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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도 인간이 살고 있었네’, <카란디루>

‘그곳에도 인간이 살고 있었네.’ 풍경의 구조를 통해 휴머니즘을 설파하는 헥터 바벤코, 그가 만든 또 하나의 화려한 감옥영화.

하나의 물리적인 공간이 있다. 그리고 이곳을 두고 두개의 상충하는 관점이 존재한다. 이것을 평화롭게 유지시키는 것은 수용소의 담벼락 같은 것들이다. 이 담장을 넘고 관점을 넘어 두 세계를 자유롭게 오가는 관찰자의 시점이 있다. 그리고 얼마 뒤 두 세계관이 부딪쳐 굉음을 내고 폭발한다. 이때, 대조와 명암이 분명한 카니발의 생명력과 광휘가 엿보인다. 이상이 구조적인 방식으로 현실을 묘사하면서도 언뜻 판타지처럼 보이는 남미 리얼리즘의 전통이다. 헥터 바벤코는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수용소의 장벽을 사이에 두고 관점과 관점 사이를 넘나드는 남미 스타일 전통의 시각적 쾌감을 사랑한다.

브라질 최대 도시 상파울루의 도심에 자리한 남미 최대의 교도소, ‘카란디루’의 정원은 3500명, 실제 수용인원은 7천명이다. 열악한 환경과 물리적 통제불능 상태에 빠져 이 대형 감옥 안에는 마약 거래와 에이즈가 창궐한다. 그리고 1992년 폭동이 일어난다. 진압과정에서 111명의 죄수가 죽고 경찰쪽 사상자가 없었으니 학살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해석방식일 뿐이다. 이 참극이 있기 얼마 전, 교도소 내 보건 위생을 위해 의사, 드라우지오 바렐라가 파견되어 담장을 넘고 관점을 넘어 그곳에 도착하자 풍경은 달라진다. 그것은 윤리적 판단을 보류하고 오직 기능에만 충실한 계몽주의자 바렐라의 시선이 그곳에 살고 있는 이들 개개인의 다채로운 사연을 발굴하면서부터다.

뜻밖에도 그곳엔 나름의 질서가 있다. 재판관과 교회, 로맨스와 결혼식, 심지어 자체의 감옥까지. 그리하여 사회 부조리가 배태한 지옥도 같았던 카란디루엔 이제 흡사 정겨운 공동체의 나른한 환상과 온기마저 펄떡인다. 그때 폭동이 벌어지고 학살이 시작된다. 관객은 일그러지긴 했어도 인간적 체취로 가득했던 풍경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민한 정치적 소재를 구조적인 방식을 통해, 휴머니즘으로 환원하기를 즐겼던 헥터 바벤코의 설교가 마무리된다. 실은 그곳에도 인간이 살고 있었노라고. 죄수들을 묘사하는 생생한 캐릭터, 공간을 입체적으로 배치하는 조형술 등 관점을 전복하는 헥터 바벤코의 기예는 지금도 여전하다. 그러나 (<거미여인의 키스> 이후) 16년이 지난 지금도, 현실의 구조와 그 깊이를 엿보게 해준 공로만으로 양식화된 휴머니즘이라는 혐의를 벗겨줄지 그것만큼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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