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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콘&콜라] 붕어빵에 붕어 없고 충무로에 영화사 없다?

지금의 충무로 3가는 일제시대에 ‘본정(本町) 3정목(丁目)’이었다. 중구청이 펴낸 <중구지>에 따르면 이 일대는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인들이 가장 많이 들어와 살았던 곳이다. 그래서 으뜸이 되는 동네라는 의미로 ‘본정’이라고 이름붙였다는 것이다. 해방 뒤 1946년 일본식 지명을 없애면서 인근의 남산 인현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순신 장군의 호를 따서 충무로로 바꿨다. 일제시대 때부터 충무로 2가와 명동 일대에 모이던 영화인들이 50년대 중반부터 3가로 들어와 제작사를 차리기 시작해 50년대 말 17~18곳의 영화사가 충무로 3가에 모였다. 이때부터 ‘충무로’라는 지명은 한국 영화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50년 가까이 지난 2004년 8월말 현재 충무로는 붕어빵을 연상시킨다. 붕어빵의 붕어처럼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충무로에 영화사가 몇 개 남지 않았다. 90년대 중반 신씨네가 스타트를 끊으며 사무실을 강남으로 옮긴 뒤부터 영화인 대이동이 시작돼 봄, 싸이더스, 태원, 마술피리 등 줄줄이 강을 건넜고 튜브 같은 신생영화사들은 강남에서 개업했다. 지난 6월 한국 영화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씨제이엔터테인먼트가 남산에서 역삼동으로 이사했고, 대학로에 사무실을 두고서 강북을 사수하던 명필름이 강제규필름과 합병하면서 8월초 잠원동으로 떠났다. 씨네마서비스와 혈연관계를 유지하던, <주유소습격사건> <아라한장풍 대작전> 등을 제작한 좋은영화도 며칠전 강남으로 갔다.

이제 충무로 남은 영화사는 지난해 플래너스와 합병하면서 강남으로 갔다가 분리하면서 다시 돌아온 씨네마서비스, <달마야 놀자> <황산벌>의 씨네월드, <중독> <돌려차기>의 씨네2000, <친구> <청연>의 씨네라인2 등 4~5곳 남짓하다. 충무로뿐 아니라 강북 전체로 확장해도 황기성사단과 청년필름 정도를 보탤 수 있을 뿐이다. 자꾸 강남으로 가는 건 우선 투자사와 매니지먼트 회사가 강남에 있기 때문이다. 영화 제작이 파이낸싱과 캐스팅에서 시작하는 만큼 제작자의 입장에선 강남에서 왔다갔다 하는 게 편하다는 것이다. 또 녹음실, 편집실 등 후반작업 회사가 강남에 몰려 있다는 점도 중요한 이유로 꼽힌다.

달리 말하는 이들도 있다. 충무로를 지키고 있는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는 “특별히 사무실을 옮겨야 할 이유가 없다, 불편한 게 없다”면서 우스개소리 보태 “일을 사무적, 영화적으로 하면 되는데 자꾸 술먹으면서 하려니까 술먹기 좋은 강남으로 가는 것 아니냐”고 말한다. 최근 옮겨간 명필름, 씨제이엔터테인먼트, 좋은영화 모두 유사업종의 공간적 집약이라는 효과 외에 합병, 모기업 차원에서의 사옥정리 등등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 충무로를 지키겠다는 씨네월드 이준익 대표는 “영화적 이유 이전에 정서적으로 강남이 싫다, 천민 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그곳에 가기가 싫다”고 말한다.

여하튼 영화사는 90% 가까이 강남으로 갔고, 비어가는 충무로에 중구청은 기념물로 ‘영화의 거리’를 만들 계획이다. 길이 역사가 되는가 싶더니 이내 박물관이 되려 한다. 다 이유가 있겠지만 너무 빨리 변하는 건 좀 어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