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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키득거림’, 김행장 <좀비콤비>

이른바 스포츠신문 만화가 있다. 크게 두 부류인데, 보통 4쪽 이하의 컬러만화는 양영순의 <아색기가>류라, 6쪽 정도의 이야기 만화는 허영만의 <타짜>류라 부를 만하다. 이중 우리에게 익숙한 정통 스포츠신문 만화의 스타일은 후자다. 허영만의 <타짜>류는 계보를 거슬러올라가면 고우영의 극화가 있다. 국내 스포츠신문의 원조격인 <일간스포츠>는 고우영의 극화를 연재하며 70년대 극화 열풍을 불러왔다. 이 고우영 극화는 초기 화려한 필력과 진지한 이야기를 보여준 <임꺽정>, 가장 문학적이고 섬세한 <일지매>와 당대의 풍자 센스가 고전으로 해석된 <삼국지> <수호지> <서유기> <가루지기전>과 같은 2개의 스타일로 양분된다. 80년대 5공 정권의 스포츠 정책과 함께 <스포츠서울>이 창간되며, 고우영의 첫 번째 극화스타일은 제자격인 방학기로 이어진다. <감격시대> <바람의 파이터>와 같은 방학기의 극화는 전형적인 남성형 극화. <스포츠조선>이 창간되며 스포츠신문 3파전이 되면서 만화는 더욱 중요한 콘텐츠로 확대되었다. 이 시기 허영만의 <아스팔트 사나이>, 이현세의 <남벌> 같은 전형적인 남성형 극화는 물론 신일숙, 김진과 같은 여성작가들의 만화도 연재되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 이후 후발주자로 <스포츠투데이>와 <굿데이> 등이 합류하며 스포츠신문에 연재되는 만화는 그 폭과 다양성이 확대되었다.

김행장의 <좀비콤비>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양영순이 보여준 <기동이> <아색기가>의 맥을 잇는 ‘성 해프닝 만화’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강한 컬러에 과장되게 그려진 주인공들이 등장해 은밀한 농담으로 했음직한 이야기를 버젓이 지면으로 토해낸다. 이 만화를 처음 보는 독자들은 때때로 낯선 당혹감을 느끼는데, 조금만 적응하면 금방 ‘중독’된다. 가장 많이 차용하는 소재는 성적 농담과 조폭. 술만 먹으면 질펀하게 내지르는 농담 같은 성과 폭력의 이야기가 4쪽에 가득하다.

맞다. 이 만화에서 문학적 향기를 기대하는 것은 난센스다. 이 만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은밀한 ‘키득거림’을 주도록 창작되었다. 그런데 그 키득거림이 당대의 한국적 현실과 엮이며 묘한 뒷맛을 남긴다. 삭막한 사회, 소통의 부재, 믿지 못하는 삶 뭐 그런 걸 느끼게 된다는 말이다(어쩌면 이런 느낌도 난센스일 수 있지만). 아무튼, 매일 신문이나 온라인을 통해 짤막하게 보던 만화를 한권으로 묶어보니 그 맛이 또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는, 여러분이 확인해볼 일이다.

박인하/ 만화평론가 enterani@yahoo.co.kr