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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허우 샤오시엔의 부산 강연, 그 뜨거운 현장
2004-10-11

"젊은이여, 그대의 생각을 영화라는 돌 위에 새겨라"

-거장 허우 샤오시엔의 마스터클래스, 그 뜨거운 현장의 기록

11일 오후 1시30분 메가박스 10관. 거장이라는 말로도 그 무게감을 설명할 길이 없는 대만 허우 샤오시엔 감독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 사이에는 긴장감마저 감돌고 있었다. 객석 사이사이에서 그에 대한 각자의 오랜 애정을 고백하는 소곤거림이 감지될 뿐이었다. 허우 샤오시엔이 진행을 맡은 정성일 영화평론가와 함께 등장한 것은 1시40분. 5분 동안의 포토타임 동안 그는 “이런 멀티플렉스가 순수하게 한국자본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놀랍다. 할리우드로부터 벗어난 독자적인 시스템이 인상적”이라는 소감을 들려줬고, 정성일 평론가는 정확히 5분 동안 1980년 <귀여운 소녀>로 데뷔해서 2004년 <카페 뤼미에르>로 부산영화제를 찾기까지 그의 16편에 달하는 필모그래피를 간추려냈다. 이는 직접 감독의 육성을 듣고 싶어하는 관객들을 위한 배려였을 것이다.

2시간 동안 진행된 마스터클래스의 주제는 '나의 영화, 나의 인생'. “사실 내 영화와 나의 인생은 완전히 합치된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단 한 순간도 영화를 떠나본 적이 없었던” 그의 인생은 많은 부분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의 영화들과 교집합을 그리고 있었다. 일단 1980년 <귀여운 소녀>로 데뷔하기 전까지의 “영화를 준비했던 시기”에 대한 담담한 회고를 시작했고, 관객들은 간간히 그의 솔직한 고백에 웃음으로 답했다. 중국에서 대만으로 건너와 남쪽 지역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 이유부터 집 근처에서 열리던 연극대회, 너무 빨리 읽어버려 신간이 나올 때까지 서점앞에서 기다리기까지 했다는 무협소설들, 어른들을 통해 표를 구입하거나 담을 넘고 가짜 표를 만들어 봤던 영화들, 칼을 비롯한 진짜 무기들을 가지고 벌였던 동네 아이들과의 싸움에 대한 기억들은 이전의 그 어떤 인터뷰에서 접한 적이 없었던 생생한 사실들이었다.

이어서 성장에 관한 4편의 연작과 대만근대사 3부작을 지나 현대물을 만들 것을 결심하기까지, 그리고 <호남호녀>부터 이어졌던 형식에 대한 오랜 탐구를 <까페 뤼미에르>에서 끝마치기로 결심한 것에 대해 설명한 그는, “한바퀴를 돌아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라고. 30분 정도 진행된 강연은 “직접 말로 설명할 수는 없어도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것을 영화는 표현할 수 있다. 물 위의 빙산을 통해 수면 밑에 감춰진 거대한 덩어리를 표현하는 것이 영화”라는 말로 30분 간의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후 1시간30분 동안 이루어진 질의응답. 동시통역을 거쳤음에도 1분1초가 아쉬운 그 시간은 떨리는 질문을 풀어놓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었다. 첫 질문. 오즈 야스지로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영화 <까페 뤼미에르>와 관련, 정성일 평론가는 그간 허우 샤오시엔과 끊임없이 연관성이 언급된 바 있던 오즈 야스지로가 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우리는 단지 영화의 정신이 같을 뿐이다. 오즈는 평생을 필름량까지 체크해서 공개하는 꽉 짜인 스튜디오 시스템 속에서 스타 배우들과 함께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그러한 상황에 가장 적절한 자기만의 형식을 발견한 뒤에는 더이상 형식을 고민하지 않았다. 나는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영화를 만들지도 않았고, 내 영화에는 스타도 없었다.” 이후 앞으로의 계획과 연기 연출, 롱테이크 등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감독은 매번 구체적인 예시를 들어 사려깊은 대답을 들려줬다. 이제 대만 내성인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 계획이라는 그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은 주관적인 견해를 통해서 객관적인 상황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카메라 앞에 선 인물이 거짓말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표정은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가 직접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아도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보여줄 수 있다”는 말로 자신이 생각하는 다큐멘터리를 설명했다. 그리고“연기자가 가장 중요하다. 그들의 감정을 건드려서는 안된다”는 그의 몇가지 일화. 130분짜리 <해상화>를 36개의 쇼트로 완성할 당시, 19세기 말 상하이 유곽의 공기를 정확하게 포착해내기 위해 한 장면을 15일에 걸쳐 3번을 반복해서 찍었던 일, 어린 배우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기 위해 NG가 나더라도 조명 등의 다른 요소를 이유로 들어 테이크를 반복하여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경험은 그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연기와 배우와의 관계를 중요시하는가를 보여주는 것들이었다. 결론적으로 그만의 연출 노하우는 “연기자들의 일상을 계속해서 관찰하고 기록하는 것”이었다. 한편 자신의 미학으로 확실하게 정립한 바 있는 롱테이크에 대해서는, “롱테이크는 현실을 모방한 시간이다. 그러나 서로 다른 두 시간을 나란히 연결하면 영화적 시간이 된다. 그것은 응집하거나 확대할 수 있다. 나는 영화를 만들 때, 언제나 시간의 컨트롤을 중시한다”는 말을 남겼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만남을 마무리하는 순간, 어떤 식으로든지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에게 남긴 마지막 조언.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한다.” "생각한다는 것은 물위에 글을 쓰는 것이지만 직접 실천하는 것은 돌 위에 새기는 것과 같기 때문”이라고. 상영관을 떠나는 그에게,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감사를 표했다.

글=오정연 사진=손홍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