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씨네큐브, 제3회 호주영화제 개최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호주의 영화산업은 정부와 ‘선’을 대고 있는 다양한 영화기구를 딛고 개성어린 입지를 다져왔다. 예컨대 제인 캠피온 감독을 비롯해 <뮤리엘의 웨딩>과 <피터팬>의 P. J. 호건, <꼬마돼지 베이브>의 크리스 누난 등이 모두 ‘호주영화·텔레비전·라디오스쿨’(AFTRS) 출신이다. 피터 잭슨의 아낌없는 지원에 힘입어 이웃나라 뉴질랜드가 세계적 촬영지로 각광받는 바람에 다소 빛이 바래는 듯하나 호주산 영화는 꾸준히 자기만의 향취를 만들어내고 있다. 배우와 배경은 서구적이나 내러티브와 캐릭터는 인종과 민족을 살짝 뛰어넘는 진지함이 특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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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자연을 안고 살아가는 그곳이지만 인간의 삶이란 늘 강퍅하고 위태롭다. 네쌍의 부부가 기묘한 인연으로 이어지는 <결혼의 비밀>(Lantana, 감독 레이 로렌스, 2001)(사진)은 권태의 위기를 쓸쓸하고 불완전한 개인의 내면에 얹혀놓고 보는 이의 호흡을 강하게 끌어당긴다. 정신과 의사인 한 여인의 실종이라는 스릴러적 변주에 섹스와 배신, 죽음의 다양한 표정까지 담아냈다.
40대의 형사 레온(앤서니 라파글리아)은 번듯한 가정을 두고 있지만 댄스 동호회에서 만난 제인과 끈끈한 관계를 이어가고, 레온의 아내는 유명한 정신과 여의사를 찾아가 공황상태를 맞이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하며, 이 여의사는 외동딸이 강간살해된 사건으로 인해 남편 존(제프리 러시)과 보이지 않는 단절의 고통을 겪고 있다. 이들의 관계는 딱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 없는 사건으로 한순간에 엮이며 전환의 계기를 맞이한다. <숭어>(감독·각본 데이비드 시저, 2001)(사진)에서 그려지는 호주 내부의 풍경도 코믹하지만 신산스럽다. 시드니 근처의 해변 도시에서 자란 에디는 가족과 여자친구를 버리고 모종의 꿈을 안고 무작정 도시로 떠나간다. 3년 뒤 허망하게 돌아온 고향은 일견 그를 반기지만 관계의 위험한 변수가 되어버린 그 때문에 점차 갈등이 표면화된다. 호주는 이민과 이산의 땅이기도 하다. <어느 스페인 여인의 이민사>(La Spagnola, 감독 스티브 제이콥스, 2001)(사진)는 호주로 이민 온 어느 스페인 모녀의 갈등과 화해를 관능과 코믹으로 다루고 있지만 여성 내부의 소통에 방점을 찍는 여성드라마이며, 홍콩계 호주인 클라라 로의 <떠도는 인생>(1996)은 이민으로 삶의 업그레이드 혹은 탈출을 꿈꾸는 중국계 이민자의 삶을 서늘하게 펼쳐간다.호주영화의 또 다른 미래는 장편의 완성도를 뺨치는 단편들에서 가늠해볼 수 있지 않을까. 2004년 아카데미영화제에서 단편애니메이션 최우수상을 받은 <하비 크럼펫>은 폴란드에서 이민 온 한 사내의 인생유전을 코믹하게 그린 클레이애니메이션으로, 번뜩이는 재치와 위트가 일품이다.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 단편상을 받은 <폭죽이 가득한 가방>(Cracker Bag)은 사춘기 소녀 에디의 소박한 계획이 어이없게 어그러지는 과정에다 성장기의 씁쓸한 단면을 배치했다. <미미>(Mimi)는 경매를 통해 원주민 공예품을 사들인 도시의 세련된 여성이 호주 원주민의 정령인 미미를 만나면서 겪게 되는 소동을 유쾌하게 그렸고, <영사기사>는 픽시레이션(Pixilation)이라는 라이브-액션 애니메이션 기술을 사용해 실사를 독특한 속도감과 화질로 만들어낸 실험성이 돋보인다. 또 <영사기사>는 200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단편상을 수상한 작품답게 영화의 영상이미지로 영사기사의 과거를 회상한다는 설정에서도 묵직한 인상을 남긴다.
이성욱 lewook@hani.co.kr
<제3회 호주영화제>
일시 7월10일(토)∼15일(목) 6일간
장소 광화문 시네큐브
주최 호주 외교통상부, 호주영화진흥위원회
주관 주한 호주대사관, (주)영화사 백두대간
후원 호주 정부 관광청, 아시아나 항공
내용 장편영화 8편, 다큐멘터리 1편, 단편 19편 등 총 28편
오프닝 리셉션 7월9일(금) 저녁 6시30분 광화문 씨네큐브
예매 및 문의 02-747-7782, www.ciness.co.kr(씨네큐브), www.australia.or.kr(호주대사관)
※입장객 추첨을 통해 1주일간 호주 무료 여행의 기회가 제공된다(1팀 총 2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