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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멕시코영화제, 거장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대표작 9편 상영
김용언 2004-07-14

멕시코에서 온 ‘극단적 멜로드라마’

1950년대 말, 유명한 프로듀서였던 아버지 덕분에 극장과 촬영장을 밥먹듯 드나들 수 있었던 소년은 아버지의 친구였던 감독 루이스 브뉘엘의 <나자린>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는 그때까지 세상에는 한 종류의 영화, 즉 아버지가 주로 만들던 천편일률적인 상업영화들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자린>은 그가 본 어떤 영화와도 달랐다. 모든 영화가 똑같은 해피엔딩 내러티브로 만들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분명히 다른 대안이 존재했다는 것을 발견한 소년에게 그것은 완벽하게 매혹적이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그는 곧장 브뉘엘의 집으로 갔다. “당신의 영화를 봤어요. 난 당신 같은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요.” 브뉘엘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소년은 그 자리에 얼어붙어버렸고, 몇분 뒤 다시 문을 연 브뉘엘이 입을 열었다. “들어와라.” 그때부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멕시코영화의 놀라운 혁신과 부흥을 이끌어왔으며, 루이스 브뉘엘과 가브리엘 마르케스, 후안 룰포, 카를로스 푸엔테스를 이어주는 유일한 연결고리가 됨으로써 완전히 독창적인 자신만의 세계를 이룩한 감독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영화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아르투로 립스테인은 1962년 19살의 나이에 브뉘엘의 <절멸의 천사> 조감독을 거치면서 브뉘엘의 적자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립스테인이 브뉘엘로부터 배운 것은 테크닉이 아니었다. 브뉘엘은 자신이 그다지 능숙한 감독이 아니라며 어린 립스테인의 끊임없는 질문 공세에 제대로 답해주지 않았으나, 립스테인은 대신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자세’를 배웠다고 회상했다. “네가 진심으로 원하는 영화를 만들도록 노력해라. 그리하여 너 자신을 배반하지 말아라….” 그리고 립스테인은 그 원칙에 따라 승리자가 되었다. “나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른 어떤 것에도 관심이 없다. 내게 있어 영화는 숨쉬고, 먹고, 사랑을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의 존재다. 나는 기꺼이 고집불통의 성가신 존재로 남길 택했고, 그리하여 영화 안에서 아직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허위를 까발리는 극단적 멜로드라마

립스테인은 1966년 카를로스 푸엔테스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함께 쓴 시나리오 <죽음의 시간>으로 데뷔했다. 원치 않은 결투에 휘말렸다가 18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중년 남자의 돌이킬 수 없는 행로를 다루는 기이하고 쓸쓸한 웨스턴 <죽음의 시간>은 기본적으로 마르케스의 작품 세계에 대한 립스테인의 매혹으로부터 출발한 영화였다. 이제는 모든 원한의 고리에서 벗어나 평온하게 살고 싶은 중년 남자는, 그러나 죽음과 복수를 피할 수 없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는 결투에 앞서 침침한 눈 위에 안경을 걸치고 재킷에 입을 맞춘 뒤 단정하게 몸치장을 끝낸다. 립스테인 스스로는 너무 어린 나이에 중년의 심리를 묘사하려다보니 무리수를 두었다며 자신의 데뷔작을 폄하하지만, 이 영화에서부터 이미 립스테인이 평생 추구하게 될 영화적 테마들은 온전히 드러난다고 보여진다.

<죽음의 시간>

<순수의 성>

<종교재판소>

<한계가 없는 곳>

흔히 립스테인의 영화를 일컬어 ‘극단적 멜로드라마’라는 트레이드마크를 붙이곤 한다. 그는 관객에게 가장 익숙한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차용하지만, 그 안에서 부르주아의 안온한 이데올로기를 불손하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부숴버리고 그것의 허위에 찬 이면을 낱낱이 까발리고 만다. 그것은 영화의 핵심에 ‘가족’을 전면적으로 배치하고 있음에서도 잘 드러난다(“가족은 내게 있어 파괴와 공포의 원천이다”). 자신들의 신념과 믿음만이 지켜나가야 할 유일한 가치이며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 어떤 타자도 끼어들 수 없게끔 하는 닫힌 구조 속에서 그는 어떤 광기와 지독한 폭력의 흔적을 발견하는 것이다. 타자들은 다양한 형상으로 출몰한다. 남성다움/여성다움이라는 섹슈얼리티에 심각한 도전을 가하는 드랙퀸과 여성들, 혹은 빈곤과 타락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는 주변부 인생들, 불구자들, 노인들…. 타자에 대한 불관용은 립스테인의 영화 속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방식으로 보여지며, 그에 따른 희생과 저항의 이야기가 립스테인 특유의 멜로드라마 구조를 완성해간다. <순수의 성>(1973)에서는 세상의 폭력과 타락으로부터 지킨다는 구실로 18년 동안 아내와 아이들을 감금한 채 온갖 금욕을 강요했던 ‘쥐덫 제작자’ 아버지의 실화를 다루고 있고, <종교재판소>(1974) 역시 16세기 멕시코를 휩쓸었던 종교재판의 광풍에 휩싸인 유대인 가족 내부의 갈등을 그림으로써 사회 최소 집단으로서의 가족을 하나의 알레고리로 사용하고 있다. <한계가 없는 곳>(1977)은 유령이 곧 출몰할 것 같은 텅 빈 마을에서 사창가를 운영하는 드랙퀸과 그의 딸을 내세워, ‘남자다움’이라는 특성이 지배적인 멕시코 시골 마을에서 드랙퀸의 ‘뒤바뀐’ 섹슈얼리티를 견디지 못하고 제거해버리고 마는 비극을 다루고 있다. <놀라운 복음>(1998)은 외딴 시골 마을에 모여든 종교 집단에서 벌어지는 광란의 섹스 제의에 관한 조롱 섞인 풍자극이고, 40년대 멕시코에서 벌어졌던 유명한 ‘론리 하트 연쇄살인사건’을 영화화한 <짙은 선홍색>(1996) 역시 ‘미친 사랑’에 함몰되어 어린 자식들까지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연쇄살인 행각에 빠지는 고독한 여인의 광기를 그린다(“미친 사랑처럼 산산이 파괴하고 부패시키고 변형시키는 힘을 가진 현상도 없다. 그토록 경솔하고 신성모독적이고 이교도적인 것 또한 없다. 결국 인간 같은 존재는 다시 없다…”). <그것은 인생>(2000)은 고대 그리스의 메데아 신화를 가족 멜로드라마의 틀거리로 변주하며 절망의 가장 막다른 극한에까지 몰렸을 때 아예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파괴하고 마는 여인의 초상을 보여준다.

여기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가야만 하는 운명의 행로에 관한 립스테인의 집착이 드러난다. 립스테인의 주인공들은 기본적으로 ‘가망없음’의 상태에 대한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든 지금의 상태를 좀더 개선시켜보려 발버둥치거나 도피를 시도한다. 총구 앞에서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중년 남자(<죽음의 시간>), 자신의 섹슈얼리티와 딸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르는 건달 앞에서 기꺼이 춤을 추는 드랙퀸의 필사적인 몸짓(<한계가 없는 곳>), 오지 않을 연금을 기다리며 굶주림과 절망에 지쳐가는 늙은 부부(<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는다>), ‘한번 범죄자는 영원한 범죄자’라는 굴레에 옴짝달싹 못하게 사로잡혀버린 중년 남자가 부패한 경찰과 법률 구조 앞에서 벌이는 무시무시한 사투(<종신형>), 뜻하지 않은 행운 앞에서 놀라운 성공에 도취된 채 예정된 파멸을 보지 못했던 남자의 우화(<부의 제국>)를 보라. 그들은 자신들을 가로막는 운명 앞에서조차 버릴 수 없는 가냘픈 희망의 힘을 믿지만, 결국 언제나 가장 최악의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구원은 결코 오지 않는다. 그들이 감내해야 하는 ‘파스칼의 선택’을 내려다보는 립스테인-신의 거대한 시선은 또한 주인공들을 끊임없이 감싸고 도는 유행가의 선율과 겹쳐진다. 주인공들의 현재 상황과 미래를 예언하는 듯한 유행가들, 이 세속적인 싸구려 예언의 선율은 고대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의 역할을 담당하며 소름끼치는 초현실주의의 기운을 이끌어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잔재와 더러운 유산을 끌어안고 앞으로 전진해야만 하는 이 패배자들의 초상은 어찌보면 돈키호테의 그것을 닮았다. 그들은 립스테인에게 있어 그 어떤 노멀한 사람들보다도 위대한 삶의 주인공이다.

닫혀진 공간에서 가장 라틴아메리카적인 영화를 만드는 ‘작가’

한편으로 이 모든 정조를 배태하고 있는 것은 립스테인의 모든 영화 속에서 비슷비슷하게 구축된 공간들이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내부’에서 이뤄진다. 립스테인은 강박적으로 모든 것을 수집하고 배열하는 데 집착한다. 그의 공간은 언제나 닫혀 있고, 방에서 방으로 이어진다. 설령 복도에서 걸어나와 정원으로 들어서더라도 그 정원은 U자 형을 그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게끔 설계되어 있다. 방 안은 각자 캐릭터의 성격에 걸맞은 사물들로 채워져 있다. 죽음의 방은 사냥당한 짐승들의 털가죽과 총으로 채워져 있으며, 사랑을 믿는 여자의 방은 거울과 호사스런 침대와 등불과 알록달록한 종이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다. 폐소공포증을 불러일으키는 좁디좁은 공간은 캐릭터들의 강력한 정서와 그들의 삶의 편린들로 포화 일보 직전이다. 그들은 밖으로 나가고 싶지만 탈출구를 알지 못한다. 외부조차 앞이 훤히 다 보이는 야트막한 모래 언덕들뿐이다. 그들은 지나치게 노출되어 있고, 그리하여 운명을 피할 도리가 없다. 립스테인은 초저예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색의 조명과 사물들의 주의 깊은 배치를 통해 이 밀실의 공간들을 자신이 새롭게 창조해내는 영화적 세계의 주요 무대로 바꾸어버린다.

몇 십년 전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대한 논란의 불꽃을 처음 지폈던 작가 알레호 카르펜티에르는 “우리 대륙은 바로크다. 아메리카는 생소한 것과 경이로운 것의 역사 그 자체다. 우리의 의무가 아메리카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우리는 우리 것을 보여주고 해석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크 세계에 대한 묘사는 필연적으로 바로크적이어야만 한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아마도 오늘날까지 이 정의에 완벽히 부합되는 영화를 만들고 있는 유일한 작가일 아르투로 립스테인의 대표작들 중 9편(그리고 5편의 멕시코 걸작 단편영화들까지)을 근접 조우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부디 놓치지 마시라.

김용언/ 영화평론가 mayham@empal.com

제6회 멕시코영화제

일시 2004년 7월14일(수)∼22일(목) 총 9일간

장소 서울아트시네마

주최 (사)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주한멕시코대사관

후원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상자료원, 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문의 02-720-9782, 02-745-3316, www.cinematheque.seoul.kr

※서울에서의 상영 이후 시네마테크 대전 주최로 대전에서 순회상영이 이루어집니다. 7월23일부터 25일까지 3일간 대전 상영에서는 립스테인 감독의 작품 9편이 상영될 예정입니다.

일시 7월 23일(금)∼25일(일) 장소 대전 가톨릭문화회관

문의 시네마테크 대전 042-221-1895, www.cine1895.org

※모든 상영작은 스페인어 대사로 한글자막과 함께 상영됩니다.

* E: 영어자막 English Subtitle F: 불어자막 French Subtit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