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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극장가 골라보는 재미

웃음과 감동의 성찬 가슴에 보름달 ‘둥실’

해마다 최고 흥행 시즌인 추석연휴 극장가의 특징은 한국영화, 가족영화, 코미디영화의 강세로 요약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세가지 요소를 고루 갖춘 김상진 감독, 차승원 주연의 <귀신이 산다>가 17일 개봉해 추석 대박을 예감하고 있다. 반면 올해는 <조폭마누라>(2002)나 <가문의 영광>(2003)처럼 한 영화가 관객을 독식하는 독점 흥행의 전망은 그리 높지 않다. 추석 차례상 차림처럼 하나의 ‘메인’ 메뉴가 시선을 모으기 보다는 다양한 빛깔과 향의 영화들이 골고루 차려져 있는 게 올 추석 극장가의 특징. 여느 해보다 빨간 날이 많아서 영화 한 편은 ‘봐줘야’ 마무리될 것같은 올 추석 연휴 개봉영화들을 장르별로 소개한다.

휴먼 드라마 탄광촌 밴드·꼴찌 야구팀 ‘안전한 선택’

남녀노소 막론하고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영화는 역시 가슴 따뜻해지는 사람 이야기.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류장하 감독)은 여기에 걸맞는 ‘무색소, 무설탕’의 착한 인간 드라마다. 별볼일 없는 트럼펫 연주자로 실력은 없지만 자존심은 강한 노총각 현우가 탄광지역 도계의 중학교 브라스 밴드 지도교사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들로 특별한 사건 없이도 정감있는 사람살이의 풍경을 무던하게 펼쳐나간다.

프로야구 원년의 기억을 더듬는 스포츠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김동현 감독 이범수 주연)은 30-40대 야구팬, 특히 ‘꼴찌’팀 삼미슈퍼스타즈의 ‘안좋은 추억’, 실은 우습고 슬펐던 추억을 기억하는 팬들에게 가슴 찡하게 다가올 만한 영화다. 꼴찌팀에서도 꿔다 논 보릿자루 취급을 받았던 패전처리 투수 감사용의 눈물겨운 열정과 그를 응원하는 가족들의 따뜻한 애정을 엮은 이야기로 팍팍한 살림살이에 지친 엄마와 구조조정 위기의 고민을 내색할 수도 없는 아빠, 공부 ‘지지리’ 못하는 아들 딸이 두루두루 위로를 전해받을 수 있을 만하다.

<식스 센스> <싸인>의 M. 나이트 샤말란 감독의 새영화 <빌리지>(와킨 피닉스,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주연)는 조금 다른 각도로 가족이나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저마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모여서 꾸린 미국 시골의 공동체 마을. 가정의 행복을 깨뜨릴 수 있는 요소들로부터 스스로 폐쇄됨으로써 안전과 평화를 도모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불행의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차단한 삶이 진정 행복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감독의 특장으로 알려진 반전의 재미는 약하지만 초자연적인 존재로 인해 서서히 다가오는 싸늘한 공포감을 그럴 듯한 분위기를 그려낸다.

지난달 말 개봉해 지금까지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는 <터미널>은 스필버그 감독, 톰 행크스 주연이라는 타이틀 만으로도 ‘따뜻한 인간애’를 보장하는 영화다. 뉴욕 J.F.K 공항에서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한 중년의 남자가 겪는 애환과 우정, 인간승리의 드라마를 정답에 가까운 비율의 웃음과 감동으로 엮어낸다. 한국영화 <가족>(이정철 감독 주현, 수애 주연)도 3일 개봉 이후 강력한 뒷심을 받고 있다. 말썽많은 딸과 늙고 병든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그린 영화로 여기에 끼는 조폭 드라마가 가족영화로는 조금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제목 그대로 가족간의 사랑을 보여주는 데 총력을 다한다.

액션 덴젤 워싱턴·청룽 현란한 액션 대결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간 때우기 용 극장관람이라면 액션영화가 최고. 24일 개봉하는 <맨 온 파이어>는 ‘유괴’라는 한 가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악몽을 소재로 한다. 살인 전문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던 과거를 고통스러워하며 술독에 빠져 있던 한 남자(덴젤 워싱턴)가 부유층 아이들의 유괴가 횡행하는 멕시코 시티에서 한 아이의 보디가드를 맡게 된다. 아이의 살가운 정에 얼어붙었던 마음이 풀릴 무렵 아이가 유괴되고 구출작전은 실패하자 남자는 복잡한 커넥션으로 연결된 유괴범들을 찾아 잔인하게 복수한다는 이야기. 항상 반듯한 역만 해왔던 덴젤 워싱턴이 눈 하나 깜짝 안하고 유괴범의 손가락을 하나씩 자르는 냉혈한으로 변신하며 <아이 엠 샘>에서 눈물바다를 만들었던 연기 신동 다코타 패닝이 유괴당하는 아이로 출연한다. 감각적인 화면을 만들어내는 토니 스코트 감독의 재주도 녹슬지 않았다.

해마다 연휴 때면 가장 친한 친구가 되는 청룽의 새영화 (프랭크 코라치 감독)도 추석연휴 모범답안 같은 액션코미디 영화다. 청룽은 쥘 베른의 소설에서 주인공 과학자의 하인인 파스타투 역으로 분하며 특유의 현란한 무술 실력은 옛날 같지 않지만 19세기 말로 재현된 외국의 이국적 풍광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할리 베리 주연의 <캣 우먼>(피토프 감독)은 낮엔 보통 여자로, 밤엔 여자 영웅 ‘캣 우먼’으로 변신해 살아가는 또다른 ‘스파이더 맨’ 류의 변신 영웅 영화다. 디자이너로 나오는 할리 베리의 평소 수수하고 청순한 모습과 밤에 캣 우먼으로 변신한 뒤의 섹시하고 터프한 면모를 대비시켜 전시하는데, 아이러니컬하게도 평소 모습이 더 매력적이다. 캣 우먼으로 변한 뒤의 할리 베리가, 사랑하는 남자 경찰관과 유혹하듯 벌이는 결투장면이 눈길을 끈다.

장이머우 감독의 연인(류더화, 장쯔이, 진청우 주연)은 ‘무협멜로’를 표방한 액션 드라마. 난세에 휘말린 당나라 말기 정부군과 반란군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삼각관계로 한번 더 꼬아놓지만 실상 중요한 건 멜로 드라마의 디테일이 아니라 <영웅>의 뒤를 잇는 장대한 스케일의 볼거리로 장쯔이의 우아한 북춤 장면과 우크라이나에서 찍은 자연장관이 눈을 즐겁게 한다.

코미디 차승원표 코미디 "흥행제왕 내거야”

추석 연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장르는 코미디다. 주연 차승원씨가 “3백만 명 동원”을 낙관한 <귀신이 산다>는 올 추석 ‘흥행의 제왕’ 등극에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힌다. 사천만의 꿈인 ‘내집 마련’에 성공한 한 남자가 소유하게 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같은 집’에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는 귀신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이다. 코미디 전문배우로 정착한 듯한 주연 차승원이 물 만난 고기처럼 관객을 즐겁게 한다.

<총알탄 사나이>, ‘못말리는’ 시리즈를 제작했던 코미디 감독 사단 ‘ZAZ’의 일원이었던 제리 주커 감독의 <노 브레인 레이스>(우피 골드버그, 로안 앳킨슨 주연)는 200만 달러의 눈 먼 돈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여섯 팀의 ‘못말리는’ 여정을 그린 코미디 영화. 웃음도 적당히, 의미도 약간이라는 약아빠진 전략으로 일관하는 요즘 코미디와 달리 한줌의 낯가림이나 주저함 없이 황당무계한 설정을 수시로 만들어내며 초 단위로 객석을 뒤집어 놓는다.

‘웰메이드 포기선언’으로 화제를 일으켰던 <돈텔 파파>(이상훈 감독 정우인, 유승호 주연)는 개봉 이후 지방을 중심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한국영화. 한번의 사고로 ‘고딩’아빠가 되야했던 철없는 20대 아빠와 어른스러운 아들의 사랑을 그리며 여장남자, 욕쟁이 친구 등의 조연들이 웃음을 보탠다.

예술영화 튀는 예술적 감흥 주체할 수 없다면‥

저마다 한탕을 노리는 상업영화의 홍수 속에서 예술영화들도 조촐한 상차림으로 관객을 맞이하고 있다. 올 칸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선보였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나쁜 교육>(펠레 마르티네즈,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 주연)은 추석 개봉 영화 가운데 가장 강렬하고 어두운 영화로 꼽힐 만하다. 어린 시절 가톨릭 기숙학교에서 교장신부로부터 원치 않았던 사랑을 받았던 소년 이나시오와 친구 엔리케가 성장하기까지의 악몽같은 사연을 두 성인 남자와 탈속한 신부, 이나시오의 동생 후안 등 네명의 남자 이야기로 펼치며 결국 좌절될 수 밖에 없는 욕망과 열정의 드라마를 범죄극 형식으로 그려낸다.

카트린 브레이야 감독의 <섹스 이즈 코메디>(안 파릴로, 록산느 메스키다 주연)는 일종의 영화에 관한 영화로 섹스 장면을 두고 여자 감독과 남녀 주인공이 삼각 레이스로 벌이는 신경전을 지적인 코미디로 보여준다. ‘가족’ ‘헌신’ ‘우애’ 따위의 단어로 넘쳐나는 추석을 불경하게 보내고 싶은 관객에게 ‘딱’인 영화다.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완벽남 콜린 퍼스가 17세기에 실재했던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로 출연하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피터 웨버 주연)는 장면장면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영화다. 베르메르의 대표작인 동명의 그림이 탄생하게 된 배경을 문학적 상상력을 펼쳐가며 베르메르와 사랑에 빠지는 그리트 역의 스칼렛 요한슨의 절제된 연기가 압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