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영화 제작 시스템의 산물‘일본 뉴웨이브’ 릴레이 영화제
1980년대에 접어들자 일본의 영화계는 다시 한번 새로운 출현들을 목격한다. 8mm영화로 기본기를 닦은 일군의 젊은 감독들은 제도의 장르적 규칙 안에서 교묘히 그것을 어기면서, 또 한편으론 제작자에서 스탭까지 일인다역으로 버티면서 주류와 비주류의 경계를 무색하게 하는 왕성한 창조력으로 등장했다.
이번에 ‘일본 뉴웨이브 릴레이 영화제’에서 소개될 4명의 감독 사카모토 준지, 쓰카모토 신야, 사부, 구로사와 기요시 역시 그런 출현의 일부라고 말할 수 있다(그러나 ‘일본 뉴웨이브영화’라는 일반의 영화사적 표현은 오시마 나기사, 하니 스스무, 요시다 요시시게, 이마무라 쇼헤이 등 흔히 1960년대 일본 누벨바그 운동 세대들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따라서 이번 상영회는 행사의 제목과 상관없이 1980년대 이후 8mm 자주제작영화 시스템 안에서 활동하고 뻗어나온 일본 영화작가들의 상영작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더 옳을 듯싶다).
사카모토 준지는 우리에게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 <케이티>의 연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복서 조>(1995), <상처뿐인 천사>(1997), <멍텅구리>(1998) 등으로 강건한 이야기체를 전개할 줄 아는 감독으로 인정받아왔다. 사카모토 준지의 이번 상영작은 <페이스>(2000)와 <신 의리없는 전쟁>(2000)(사진). 콤플렉스로 가득 찬 언니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친여동생을 살해하고, 아버지를 찾아 떠나는 길에서 자아를 되찾게 되는 영화 <페이스>는 비평과 흥행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그의 가치를 한 단계 높인 작품이며, <신 의리없는 전쟁>은 1973년부터 8번 시리즈물로 만들어진 야쿠자영화의 대부 후카사쿠 긴지의 <의리없는 전쟁>을 재창조한 영화이다.어린 시절부터 영화 만들기를 즐겼던 쓰카모토 신야는 8mm 습작시기를 지나 그의 1986년 데뷔작 <철남>으로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 남자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점점 금속성 괴물로 변해가는 이 이야기는 적은 제작비로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상상력이라 할 수 있는데, 그로테스크한 기계 문명의 정신과 유희를 도전적으로 이미지화한다. 한때 일본 에니메이션과 동반 유행하며 ‘사이버 펑크’문화에 대한 컬트족을 양산해내기도 했다. 1992년의 <철남2>(사진)는 <철남>에서 보여준 인간-기계의 혼란스러운 주체에 대한 질문을 다시 한번 거칠게 밀고 나아간다. 그리고 <총알발레>(1998)는 동네 깡패들에게 무시당한 뒤 능욕감으로 치를 떨던 한 평범한 남자가 총을 얻게 되면서 일어나는 병리적 폭력 욕망과 괴물화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 세편이 쓰카모토 신야의 이번 상영작이다.
1986년 모리타 요시미츠 영화에 배우로 출연하면서 영화계에 진출한 사부는 연출에 뛰어든다. <먼데이>(1999)는 그 10년 뒤 <탄환주자>(1996)로 감독 데뷔한 사부의 대표작 중 하나. 어느 날 낯선 호텔방에서 깨어난 남자는 자신이 살인행각을 벌였다는 것을 기억해내고, 그 즈음 경찰들은 남자를 포위한다. 인생의 막판에 몰린 한 남자의 사투에서 영화는 다시 반전과 코미디를 시작한다. 일상의 잠잠함을 뜀박질로 깨뜨리는 사부식 소동극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영화이다.
이들 중 가장 높게 도약한 감독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구로사와 기요시의 상영작은 <큐어>(1997)와 <회로>(2001) 두편이다. 인용주의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의 길을 시작했지만, 점점 더 합리적인 세계의 인식과 불가해한 현상의 접합을 통해 세계의 진실을 물어보려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철학적 경향을 만나볼 수 있는 대표작 중 하나가 <큐어>이다. <회로>는 어느 날인가부터 인터넷 세상에서 넘어온 죽음에의 그림자가 현실세계를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온 세상을 죽음의 폐허로 몰아넣는다는 묵시록적인 공포영화의 진수를 보여준다.
정한석 기자 mapping@hani.co.kr
<일본 뉴웨이브 릴레이 영화제>
주최 (주)씨어터2.0, (사)서울시네마테크협의회
주관 (주)씨어터2.0
후원 (주)튜브엔터테인먼트
상영기간 7월2일(금)∼29일(목) 씨어터2.0, 7월24일(토)∼29일(목) 서울아트시네마
장소 씨어터2.0, 서울아트시네마
예약 및 문의 www.theater2.co.kr(씨어터2.0), www.cinematheque.seoul.kr(서울아트시네마)
※서울아트시네마에서는 7월24일(토)∼29일(목)까지 하루에 한편씩 6일간 상영합니다. 서울아트시네마의 상영시간표는 홈페이지(www.cinematheque.seoul.kr) 참조.
※<페이스>와 <신 의리없는 전쟁>은 DVD 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