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지금보다 프로야구가 훨씬 대중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을 때 한국 프로야구의 홈런타자로 이름을 떨친 이만수라는 선수가 있었다. 당시 최고 타율을 자랑하던 이만수 선수가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적이 있는데 마침 경기를 중계하던 아나운서가 “요즘 이만수 선수답지 않게 왜 저럴까요?” 하고 묻자 본 경기보다 한 세배쯤 더 재미있게 해설을 하는 하일성 해설자가 원래 이만수 타자가 타격 자세가 정석적이지 않아 타격 자세를 바꾸면서 타율이 떨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꺼냈다. 그러면서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이 교과서적인 자세가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가 편해야 된다는 얘기를 했다. 자기 자세가 아니다보니 전체적인 몸의 밸런스가 맞지 않게 되고 그러다보니 몸의 일부분이 부자연스럽게 되고 그러다보니 공을 맞추는 히팅 포인트의 감각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렇지만 선수가 자기가 바꾸고 싶은 것, 또는 실험하고 개발하고 싶은 것을 시도하다가 잠시 슬럼프에 빠진 것은 우리가 좀더 애정을 가지고 기다려줄 만하다고 했다. 물론 하일성 해설자가 구구절절 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대충 이런 얘기였다. 그뒤로 이만수 선수가 원래 자기 자세로 돌아갔는지 아니면 바꾼 타격폼으로도 다시 정상의 자리에 섰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이만수 선수가 무언가 바꾸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가고 싶지 않던 술자리에 끼게 되었다. 원래 술도 잘 먹지 못하지만 그것보다 술을 먹으면 먹을수록 말수가 적어지는 탓에 혼자 말똥말똥 썰렁하게 앉아 있을 게 뻔히 보였기 때문에 끼기 싫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하면서 물어와 분위기 썰렁하게 만들어 괜히 기분 풀려고, 취하려고 온 사람들 눈치 보이게 하는 것도 싫었고 남들은 모두 취해서 호탕하게 노는데 같이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멀뚱한 표정으로 몸을 배배 틀면서 앉아있을 게 뻔한 내 그림이 싫었다. 결국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 삼복에 개 끌려가는 표정을 지으면서 마지못해 가긴 갔지만 역시 난 한쪽 구석에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그렇게 혼자 있었다.
“왜 나는 호연지기가 안 될까?”, “왜 나는 음주가무가 안 될까?”, “왜 나는 저 호방한 세계에 뛰어들지 못할까?” 하며 혼자 자기 연민에 빠져서 괴로워하다가 이런 내 모습에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급기야 따라주는 술마다 다 받아마시고 한술 더 떠 자작까지 하고 있었다. 어울리지 않게 누가 노래를 부르면 손장단도 맞추고 그것도 부족해 탬버린도 흔들어보았다. 전혀 그전의 내 행동이 아니었기 때문에 처음엔 좀 쑥스러워하면서 약하게 흔들다가 점점 과감해지면서 한번 치고 두번 흔들기, 연속 치고 길게 흔들기, 팔 뒤꿈치로 치고 엉덩이로 받아치기, 심지어 공중으로 던졌다가 받으면서 무릎치기도 해보았다. 모두들 이런 내 행동에 놀라워하며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아 결국 저렇게 저 녀석도 망가지는구나” 이런 시선을 노골적으로 내보이는 친구도 있었다. 아마 내가 넥타이를 매고 다녔다면 머리에 넥타이를 둘러매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렇게 노니까 속이 좀 후련해지는 게 마치 음주가무의 진수를 깨달은 느낌이 들었다. 노래방을 나와 새벽녘 호젓한 거리를 걸으며 나름대로 술취한 기분을 이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친한 친구하나가 슬쩍 내 옆으로 붙더니 나를 보고 씨익 하고 웃었다. 나도 기분이 좋아져 따라 웃었더니 그 친구가 내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나는 생뚱맞은 표정으로 “왜?” 하고 물었다. “지운씨답지 않게 왜 그래?” 찬바람이 쌩 하고 불었다. 이런 제기랄! 항상 그랬다. 너답지 못하다라는 말이 사람들을 얼마나 꿈쩍 못하게 하는지, 거기서 얼마나 빠져나오고 싶은지 아마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물론 자기 태어난 대로, 생긴 대로 사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그게 가끔은 불편해질 때가 있고 한번쯤 바꿔보고 싶을 때도 있다. 그럴 때는 한번 멀리 나갔다 들어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호의가 다른 사람에게 족쇄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