 그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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