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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망 vs 초월, <슈퍼스타 감사용> vs <꽃피는 봄이 오면>

패배자 영화 두편의 비교 <슈퍼스타 감사용> vs <꽃피는 봄이 오면>

찬바람 씽씽 부는 불경기의 한복판이라지만, 하필 수확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는 추석 대목에 패배자의 영화 두편이 나란히 경쟁을 벌이는 게 묘하다. <슈퍼스타 감사용>과 <꽃피는 봄이 오면>은 잘난 자들의 승리담과 담쌓은 이야기다. 낙오자의 정서로 현실의 낙오자들을 위무하겠다고 다가온다. 그렇지만 실화를 딛고 태어난 두 패배자는 아주 다른 캐릭터이고 그래서 두 영화는 먼 거리에 서 있다.

감사용(이범수)은 수업시간에 만화책을 훔쳐보듯 직장에서 야구 교본을 몰래 보며 투구법을 익힌다. 직업 야구인을 꿈꾸던 그가 사내 스피커로 호명되며 프로야구인으로 선발됐음을 대대적으로 축하받았으니 만족스러울 일이다. 그렇지만 감사용의 욕망은 그보다 좀더 원대하다. 그래서 그는 폼나는 유니폼의 위세와 전용버스의 안락함을 즐기기보다 컴컴한 밤중의 폐허더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공을 던지고 또 던진다. 선발투수가 되어 스타가 되고 싶으니까. 아마 그의 진짜 목표는 메이저리그에 닿아 있을 것이다. 이건 감사용이 아니라 그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다. 꿈이라는 이름의 욕망은 일종의 변신합체로봇이니까. <슈퍼스타…>에서 감사용의 임무는 당신이 아무리 기를 쓰고 달려들지라도 그 노력이 승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라는 리얼리티를 재확인시켜 위로하는 것이다(이 리얼리티의 씁쓸한 맛을 중탕시키기 위해서 그토록 상투적인 가족애와 로맨스를 보완재로 가져오는 순간 이 영화는 그나마 갖고 있던 패배의 순도를 확 떨어뜨리고 만다). <슈퍼스타…>의 감사용은 승리의 욕망으로 똘똘 뭉쳐 솟구쳐오르려는 에너지의 쓸쓸한 추락을 담고 있을 뿐이다. 패배의 쾌감이나 미학 따위와는 애초부터 거리가 먼 인물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대의 최고 스타 박철순을 상대로 그렇게 멋진 경기를 보여주고도 경기장에 홀로 남아 그 선한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고 포효하지는 않을 것이다. <슈퍼스타…>는 승리를 다른 방식으로 꿈꾸는 영화다.

반면, <꽃피는 봄이 오면>의 현우(최민식)는 뒤처지는 자의 처지를 스스로 즐기는, 아주 묘한 캐릭터다. 오디션에 임하는 그의 자세는 아무래도 이상하다. 지난해에도 응시했었건만 꼭 붙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그의 연주에도, 그의 표정에도 없다. 오디션장에서의 연주는 탄광촌의 칙칙한 카바레에서 불어젖히는 그것만큼의 성의도 없다. 현우의 솟아오르려는 욕망은 자기가 쓴 이름없는 곡을 완성했을 때 멈춰버린 것 같다. 그 곡은 현우가 유일하게 갖는 애착의 대상이다. 그가 개새끼라고 욕하며 화내는 건 둘도없는 친구가 카바레에서 자기 곡을 욕보였다고 생각했을 때뿐이다. 또, 그는 초라한 관악부 교사이긴 하나 모처럼 가진 직업다운 직업을 빛낼 요량이 없다. 이 영화와 현우는 입상을 하지 못하면 관악부가 해산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관악부에 대한 동료 교사의 비웃음을 긴장과 갈등의 에너지로 삼지 않는다. 우승 운운에 픽 웃어버리거나 대회의 연주장면을 보여주고도 입상을 했는지 어쨌는지 도통 알려줄 생각이 없다. 현우의 ‘증상’은 연애에서 특히 심하다. 현우는 탄광촌 약사와의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는다. 처음에 관계를 열기 위해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지만 그뿐이다. 적당히 다가서고는 적당히 멀리하며 관계의 미묘함을 즐길 뿐이다(그래서 자기가 떠나보내려던 옛 연인의 집 앞으로 되돌아가는 건 아주 이상한 장면이 되고 만다).

현우의 일거수일투족은 낙오자의 이상적 판타지 같지만 뒤처짐을 미완성의 미학으로 치환해 즐기는 신기묘법이다. 또 다른 패배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실패한 뮤지션 이얼은 현우 같지 않았다. 이얼의 얼굴은 늘 각박하기만 했다. 현우의 얼굴에선 피로감보다 여유가 더 자주 배회한다. 어떻게 그 도에 이르렀는지 알려주지는 않지만 현우의 작태야말로 인생에 한 가닥 도움되는 조언이다. 삶은 어차피 미완성이니까. <꽃피는…>처럼 주인공이 패배와 낙오를 만끽하는 영화는 당분간 만나기 힘들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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