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죠스> <탑건> <플래시댄스> …. 분명 당신의 머릿속에는 뭔가 불명확하지만 공통점으로 여겨지는 어떤 것들이 떠오를 것이다. 좀처럼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이미지를 남기는 캐릭터, 첫 소절을 듣는 순간 자동적으로 영화 속 이미지가 연결되는 매혹적인 음악들, 단 몇줄만으로 줄거리 설명이 충분해지는 명쾌함, 영화 개봉에 추가되는 수많은 부가상품들, 그리고 박스오피스에서의 대단한 성공…. 그리고 이 모든 특징들을 포괄하는 단어, ‘하이 컨셉’(High Concept)이 이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영화 시장 조사 분석가로 일했으며 현재 노스텍사스대학교에서 라디오·TV·영화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 저스틴 와이어트가 저술한 <하이 컨셉트>(저스틴 와이어트 지음| 조윤장·홍경우 옮김| 아침이슬 펴냄) 는 하이 컨셉 영화가 어떻게 후기 고전 할리우드영화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영화산업의 성장과 관련을 맺어왔는가를 들여다보면서 할리우드의 영화사 역시 명료하게 조망한다. 이 책의 가치는 마케팅을 비롯한 ‘내 영화의 성공의 비밀’의 정공법을 배울 수 있는 교과서적 지식뿐 아니라 작가영화와 아트하우스영화의 신비로운 베일 앞에서 뻘쭘하게 기웃거리는 일에 지루해진 사람들에게는 영화 한편이 완성되기까지의 실제적 과정을 투명하게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데 있다.
저스틴 와이어트는 ‘이미지를 보여주고, 영화로 끌어들이고, 영화표를 사게 하기 The look, The hook, The book’의 과정이 가능한 영화가 바로 하이 컨셉 영화라고 정의내린다. 한편의 영화가 만들어진 뒤, 수없이 세분화된 홍보 매체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 지역 분포를 보이는 관객층에 그 영화에 대한 일관된 이미지를 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영화만이 갖고 있는 고유함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보편성이 적절하게 조화되어 있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헛갈릴 수 있는 지점. 장르영화와 하이 컨셉 영화는 구분되어야 한다. 즉 하이 컨셉 영화 속에 장르영화가 포함될 수는 있지만, 장르영화가 반드시 하이 컨셉 영화가 될 순 없다. 스타 배우의 페르소나가 장르에 매우 밀접하게 부합해야 하고, 또한 영화가 장르적 성격에 맞도록 제작되어야만 하이 컨셉 영화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이다(심지어 일부 작가영화까지 여기 포함될 수 있다). 가장 시장지향적인, 그리고 가장 성공할 확률이 높은 안전 상품.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 하이 컨셉은 분명 양날의 칼이다. 영화를 대단히 흥미롭게 만들 수 있는, 혹은 정반대로 가장 지루하게 할 수 있는 그런 존재 말이다(1979년 제임스 모나코가 했던 경고를 잊지 말자. “우리는 점차 열편의 똑같은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주로 70년대에서 80년대에 이르는 할리우드영화를 분석하고 있지만, 신기하게도 한국영화의 9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는 과정이 여기 겹쳐지며 희망섞인 근심을 우리에게 남겨둔다. 결국 완전히 하이 컨셉이거나 로 컨셉의 양극단에 속한 영화만큼 끔찍한 재난의 경험이 달리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자명할 때, 우리의 욕망을 표본 추출하고 근사치에 가깝게 예측하며 가장 매혹적으로 재밌게 포장해내려 하는 하이 컨셉 영화의 퀄리티야말로 영화산업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김용언/ 영화평론가 mayham@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