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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극으로 사유했던 영화 거장, <존 포드 걸작선>

서울아트시네마, 8월6일부터 ‘존 포드 걸작선’ 상영

앙드레 바쟁의 말처럼 서부극이 “영화 그 자체의 기원과 거의 일치하는 유일한 장르”라면 그는 영화의 기원과 일치하는 몇 안 되는 감독 중 한 명이다. 숱한 장르를 섭렵한 대가 하워드 혹스조차 “데뷔 시절 매번 그를 베끼려고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건 마치 “작가라면 헤밍웨이와 포크너와 존 도스 페소스와 윌라 카서를 읽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러고는 끝내 “서부극만큼은 그보다 잘 만든 것 같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저명한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 역시 “장 르누와르와 오즈 야스지로가 그러하듯이 너무 많이 알려졌지만 동시에 너무 알려지지 않은 영화작가”라고 미지의 황무지로 그를 정의했다. ‘그’가 바로 미국 서부극의 수호신이자, 미국영화 역사의 거장으로 남아 있는 존 포드다.

존 포드는 잭 포드라는 이름으로 1917년 감독 데뷔하여 1923년까지 많은 연출작을 내놓았다. 1930년대 말부터 존 포드 영화의 진수를 인정받기 시작했고, 전성기인 40년대와 50년대를 거쳐, 73년 타계하기까지 150여편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서부극 장르의 고전적 양식틀을 마련했고, 그 장르를 반복하면서 스스로의 작품세계를 성찰하는 자기반영의 도덕과 이상향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그리고 서부극의 대가로 정평이 나 있지만, 작품들 중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후손으로서 그의 정체성이 밑바탕이 된 여러 편의 현대극도 있다. 그의 대표작 14편을 상영하는 ‘존 포드 걸작선’이 8월6∼15일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열린다.

존 포드 회고전 일시 2004년 8월6일(금)~8월15일(일)장소 서울아트시네마주최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한멕시코대사관후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문의 02-3272-8707, 02-745-3316, www.cinemathequeseoul.org상영작(14편) 밀고자(1935, 91분)/ 역마차(1939, 97분)/ 기나긴 여정(1940, 105분)/ 분노의 포도(1940, 129분)/ 나의 계곡의 푸르렀다(1941, 118분)/ 황야의 결투(1946, 97분)/ 아파치 요새(1948, 127분)/ 웨건 마스터(1950, 86분)/ 리오그란데(1950, 105분)/ 조용한 사나이(1952, 129분)/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 90분)/ 수색자(1956, 119분)/ 말 위의 두 사나이(1961, 109분)/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1962, 122분)

* 8월11일(수) 오후 5시에는 ‘존 포드의 영화세계’를 주제로 한 특별강좌(강사: 홍성남/ 영화평론가)

고전적 웨스턴 또는 기병대 삼부작 중 두편

<황야의 결투>

<웨건 마스터>

<말 위의 두 사나이>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

<분노의 포도>

<역마차>(1939), <황야의 결투>(1946), <아파치 요새>(1948), <리오 그란데>(1950)는 시기적으로나 형식적으로 존 포드의 서부극을 정초한 작품들이다. <역마차>(1939)는 존 포드 서부극의 전범이라는 의미에서뿐 아니라, 서부극 장르 자체의 교과서라 부를 만하다. 탈옥수, 마을에서 쫓겨난 매춘부, 교양있는 부인, 사기 도박사, 알코올중독 의사 등 각양각색의 계층적 인물들이 같은 마차를 타고 여정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를 이룬다. 존 포드가 보여준 영화 속 인디언들과의 추격전 장면은 이후 많은 영화에서 모방되기도 했다. 앙드레 바쟁은 “사회적 신화와 역사적 회상, 심리적 진실과 서부극 연출의 전통적인 테마 사이의 완전한 균형상태를 유지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이 영화를 평가한다.

전설적인 인물 와이어트 어프(헨리 폰다)를 주인공으로 한 <황야의 결투>(1946) 역시 이후 많은 서부극에 영감을 제공하고, 또 리메이크됐다. 툼스톤이라는 마을에 들어온 와이어트 어프의 형제들이 악의 무리를 몰아낸다는 고전적 서부극의 내용을 지녔지만, 개인과 사회, 방랑과 정착, 그 사이에서 겪는 영웅의 도덕적 판단이라는 존 포드의 철학적 주제가 이미 여러 장면에 스며 있다는 점에서 자기성찰적인 후기 서부극 <수색자>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의 전조로 말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아파치 요새>와 <리오 그란데>는 이번 상영작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황색 리본>(1949)과 함께 ‘기병대 삼부작’으로 알려져 있다. 황야의 영웅을 원칙론적 집단의 한 인물로 옮겨놓은 듯한 이 두 작품은 그 내부에 얽혀 있는 가족애와 동료애, 질서와 원리 등을 갈등의 주축으로 놓는 한편, 막사 바깥에 버티고 있는 인디언들과의 대립을 격렬한 활극 액션 장면으로 이끌어낸다.

자기성찰의 웨스턴

<웨건 마스터>(1950), <수색자>(1956), <말 위의 두 사나이>(1961),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1962)는 서부극 장르의 거장이 된 존 포드가 자신의 작품 계보에 자아성찰의 입김을 불어넣은 작품들이다. 시기적으로 볼 때 <리오 그란데>와 같은 해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웨건 마스터>는 시스템의 요구에 구애받지 않은 채 최소한의 예산으로 만든 영화이며, 존 포드 자신이 느끼는 서부의 이상향을 풍경과 그 인물들의 관계를 놓고 살핀다는 점에서 그 시기의 작품들보다 한 걸음 앞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영화는 정착의 대지를 찾기 위해 긴 여행을 떠나는 모르몬교의 험난한 여행을 뒤쫓는다. 정교한 스토리텔링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점 때문에 무시하기 쉽지만, 존 포드가 구현하고 싶어했던 가장 원초적인 이상향으로서의 서부극으로 알려졌다.

그에 비해 <수색자>는 존 포드 영화의 거의 모든 요소를 한 작품 안에서 다루고 있는 정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인한 서부의 아이콘이었던 존 웨인이 노쇠한 모습으로 출연하여 인디언에게 빼앗긴 조카를 찾기 위해 어려운 혈투를 벌인다는 내용이다. 그 안에는 미국 개척의 문명사에 던지는 도덕적 회의와 의문이 곳곳에서 상충한다. 상대적으로 <수색자>에 비해 덜 알려진 <말 위의 두 사나이> 역시 그런 성찰을 다룬다. 인디언들에게 잡혀간 백인 포로들을 데려오기 위해 나선 두 주인공은 이미 인디언에 가까워진 사람들을 목도하고, 또 그들이 쉽게 백인 사회에 다시 적응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까지 확인한다. 마치 그동안 존 포드 서부극의 주인공을 대변하는 듯한 ‘말 위의 두 사람’은 ‘보안관과 군인’이다.

그리고 평론가 로빈우드가 “존 포드의 마지막 성공작”이라 부른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가 있다.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존 포드의 성찰적 서부극의 최종판이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로 잘 알려진, 그러나 지금은 상원의원(제임스 스튜어트)으로 활동 중인 스토다도가 친구 톰 도니폰(존 웨인)의 장례식에 찾아온다. 그러고는 진짜 진실을 술회한다. 톰 도니폰이 오래 전 유명한 악당 리버티 밸런스와 벌였던 결투를 신문기자에게 이야기하면서 영화는 진행된다.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는 <수색자>에 버금갈 만한 양식적 견고함을 지녔으며, 신화와 사실의 간극에 놓인 미국 역사에 대해 영화적인 서술 방식으로 질문한다.

존 포드의 현대극: 사회파 영화 또는 희비극의 정조

<밀고자>(1935), <기나긴 여정>(1940), <분노의 포도>(1940),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1941), <조용한 사나이>(1952), <태양은 밝게 빛난다>(1953)는 존 포드의 대표적인 현대극이다. 이 중에서 존 포드는 <밀고자> <분노의 포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조용한 사나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았다.

존 포드의 현대극들에는 강한 사회비판적 지향성과 아일랜드 후손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이 바탕이 된 귀향과 여정의 드라마가 주로 교차한다. 우선 존 스타인벡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분노의 포도>(작가 이론이 그를 발견해내기 이전에 이미 1940년대에 그를 예술가의 경지로 인정받게 한 작품)는 청운의 꿈을 품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지만 결국 그곳이 낙원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야 마는 조드 일가의 불운한 삶을 그려낸다. 그 다음해, 리처드 레웰린의 소설을 각색하여 만든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는 1890년대 웨일스 탄광 노동자들이 겪는 사회적 불운과 저항과 단합을 한 가족을 모델로 보여준다. 이주하려는 의지와 정착하려는 의지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낙원에의 절망과 희망을 말한다는 점에서 사회비판적 의지가 강하다.

한편, 희비극적 정조가 두드러지는 작품들이 있다. <밀고자>는 격렬한 투쟁지 더블린을 떠나 애인과 함께 미국으로 도피하기 위해 동료를 밀고한 주인공 지포의 이야기다. 그렉 톨랜드(<시민케인>의 촬영기사)의 촬영과 더들리 니콜스의 강한 드라마는 아메리칸드림을 위해 동료를 팔아넘긴 순진한 한 남자를 비극적 정조의 분위기로 다룬다(참고로 각본가 더들리 니콜스는 그해 아카데미 각본상을 정치적인 이유로 거부했다). 또 뱃사나이들의 끈끈한 동료애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넘쳐나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모티브로 한 <기나긴 여정>은 존 웨인의 앳된 모습과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엔딩이 압권이다.

유명한 권투선수였던 주인공 숀 턴이 고향인 아일랜드 이너스프리로 돌아와 겪는 해프닝을 코믹하게 그린 <조용한 사나이>와 늙은 판사가 새로운 미국정치의 질서에 도전한다는 내용의 <태양은 밝게 빛난다>(존 포드 자신의 1934년작 <프리스트 판사>의 리메이크)에서는 희극의 정조가 두드러진다. <조용한 사나이>에는 존 포드의 마음의 고향이라 할 만한 아일랜드에 대한 향수가 즐거운 감성으로 배어 있다. <태양은 밝게 빛난다>에는 다양한 인종들을 ‘동등한 공동체’로 인정하는 존 포드 작품의 경향이 드러난다. 늙은 판사가 흑인들과 함께 웃고 노래하는 재판장 장면은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1997년 텔레비전 영화 〈The Price of Heaven>에 영감을 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정한석 mapp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