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이 청에게 패망할 위기를 맞자 무림의 고수 황주는 구국당을 결성한다. 정보를 입수한 청의 신호당은 구국당원들의 명단이 적힌 단심록을 찾는다. 그 과정에서 황주는 죽지만 단심록은
그의 어린 제자 혜능에게 전해진다. 그 뒷이야기는 능히 상상할 수 있다. 너무나도 친숙한 무협지의 컨벤션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이다. 17년
동안이나 산 속에 숨어 무공을 익힌 혜능이 강호로 돌아와 복수혈전을 벌이는 것이다. <사대소림사>는 폼나는 무협영화다. 주연을 맡은
황정리의 무술솜씨에 대해서도 아무런 불만이 없다. 다만 하나, 충무로에서 왜 이런 영화를 만들었을까 하는 점은 끝내 의문이다. 영화의 내용은
우리나라와 아무런 관련도 없다. 게다가 극중인물은 분명히 중국인인데도 번연히 우리말을 쓴다. 그래도 <사대소림사>는 틀림없는 충무로영화다.
제작은 태흥영화사의 이태원이었고, 감독은 박우상이었으며, 시나리오는 홍지운이 썼다.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초반에 걸쳐기세를 떨쳤던 속칭 ‘소림사영화’들의 존재는 흥미롭다. 영화사적 평가는 어찌되는지 모르겠으나 그 원인의 일단은 홍콩배우 성룡에게서 찾아야 할
것 같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충무로 액션영화의 단역 무술배우에 불과했던 그가 <사형도수>나 <취권> 같은 영화로
아시아 전역에서 엄청난 흥행성공을 거둔 여파를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황정리만 해도 당대 최고의 무술감독 겸 배우로서 <사형도수>에서
성룡의 상대역으로 출연했던 경력이 있다. 충무로 현장의 ‘시다바리’였던 성룡이 저렇게 성공을 거두었는데 우리라고 왜 못할쏘냐 하는 생각이 안
들었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덕분에 한동안 충무로에서는 국적불명의 무협영화 혹은 코믹액션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나왔다. 홍지운은 이러한 조류의
한복판에 서 있었던 작가다.
스물다섯살 때 장동휘가 주연한 반공영화 <북에 고한다>로 일찌감치 충무로 신고식을 마친 홍지운은 1971년 이두용과 함께 각기 다른
장르의 다섯 작품을 만든다. 신성일과 문희가 나왔던 <댁의 아빠도 이렇습니까>는 전형적인 멜로였고, 박노식과 김정훈의 <날벼락>은
코믹액션이었으며, 중국 사천성의 귀신 이야기를 다룬 <야오귀>는 괴기물이었다. 그러나 홍지운이 가장 오랜 세월 동안 철석같은 파트너십을
유지해온 감독은 박우상이다. 홍지운은 여지껏 30편 남짓한 시나리오를 써왔는데, 그중 절반에 해당하는 15편이 박우상 감독의 작품이며, 이
작품들이 박우상 필모그래피의 거의 전부를 이룬다. 임권택의 조감독으로 출발한 박우상은 일관되게 액션영화만을 고집하고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난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최근작인 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홍지운의 액션 시나리오들은 처음부터
국경을 넘나들었다. 박우상과의 첫 작품인 <죽음의 승부>에서는 홍콩을 배경으로 중국의 간첩단과 한판승부를 벌이고, 이두용의 <아메리카
방문객>에서는 라스베이거스를 배경으로 마약조직과 혈전을 벌인다. <귀문의 왼발잽이>는 일본 북해도의 탄광촌, <내 이름은
쌍다리>는 만주 벌판, <광동관 소화자>는 중국 광둥성이 각각 그 배경이다. 이 시기의 스크린을 주름잡던 액션배우들을 떠올리면
감회가 새롭다. <내 이름은 쌍다리>의 주연은 <돌아온 외다리>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던 한용철이고, <돌아온 용쟁호투>의
주연은 미국에서 태권도사범으로 크게 성공한 이준구였다. <죽음의 승부> <귀문의 왼발잽이>에서 주연을 맡았던 바비 킴은
최근 에서도 신현준과 공연해 여전히 액션스타로서의 건재함을 과시했다. <광동관 소화자>로 합류했던
황정리는 같은 해 <광동살무사>라는 영화에서 감독과 주연까지 겸했는데 이 시나리오 역시 홍지운의 작품이다. 1990년대의 작품인
<변금련>과 <만무방>은 토속적인 에로물이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고립무원의 초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강렬한 애욕의 드라마를
그린 <만무방>은 윤정희과 장동휘에게 각종 영화제의 상을 몰아주었고 해외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심산|시나리오 작가
시나리오 필모그래피
1965년 김묵의 <북에 고한다>
1971년 이두용의 <댁의 아빠도 이렇습니까>
1975년 박우상의 <죽음의 승부>
1976년 박우상의 <내 갈길을 묻지마>
1977년 박우상의 <귀문의 왼발잽이>
1980년 박우상의 <돌아온 용쟁호투> ★
1981년 박우상의 <내 이름은 쌍다리>
1982년 박우상의 <소림관 지배인>
1983년 박우상의 <광동관 소화자>
1984년 박우상의 <사대소림사>
1991년 엄종선의 <변금련> ⓥ
1994년 엄종선의 <만무방> ⓥ ★
1997년 박우상의 ⓥ
ⓥ는 비디오출시작
★는 자(타)선 대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