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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어떤 영화를 볼 것인가 누구와 함께 볼 것인가

주중에 매일 있다시피한 시사회에 다니다 보니 혼자 극장에 간다고 어색하다거나 불편하지 않은 게 한참 됐다. 그럼에도 ‘업무상’이 아닌 ‘일반’관객으로 ‘나 홀로’ 극장에 가는 일에는 여전히 적응이 잘 안된다. 자립적이지도 못하고 촌스러운 나의 영화 관람 버릇 혹은 취향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함께 극장을 가는 건 단순히 같은 영화를 보는 것 이상의 재미와 긴장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두시간 동안 영화를 보면서 상대방의 취향 뿐 아니라 습관과 인간성, 좀 거창하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세계관까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나는 두번째 쯤의 데이트 때는 꼭 극장에 가 상대방을 ‘점검’해 보곤 했다.

일단 무슨 영화를 볼까 정할 때, 이미 앞의 질문에 대한 답안지의 1/3 정도는 메워진다. <살인의 추억>이나 <스파이더 맨>같은 영화가 늘 상영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극장 앞, 또는 극장예약을 앞둔 전화통화에서 두 사람은 잠시 협상의 시간을 가질 수밖에 없다. 홍상수가 영화감독인지 소설가인지 모르는 사람에게 “요리스 이벤스 회고전을 보러가야겠어요”하는 것도 문제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날 <러브 액추얼리>를 보자는 ‘타협가능한’ 제안에 한사코 <실미도>를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겠다고 주장하는 사람과의 두 시간이 영화 내용과는 무관하게 지루할 건 뻔한 일이다.

<화양연화>(사진)를 보며 량차오웨이의 눈동자에 빠져 한참 허우적대고 있는데 옆에서 ‘도로롱’ 소리가 나도록 코를 고는 모습도 한심하지만 “그러게 바람은 왜 피우냐”면서 깨는 추임새를 넣어대는 사람과는 영화가 끝난 뒤 서로 다른 문으로 나가고 싶어진다. <싸인>을 보면서 잔뜩 긴장해 있는데 갑자기 손을 덥석 잡아 때 아닌 비명을 지르게 만드는 사람이라면 극장을 나오자마자 악수하고 헤어지는 게 좋다.

영화가 끝났다고 모든 평가가 마무리 되는 건 아니다. 나부터 영화가 끝나면 “재미있다”, “별로네”라는 말밖에 안하는 별 볼일 없는 파트너지만 가장 좋은 건 느낌이 다르더라도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다. 언젠가 순전히 만남을 끝장내기 위해 나 역시 ‘예술영화’쪽에는 젬병인 주제에 에릭 로메르의 <모드 집에서의 하룻밤>을 보러 간 다음 긴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동안 데면데면했던 상대방과 많이 친해졌던 경험이 있다. 단 <봄날은 간다>를 보고 나서 주인공이 이영애냐, 유지태냐를 가지고 벌이는 한심한 논쟁 같은 거라면 영 아니겠지만 말이다.

옆구리 허전해지는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즈음 독자 여러분은 누구와 함께 극장에 갈 계획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