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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사 연구의 ‘새로운’ 출발, <한국영화전사> 개정증보판

고 이영일 선생의 <한국영화전사>(이영일 지음 | 소도 펴냄) 개정 증보판이 나왔다. 단아한 하얀 표지에 이규환 감독의 1939년작 <새 출발>의 촬영현장이 담겨져 있다. 1969년 한국영화 50주년 기념 사업의 하나로 저술된 책이 35년이 흐른 2004년 신고전으로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개정 증보판을 위한 이영일 선생의 작업과 선생의 타계 이후 김소희(현 <씨네21> 편집장)를 비롯한 후학들과 소도출판사의 저자에 대한 봉정의 결과물이다. 정성어린 주 처리와 귀한 사진들은 개정, 증보에 값하는 자료들이다. 연구자로서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다.

영화사가로 비평가로 그리고 시나리오 작가로 영화에 헌신했던 저자의 글쓰기는 제도화된 학계 외부에서 담론을 생산하는 저술가로서의 에너지와 준열함이 넘친다. 서문에서 필자는 한국 영화사를 기술하는 것은 “폐허의 황막함과 내일에의 비상을 마주치고 희망하는 것”이라고 토로한다. 개화기 한국영화에서 1960년대까지를 다룬 이 책의 서장 “한국 영화사의 쟁점과 전망”은 포괄적으로 한국 영화사의 핵심을 소개하고 있으며, 이후 9개의 장들은 한편으로는 한국 영화사와 세계 영화사간의 대화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의 정치문화사와 영화 텍스트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예컨대 1960년대 후반기, <애수> <윤심덕>을 거쳐 <미워도 다시 한번>으로 정점에 이르게 되는 복고적이고 보수적인 심리를 진단하면서 당시 근대화 과정에 역행하고자 하는 민중의 정서를 읽어낸다든지, 나운규의 <아리랑>(1926)과 로버트 비네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나 기누가사 사다노스케의 <미쳐버린 한 페이지> 사이의 상호텍스트성을 지적하는 것이 그 예다. <아리랑>을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이라는 이른바 원전의 의미화 과정에 종속된 변방의 흉내내기로 보는 것이 아니라 당시 조선 민중의 수용의 측면에서 <아리랑>을 창의적으로 독해하는 것이다.

또 영화사 기술의 방식으로 특기할 만한 점은 선생의 글쓰기에 흐르고 있는 일종의 정감과 정동의 정치학이다. 식민지 시기와 해방기, 한국전쟁 그리고 독재하의 영화사를 울분과 분노, 봉쇄에서 건져올리는 것은, 그 시대적 상황에 반응하면서 저항하는 영화 텍스트들과 생산자, 수용자에 대한 비판적 감응이다. 나는 이것을 탈식민 정동의 정치학에 기반한 역사기술의 한 양식으로 보고 싶다.

한국 영화사로 향하는 연구자들의 관심이 지대한 이즈음, <한국영화전사>는 정말 다시 새로운 출발처럼 보인다.

김소영/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